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분수와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

어느 나라든 자국의 역사 유물을 보존·전시하는 국립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일본은 도쿄(1882), 나라(1894), 교토(1897), 규슈(2005) 등 4개의 국립박물관이 있다. 이에 반해서 우리는 거의 모든 시도마다 국립박물관을 설치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개관한 규슈박물관 이외에 도쿄·나라, 교토박물관을 ‘일본 3대 박물관’이라고 한다. 그중 나라 박물관은 일본의 초기인 아스카시대부터 가마쿠라 시대까지 나라 지역의 문화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특히 백제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여 급진적으로 발달한 아스카문화(飛鳥文化)를 볼 수 있다.

또, 한국에서 일본으로 귀화한 서갑호(徐甲虎:1915~1976)가 기증한 청동기관(靑銅器館)은 그의 일본 성씨를 따라서 ‘사카모토(板本) 컬렉션’이라 하여 중국 상(商:殷)~ 한(漢)대까지의 청동기 유물을 상시 전시하고 있다.

(2022. 7. 6. 나라 박물관 참조) 반면에 794년 신무 천황이 당의 장안성을 모방하여 건설한 계획도시 교토에는 헤이안시대부터 에도시대까지 일본 중세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일본 국내는 물론 중국 등 동양의 고미술·공예·고고 미술품 등을 수집·보관·전시·연구하고 있다.

나라박물관이 일본의 건국 초기인 나라 시대 한반도의 백제 문화유물이 많은 것과 시대적으로 구별되어 교토박물관에는 조선에서 탈취한 국보급 문화재가 많다.

구 정문
구 정문

교토국립박물관은 교토 시내에서 가라스마치역 출구에서 100번, 206번, 208번 시내버스를 타면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교토 시내는 시영버스가 모든 관광지를 촘촘하게 연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류장마다 안내도가 자세해서 여행객들이 유적지를 찾아가는 데 크게 불편하지 않다.

도쿄·나라에 이어서 1897년에 건축된 국립박물관도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본래 이곳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 뒤 도다이지(東大寺)를 능가하는 호코지 사찰을 세웠던 곳이고, 또 히데요시를 신으로 모신 도요쿠니 신사였다.

그러나 에도시대에 천황의 위패를 모신 신사로 바꾸었다가 신사와 사찰의 분리 이후, 국립박물관이 들어서게 되었다.

신 정문
신 정문

흰색 대리석과 빨간 벽돌에 지붕은 청동 돔으로 된 교토국립박물관은 이후 일본의 근대 공공건축물의 상징처럼 유지되어왔다. 그러나 120여 년을 지나는 동안 시설이 낡고 불편해서 2013년 구관의 왼편에 신관을 지었다.

구관은 '메이지 고도관(明治古都館)‘이라 하고, 신관은 '헤이세이 지신관(平成知新館)'이라고 한다. 구관과 박물관 정문은 일본 중요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정문은 평소에는 닫아두었다가 단체객 출구로만 사용하고, 지금은 남쪽에 새로 만든 현대식 정문을 이용한다.

새 정문 길 건너에는 1166년에 창건된 사찰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가 있다. 삼십삼간당은 본당 건물 정면의 기둥이 33개로 지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서 정식명칭은 엔겐오인(蓮華王院)이다. 삼십삼간당에는 중앙의 천수관음 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500좌의 천수관음 상이 있다.(천수관음 상은 2022.9.28. 청수사 참조)

교토국립박물관 구관
교토국립박물관 구관

교토박물관의 입장료는 성인 700엔, 대학생은 350엔이고, 중학생 이하는 무료다. 간사이 스루패스가 있으면 50엔을 할인해준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지원하고 있는데, 사용료는 500엔이다.

박물관 구내에 들어서면 정문에서 구관과 일직선상의 구내 한 가운데에는 연못과 분수대가 있고, 그 앞에는 생뚱맞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인물조각상을 설치했다.

구관은 연 2회 정도 특별전을 열 때만 공개하고, 평소에는 구관 왼편에 가로질러 지은 최첨단 갤러리 같은 서양식 건물인 신관만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한국의 국보급 보물들도 많이 소장하고 있는데, 특별전이 열리는 기간에만 볼 수 있다.

교토박물관 신관
교토박물관 신관

신관에는 국보 27점, 중요문화재 181점을 소장하고 있는데, 내부 전시물은 일체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어서 눈으로만 관람하고 도록(圖錄)을 통해서 사진을 찍는 불편이 있다.

신관 1층에 들어서면 왼편으로 전시실은 불상을 중심으로 금속공예, 염직 공예품과 칠 공예물들을 7개 전시실로 나눠서 전시하고 있고, 2층은 불화와 고문서, 중국회화 등을 10개 전시실에 나눠서 전시하고, 3층은 도자기와 석기시대 등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청동등
청동등

각 전시실은 회전식 계단을 올라가도록 설치되어 있어서 동선이 매우 편리하다. 전시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오랜 역사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현대미술과 공예품을 전시하는 현대미술관 같은 분위기이다.

2층 전시실에서 고려 충렬왕 20년(1294)에 간행된 고려 팔만대장경을 모본으로 삼아서 한 줄에 14자씩 필경한 법화경에서 우리의 자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이외에도 이곳의 전시물들이 오롯이 자국의 유물만이 아니라 임진왜란과 35년 동안 주권을 강탈한 일제강점기 시대에 약탈한 우리 문화재들을 자기의 보물로 둔갑하여 자랑하고 있는 것 같아서 가소롭기만 했다.

에도시대의 산수화
에도시대의 산수화

그러나 나라 박물관에서의 문화충격이 너무 컸는지, 아니면 정작 빼앗긴 우리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구관을 관람할 수 없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라 박물관에서처럼 가슴을 뭉클하게 해준 감정은 느껴보지 못했다.

몇 년 전 영국을 여행하면서 대영박물관을 관람했을 때, 전시물 대부분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은 영국이 이집트의 문화재를 대거 약탈해서 전시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해적들의 보물창고’라고 했었는데, 교토박물관 역시 그랬다.

신선도
신선도

박물관 건물 담장 너머에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기리는 풍국신사(豊國神祀)가 있고, 그 오른편에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인들을 죽이고 그 전공의 증거로 삼기 위하여 베어간 조선인의 126천여 개를 묻은 코 무덤이 있다.

1880년에 건축한 풍국신사의 거대한 가라문(唐門)은 후시미성의 성문을 옮겨온 것으로서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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