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금강일보] 나가사키 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미나미 야마테(南山手) 언덕에는 스코틀랜드 출신 무역상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Thomas Blake Glover: 1838~1911)의 저택이 있다. 일본 정부는 글로버 저택과 영국인 링거 주택(Frederick Ringer: 1840~1908), 올트(William John Alt: 1840~1905) 주택 등 다른 양식 주택 9동을 한곳에 모아 구라바엔(Glover Garden: クラバ園)’이라고 이름 붙였다.
특히 1863년에 건축된 글로버 저택과 1868년 링거 주택, 올트 주택 등 3동을 현존 최고(最古)의 서양식 건물이라 하여 ‘중요문화재’로 지정했으며, 구라바엔은 2015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오우라 성당 앞에서 오른쪽으로 난 완만한 언덕길을 올라가면 구라바엔 입구인데, 오우라 성당 부근에서 글로버 정원의 제1 게이트까지는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각종 기념품 가게와 카페들이 줄지어 있다. 구라바엔의 입장료는 610엔인데, 입장권이 미국 달러화 같은 크기에 글로버의 초상을 넣은 것이 매우 이색적이다.
구라바엔은 가파른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을 돕기 위해서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 같은 초록빛 ‘구라바 스카이 로드’를 설치했는데, 에스컬레이터는 두 번 갈아타도록 설계되어서 얼마나 높은 산 중턱에 있는지 짐작할만하다.

여행객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구 미쓰비시(旧三菱) 제2도크 하우스에서부터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사방으로 배치된 여러 주택과 정원들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구 미쓰비시 제2도크 하우스는 미시비시 조선소 선원들의 숙소였다. 이곳 2층 베란다에서는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의 크레인이 보일 뿐만 아니라 나가사키 항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임진왜란 이후인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츠(德川家康)는 지방정부가 외국과 직접 교역하는 것을 금지하고, 바쿠후(幕府)가 나가사키를 직할지로 정해서 무역이익을 독점했다. 그리고 1636년 천주교 전파를 막기 위하여 인공섬 데지마(出島)를 만들어 포르투갈인을 몰아넣었는데, 이에 반발한 일본인 가톨릭 신자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포르투갈인을 내쫓고 인근 히라도섬(平戶島)에 있던 네덜란드 상관(商館)을 데지마로 이주시켰다.

데지마는 1858년 일본이 개항될 때까지 데지마는 메이지 유신 때까지 200여 년 동안 일본 유일의 무역창구였으나, 1859년 통상조약으로 일본이 개항되면서 나가사키 이외에 요코하마와 하코다테 등지에서도 해외무역이 이루어지면서 데지마에서 거주하던 상인들이 구라바엔으로 옮겨온 것이다.(데지마와 차이나타운은 2021.12.1. 참조)
글로버는 26세 되던 1863년 개항과 동시에 나가사키로 건너와서 ‘글로버 상회’라는 상호로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일본 여인 츠루(ツル)와 혼인했다. 그는 한일합방의 원흉인 조슈번(長州藩)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 5명, 사쓰마번(薩摩藩)의 고다이 도모아쓰(五代友厚: 1836~1885) 등 19명의 젊은이를 영국에 유학 보내는 등 일본 근대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 중 고다이는 항해술과 측량술을 익힌 뒤 1865년에 귀국하여 글로버와 함께 고스게 오사무 선착장을 지었는데, 이 선착장도 2015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또, 글로버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린 맥주 창업에도 관여하여 1894년에는 사장에 취임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한편, 1897년 영국 상인 월터 베넷과 결혼한 글로버의 딸 하나는 남편을 따라 인천에 정착하여 살다가 1938년 인천에서 청학동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또, 글로버의 아들 글로버 도미사부로(食場富三郎: 1870~1945)도 증기선 저인망 어선을 일본에 처음 도입하여 수산업 발전을 가져온 인물이다. 글로버가 살던 ‘글로버 저택은 제1 게이트인 요금소 오른쪽에 있는데, 이곳 마당에는 잘 가꾼 잔디밭과 인공연못 주변에 다양한 꽃을 심어놓았다.

오페라 나비부인은 1898년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하는 미국의 존 루터 롱의 단편소설 '나비부인'이 미국의 한 월간지에 발표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소설 '나비부인'이 인기를 끌자 다시 희곡으로 각색되어 런던에서 공연되었는데, 그때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가 우연히 이 연극을 관람한 뒤 오페라 '나비부인(Madam Butterfly)'이 탄생했다.
‘나비부인’은 글로버의 일본인 아내 쓰루가 평소 소매에 나비가 그려진 기모노를 즐겨 입은 것에 착상하여 오페라 '나비 부인'의 모델로 삼았다고 하는데, 오페라 '나비부인'은 1904년 밀라노에서 초연된 이래 세계 곳곳에서 무대에 자주 오르는 오페라로서 '라 트라비아타' '카르멘'과 함께 세계 3대 오페라로 불린다.

2차 대전 후 나가사키 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일본식 집에서 시작하는 오페라는 미 해군 장교 핀커튼은 집안이 몰락해 게이샤가 된 열다섯 살 초초상과 계약 결혼을 한다. 여주인공인 일본인 초초상은 게이샤의 예명으로서 '나비'라는 뜻이다. 나가사키 항과 주변 풍경이 잘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글로버 주택에서 살던 연합군 대령과 부인 초조상의 로맨스는 사실 인종 차별을 바탕으로 하여 동양 여성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결말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전후 일본을 세계에 소개한 오페라의 무대가 된 것을 기념하여 구 워커 주택 아래에 푸치니 동상을 세웠다. 하얀색 양복을 입은 푸치니가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오른손에는 중산모를 든 채 어딘가를 쳐다보는 모습이다. 그 오른쪽에는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일본 여인 초초상 역할을 맡았던 배우 미우라 다마키(三浦環: 1884~1946)의 동상도 있다.

초조상이 핀거튼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다섯 살 난 아들에게 손으로 태평양을 가리키며, ‘언젠가 아빠가 저곳에서 너를 만나러 돌아올 것이다’고 말해주는 모습은 극 중 장면을 재현한 것이다. 다마키의 동상 기단에는 ‘미우라 다마키의 동상(三浦環の像)'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또, 푸치니 동상 앞에는 일본 최초의 레스토랑이었다고 하는 지유테이(自由亭)와 함께 최초의 서양요리사 쿠사노 조키치(草野丈吉)의 동상도 있다. 사실 이 건물은 폐업 후 나가사키지방법원장의 관사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구라바엔으로 이축되어 카페로 이용되고 있다.

구라바엔을 관람하고 나오는 출구는 혼잡을 피해서인지 입구와 반대 방향인데, 상술 좋은 일본인들은 ’나가사키 전통예술관‘이라는 건물을 거치도록 배치하여 전통 선박과 청용, 백용 등 모형을 비롯하여 다양한 눈요깃거리를 전시하고 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