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금각사

교토 시내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금각사(金閣寺)는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1336~1573)의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 1358~1408)의 별장이었다.

1367년 아버지 요시아키라가 병사하자 10세의 나이로 3대 쇼군이 된 그는 슈고(守護) 들을 정복하고, 1378년 교토의 무로마치 거리(室町)에 하나노고쇼(花の御所)라는 공관을 짓고 무로마치 막부라고 했다.

지금도 교토 시내에는 무로마치도리(室町通)라는 도로이름이 있다. 1392년 요시미쓰는 명맥뿐인 남조의 고카메야마 천황(後龜山)에게 "천황권의 상징인 삼종신기(三種神器)를 북조에 양도하면, 남북조 천황이 번갈아 천황을 맡는 것"을 중재하여 57년 만에 남북조를 통일시킨 강력한 쇼군이었다.

금각사와 경호지 전경
금각사와 경호지 전경

1397년 요시미쓰는 사이온지 가(西園寺家)부터 기타야마의 저택을 기증받아 이곳에 대궐 못지않은 저택을 지었다. 전국의 슈고와 다이묘(大名)들이 앞다퉈 인부를 보내고, 또 희귀한 정원석과 정원수를 보냈다.

특히 저택의 연못가에 세운 3층 사리전(舍利殿) 로쿠온지(鹿苑寺)는 지붕을 금박으로 덮어서 건축비가 무려 100만 관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 백미 1석(石)이 1관이었으니, 백미 100만 석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을 들인 것이다.

이로써 쇼군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는데, 1401년 정월 요시미쓰는 대저택을 기타야마도노(北山殿)라 하고, 이곳에서 시무식을 성대하게 거행했다. 기타야마도노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귀족적인 건축양식과 선사(禪寺)의 조용한 안정감이 융합된 건축미가 주위의 정원과도 조화를 이루었다.

경호지와 석탑
경호지와 석탑

그런데, 요시미쓰가 37세 되던 1394년 아홉 살 된 아들 요시모치(義持)에게 쇼군 자리를 물려주고, 이듬해인 1395년 출가했다.

그러나 그는 바쿠후와 조정을 통합한 일본 최고 지배자로 군림하기 위하여 천산도의(天山道義)라는 법호를 사용하고, 자신이 주관하는 법회를 어재회(御齋會)라 칭하는 등 조정 법회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법황(法皇)처럼 행동했다.

금각사 입구
금각사 입구

무로마치 바쿠후 시대에도 가마쿠라 바쿠후 시대 때 보급된 불교 선종(禪宗)이 크게 인기였는데, 선종은 교종과 달리 교리보다는 명상을 중요시했다. 요시미쓰는 시와 그림을 사랑하는 풍류객이어서 바쿠후의 안정적인 재정을 바탕으로 선종 문화를 보호했다.

또, 그는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 교토와 가마쿠라의 수많은 선종 사찰 중 5개소를 선정하여 5산으로 삼고, 5산의 승려들에게 주자학을 장려하고 시와 문장을 배우도록 했다. 이로써 오산 문학이 꽃피었고, 그들을 정치, 외교 부분에 중용하기도 했다. 그 시기에 무가·공가·선종 문화가 융합된 문화를 기타야마 문화(北山文化)라고도 한다.

그런데, 1408년 그가 죽으면서 대저택을 선종 일파인 임제종(臨濟宗)에 기증하자. 선종에서는 로쿠온지(鹿苑寺)라는 사찰로 만들었다. 사슴이 뛰어노는 정원이라는 이름의 로쿠온지는 잦은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고, 현재는 호수 주변의 긴카쿠(金閣)만 남았다.

그나마 1950년 정신병자의 방화로 금각사가 소실되자 1955년 교토시에서 다시 복원했다. 전각에 금박을 입힌 긴카쿠지가 유명해지면서 로쿠온지라는 사찰 이름보다 금각사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부르고 있다.

