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모델의 세계

#. 같은 대상을 두고도 부르는 명칭에 따라 느낌은 확연히 달라진다. ‘밀크-우유-소젖’은 각기 떠오르는 이미지의 느낌과 그 편차가 매우 크다. 밀크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영양이 되어 고소한 풍미가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우유는 원유가격, 공급농가, 재고처리, 브랜드 경쟁, 학교급식 같은 개념이 연상되면서 생활 차원으로 이끌어 들인다. 흔히 사용되지는 않지만 소젖이라고 부르면 소 축사의 독특한 냄새가 느껴지면서 아직 현대화되지 않은 축산 환경을 떠올리게 한다. 말의 힘은 이렇게 각기 무한대의 연상력으로 넓혀진다. 이즈음 우리 사회의 외국어 선호 현상도 이런 상상력 확산에 기댄 마케팅 전략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어르신- 노인- 늙은이’도 같은 범주로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젊은이의 반대 개념인 늙은이는 그 자체로는 비하의 의미를 전혀 내포하지 않은 순수한 우리말인데 언제부터인가 무시와 경멸의 개념이 더해지면서 기피 용어가 되었다. 언어가 본질적으로 생물(生物)이라지만 별다른 내력이나 사유없이 고유한 의미가 변질, 격하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은 듯하다.
#. 상대적으로 나이 든 계층을 지칭하는 표현에 ‘시니어’라는 용어를 하나 더 추가한다. 현재 우리 사회 관행상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하지만 시니어는 조금 더 광범위하다. 경우에 따라 40세 이상을 시니어에 포함시키기도 하는데 40대 당사자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주니어 그룹의 상층부인 30대들 역시 40대를 주니어 계층에 포함시키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길지 모르니 일단 40대 이상을 시니어라는 포괄적인 그룹으로 묶어본다.
40대부터 80∼90대까지를 포괄하는 이 엄청난 규모의 연령대는 고령시대에 즈음하여 활동영역을 크게 넓히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시니어 모델이라는 분야인데 40대부터 80대에 이르기까지 대략 1만여 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6개월부터 1년 남짓 교육 훈련을 받고 활동하는데 일단 일정한 신체 조건과 엄격한 자기관리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노령인구 급증으로 실버산업, 더 넓게 표현하면 시니어산업의 범주가 넓어지고 규모가 커짐에 따라 시니어 모델에 대한 관심 역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이 생각하듯 시니어 모델들의 경제적 수익은 그리 크지 않다는데 활동분야에 대한 자부심과 나이들어서도 젊은 시절의 외모와 체형을 유지하기 위한 쉽지 않은 노력에 대한 긍지 등이 시니어 모델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 모델활동을 통허여 시니어 관련 상품 CF모델이나 영화, 드라마 출연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종전 나이 든 계층의 소극적인 의식이나 일종의 체념같은 아날로그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이 시니어 모델들의 역동적인 활동과 자기관리 노력을 보며 더욱 새롭게 바뀌어 갔으면 한다. 젊게 살아 가려는 의식과 나름의 실천을 통하여 급속히 고령화되어가는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젊어지기를 기대한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