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태흥영화 1984~2004’ 회고전

▲ 우리 영화 최초 100만 관객 동원 기록을 수립한 ‘서편제’(1993, 태흥영화사 제작)

#. 코로나 터널을 일단 벗어났다는 해방감에서인지 이즈음 회식 등 모임은 물론 행락과 여행으로 몰리는 인파가 급증하고 있다. 해외여행은 아직 방문국가들의 소극적인 입국조치와 활성화되지 않은 항공편으로 미온적인 편이다. 여기에 비추어 영화관 관람 인구의 가파른 증가세는 2년 여 침체 일로를 겪었던 극장가에 삽시간에 인파를 끌어들이고 있다.

5월 18일 개봉한 국산영화 한 편이 열흘 사이에 500만 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대로 간다면 곧 관객 1000만 돌파 영화 목록에 28번째, 우리 영화로는 20번째로 이름을 올릴 듯 싶다. 우리 사회 특징의 하나인 신속한 원상 회복력과 강력한 탄력성이 소생하여 초토화되었던 각 분야에 활력과 생기를 북돋우기 바란다.

#. 2003년 우리 영화 ‘실미도’가 1100여만 명의 관객을 모은 뒤 20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30편 가까운 1000만 돌파 영화가 나왔다는 사실은 세계영화사에 기록될 만하다. 영화 종주국을 자부하는 미국과 프랑스에서도 인구 대비 이런 수치는 그리 흔치 않을 듯 싶은데 1993년 태흥영화사 제작 ‘서편제’<사진>가 수립한 우리 영화 사상 최초의 100만 관객 기록 이후 꼭 10년 만이다. 영화관 한 곳에 하나의 스크린을 보유한 이른바 ‘단관’에서 달성한 기록인 만큼 의미는 각별하다.

‘서편제’ 이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종전 단관에서 소위 멀티플렉스라고 불리는 영화관 시스템이 속속 확충되면서 1000만 관객 달성은 한결 용이해졌다 한 건물에 들어선 여러 개의 상영관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선택권 확보는 여러 측면에 영향을 미쳤다. 마침 그즈음 영화제작 자유화, 할리우드 영화직배, 대기업의 영화산업 진출, 투자채널의 다변화 등 격변의 상황이 겹쳐지면서 2000년 들어 영화산업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던 것이다.

예전에는 영화사 대표 개인이 제작비 대부분을 감당하면서 만들던 제작 방식이 기업과 전문 투자자들의 가세로 규모가 크게 확충되었다. 우리나라 영화계를 이끌었던 유수한 영화사들이 사라진 자리에 태흥영화사가 1984년부터 2004년까지 36편의 영화를 종전 충무로 시스템으로 만들면서도 변화와 도약을 시도하여 중요 영화제를 비롯한 세계영화계에 한국영화를 알리고 수상의 영예도 얻었다. 이즈음 잇따르는 아카데미, 칸 영화제 수상의 쾌거의 토대를 이때 마련한 셈이다.

#. ‘위대한 유산: 태흥영화 1984~2004’라는 회고전 형식의 영화감상 행사와 전시회가 서울 상암동 소재 영화박물관에서 9월 25일까지 열리고 있다. 소신 있는 영화사 대표의 과감한 투자와 승부사적 기질로 뚝심 있게 밀어붙인 영화제작의 성과와 지금처럼 여러 경로로 투자금을 모아 다양한 견해와 요구를 수용하며 만드는 영화들을 비교해보면 문화생태계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소비자들의 의식과 감성 역시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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