경호지
경호지

교토 시내에서 금각사는 지하철이 닿지 않아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교토역 앞 시내버스 정류장(京都駅前)에서 205번을 타면 약 50분 정도 걸린다. 한큐패스 1600엔인 1일권이나 교토 버스 패스 1일권 1000엔을 사면, 종일 무제한으로 버스를 탈 수 있어서 매우 편리하다. 간사이 스루패스도 통용된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뒤 ‘UNESCO 세계문화유산 금각녹원사’라는 표지석을 따라 좁은 골목을 약 100m쯤 들어가면 금각사 입구인데, 골목 오른쪽에 판자에 붓글씨로 쓴 ‘녹원사 통칭 금각사’라는 명판이 조금은 어색하다.

도대체 어느 사찰이 이렇게 공식 명칭 이외에 통칭으로 불리는 이름을 함께 사용할까? 아무튼 금각사는 그의 손자인 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가 지은 은각사(銀閣寺)와 함께 1994년에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승방
승방

여느 가정집 대문 같은 출입문을 지나면 매표소가 있는데, 단체관람객은 왼쪽, 개인 관람은 오른쪽 매표창구를 이용하도록 구분되었고, 입장료는 16세 이상 400엔이다. 주유 패스가 있으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그런데, 입장권이 마치 부적처럼 가로 8.5㎝ 길이 25㎝의 창호지에 금각사리전 어수호(金閣舍利殿 御守護)라고 붓으로 쓴 한자와 행운, 가내 안전, 기복을 기원한다는 문자를 덧붙여 붉은 도장까지 찍은 것이 인상적이다.

일본은 사찰이나 신사 혹은 관광지들이 우리처럼 획일적인 조그만 입장권 대신 그곳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도안과 형상의 입장권이 독특하다.

나가사키의 구라바엔이 미국 달러를 그대로 모방하여 구라바엔(クラバ園)의 주인공 글로버의 얼굴을 새겼고, 최초의 외국인 거주지인 데지마(出島)의 입장권, 벳푸 온천의 입장권들이 한번 쓰고 버리지 않고, 기념품으로 갖게 만드는 아이디어를 우리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자세히는 2021.12.8. 나가사키 구라바엔 참조)

경내에 들어서면 우거진 숲 사이로 넓은 호수와 호수 한 가운데에 금빛 찬란한 금각 건물 한 채가 눈에 띄는데, 금각사의 연못 경호지(鏡湖池)는 이곳이 원래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쓰의 별장이었음을 말해준다.

경호지에는 여러 형태의 작은 인공 섬들이 있는데, 섬마다 다이묘들이 헌납한 작은 바위들이 세워져 있어서 일본의 특별한 사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호지에 한쪽을 디민 목조 3층 건물에 옻칠한 위에 금박을 입힌 지붕 꼭대기에는 봉황이 앉아있는 모양이다. 금각의 1층은 침전과 거실로서 미닫이문으로 만들어 햇빛과 공기가 잘 통하도록 하고, 달마 대사를 모신 호스이인(法水院)으로 사용하고 있다.

녹원사 산책길과 담장
녹원사 산책길과 담장

2층은 중국식으로 꾸며서 관세음보살을 모셨는데, 무사의 집답게 ‘물결 소리를 듣는 곳’이라는 의미의 조온도(潮音洞)라고 한다. 3층은 중국 선종 양식인 불당 카라요(唐樣)를 짓고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지만, 내부는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금각사는 매년 금빛으로 색칠하여 항상 금빛이 나도록 유지한다고 하며, 금각사 오른쪽에는 목조 건물인 요사채와 승방 등이 옹기종기 있다.

금각 뒤편으로 완만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옛 녹원사 터가 있는데, 숲길에는 재물, 연애, 자식 등을 기원하는 곳과 그에 따른 부적을 파는 곳이 많다. 또, 나지막한 돌부처도 있고, 용문폭포라는 작은 폭포와 잉어를 닮았다고 하는 인어석(鯉魚石)과 연못도 있다.

금각사에서 번쩍이는 금각 이외에 숲길을 산책하며 명상에 잠겨보는 것도 일본 중세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