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쓰마번주 시마즈 고택
사쓰마번주 시마즈 고택

[금강일보] 가고시마에서 여행은 교통의 중심지인 JR선 가고시마 중앙역에서 시작된다. 가고시마시는 2차대전 때 연합군의 공습으로 90% 이상이 파괴되었으나 회복하였다.

패키지 여행객이라면 교통편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지만, 자유여행객이라면 가고시마 중앙역의 관광안내소에서 교통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관광버스는 역사탐방 코스와 사쿠라지마 자연 유람 코스 등으로 나뉘어 운행되는데, JR 규슈 버스의 사쿠라지마 일주 코스는 오전과 오후에 출발하는 일정표가 있다.

센겐원에서 본 사쿠라지마
센겐원에서 본 사쿠라지마

규슈 남부의 최대도시인 가고시마현청 소재지 가고시마시에도 후쿠오카, 나가사키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1960년대에 사라진 한 칸짜리 노면 전차가 운행되고 있다. 가고시마 중앙역 앞이 전차의 출발점인데, 시내 투어 때는 노면 전차가 매우 편리하다. 1회 승차요금은 170엔이지만, 대중교통에 편리한 교통패스로 가고시마 시티뷰 패스(600엔)와 WELCOME CUTE 패스(1000엔)가 있다.

가고시마시 중앙역 광장에는 사쓰마 시절부터 바쿠후 시대를 청산하고 왕정복고를 추진하던 가고시마가 낳은 사이코 다카모리(西鄕隆盛)와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등 유명 인물의 동상을 다양한 모습으로 배치하여 세우고, 또 거리에는 사이코 다카모리와 함께 왕정복고를 이룬 시코쿠 출신의 사카모토 료마(板本龍馬) 부부가 최초로 가고시마로 신혼여행을 왔다는 것이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의 동상도 나폴레옹 복장으로 조각하여 세워두었다.

시마즈 가문 문양
시마즈 가문 문양

그런데, 영국·프랑스·독일 등 서유럽에서는 시내 주요 광장마다 위대한 인물들의 동상을 높은 좌대 위에 설치하여 정작 당사자의 인물을 제대로 볼 수 없어서 위화감이 생기는 데 반하여 일본은 반대로 좌대도 없이 길거리에 퍼포먼스 하듯 배치하거나 좌대를 설치하더라도 눈높이만큼 만들어서 마치 어느 가게가 설치한 홍보용 마네킹 같은 경우가 많다. 동대사로 가는 나라의 전철역을 나서면, 행기(行基) 스님의 동상도 그랬다.

여담으로 가고시마 중앙역 부근의 포장마차 거리에서는 야키 토리(닭구이), 사쓰마 이모(어묵), 시로쿠마(가고시마식 빙수), 흑돼지, 국내에서는 서울 일부와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구경할 수 없는 말고기 사시미 등을 맛볼 수 있다. 특히 가고시마에서 시작된 흑돼지 요리전문점인 이치니이산(いちにいさん)은 도쿄 긴자를 비롯하여 일본 전역에 체인점이 있을 만큼 유명하고, 일본에서는 지역에 따라 간장 맛이 크게 다른데, 가고시마 간장 마루초(マルチョウ)는 짜지 않고 달콤한 맛이 난다.

메이치천황 행재소 기념비
메이치천황 행재소 기념비

가고시마 시내와 가고시마 만의 활화산 사쿠라지마(桜島: 1170m)를 조망하려면, 메이지 유신 때 최후의 격전지로 유명한 시로야마공원(城山公園: 107m) 전망대에 올라가면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가고시마에서는 옛 사쓰마(薩摩藩)의 번주로서 천황이나 바쿠후처럼 독자적으로 서양과 교류하면서 유학생을 파견하고 신무기를 개발하여 세력을 크게 확장한 19대 번주 시마즈 미쓰히사(島津光久)가 1658년에 지은 센간엔(仙巖園)을 빼놓을 수 없다.

센간엔은 시마즈 미쓰히사의 개인 별장 겸 신무기 제조공장이어서 이소테이엔(磯庭園)이라고도 하는데, 가고시마 중앙역 히가시 7번 버스 정류장(東7バスのりば)이나 가고시마역 앞에서 이와사키 버스(いわさきバス) 고쿠부(国分). 기리시마(霧島) 방면 버스를 타고 센간엔마에(駅前)에서 내리면 된다. 센겐엔은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데, 센겐엔과 상고집성관(尙古集成館) 두 곳의 입장권은 1천 엔이고, 600엔을 추가하면 먼주가 생활했던 어전(御殿) 내부까지 관람할 수 있다.

상고집성관
상고집성관

오사카성이나 교토의 니조성 등 대부분의 고텐이 엇비슷해서 내부관람은 하지 않았는데, 약 5ha(약 1만 5000평)의 넓은 정원은 맨 왼쪽에 상고집성관 건물(기계공장)이 커다란 단층 공장 건물처럼 자리 잡고, 그 뒤편에 쓰루가네신사(鶴嶺神社)가 있다. 잘 다듬어진 잔디밭에는 상고집성관에서 직접 제조한 대포들을 설치해놓고, 인공호수와 암석들로 예쁘게 꾸몄다.

대포가 놓인 정원 뒤편은 레스토랑 송풍헌(松風軒)이 있고, 오른편에 시마즈 가문의 갤러리가 있다. 바다를 향해 설치된 대포들을 바라보자니, 강화도에서 바다를 항해 설치했던 돈대의 대포가 생각났다. 정원 한쪽의 건물에서 이런 대포를 직접 제작했다고 하니, 사쓰마번의 자위력을 짐작할만하다.

시미즈 갤러리무사 갑옷
시미즈 갤러리무사 갑옷

사쓰마 지역의 번주 시마즈(島津) 가문은 전국시대인 16세기 말 규슈 지역을 대부분 통일할 만큼 세력이 막강했다. 그런데, 일본 전역을 거의 통일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1582년 교토의 혼노지(本能寺)에서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에게 암살되자, 오부나가의 부장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혼란을 수습하여 혼슈를 모두 정복하더니, 마지막으로 규슈에서 격돌하게 되었다.

그러나 1587년 16대 사쓰마번주 시마즈 요시히사(島津義久)는 군세가 약한 것을 알고 항복하여 영지는 사쓰마 1개로 줄어들고, 도요토미는 시마즈 번이 지배하던 구마모토 지역을 고니시와 가토 기요마사에게 주고, 후쿠오카 서쪽과 오이타현 북쪽인 부젠국을 구로타 요시타카의 아들 구로다 나가마사 등 측근에게 나눠주었다.

시마즈 구고택
시마즈 구고택

그리고 이들을 조선 침략의 선봉장으로 삼았는데, 시마즈 요시히사의 동생인 17대 번주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는 임진왜란 때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을 전멸시키고, 정유재란 때 순천왜성에 갇혀있던 고니시를 구출하고, 또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을 물리친 왜군 지휘관이었다.

또, 그는 조선에서 철군할 때 전라도 남원의 도공들을 포로로 붙잡아 귀국하여 심수관, 박평의 등 도공에서 사쓰마자기를 생산하게 했으며, 이후 포르투갈 등 서양과 대외 무역이 활발하였다.(자세히는 2022. 2. 23. 가고시마의 개요 참조)

사쓰마번주 시마즈 고택
사쓰마번주 시마즈 고택

사쓰마번은 에도 도쿠가와 막부의 260개 번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1609년 류큐국(琉球國)을 침략하여 아마미와 오시마 지역을 식민지로 편입하고, 중국과의 무역을 독점하여 흑사탕을 비롯한 각종 상품의 생산과 유통을 장악하여 에도 막부에 대항할 막강한 힘을 비축했다.

더욱이 28대 번주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斉彬)는 바쿠후 몰래 영국에 유학생을 보내 서양의 문물을 도입하고, 서양식 용광로를 도입하여 철을 생산했다. 또 그는 1855년 외국 선박과 구분하기 위해 자국 선박에 흰 천에 붉은 태양을 그린 깃발을 처음 매달았는데, 에도 바쿠후에서도 이 깃발을 받아들여서 미국으로 가는 사절단의 긴린호에 게양함으로써 1870년부터 일본 국기로 채택되는 등 선진정책을 많이 도입했다.

1875년 강화도를 침범한 운양호 선장 이노우에(井上良聲)와 청일전쟁에서 풍도 해전에서 북양함대를 물리치고,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도 사쓰마번의 해군 장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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