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사카 라면식당.

#. 코로나는 여전히 진행중이지만 체감지수는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 지금도 하루 확진자가 평균 3만∼4만 명 정도 발생한다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닌데 외면상 실내 마스크 착용을 제외하고는 거의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겨울이 다가오고 신종변이에 대한 우려, 독감과 겹칠 경우의 심각성 등 대비할 일이 하나둘이 아닌데 덤덤해 보인다. 2020년 코로나 초기 하루 확진자가 1000명을 돌파하였을 때의 충격이 아직 생생하다, 공식적인 대책과 지침은 완화되었다 하더라도 개인 차원의 방역관리는 소홀함이 없었으면 한다.

코로나로 인하여 굳어진 일상문화의 하나로 이른바 ‘혼밥’을 꼽는다. 우리 사회에서 밥을 혼자 먹는 행위를 그리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간주하지 않는 시각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점심식사는 동료, 지인들과 왁자지껄하게 어울려 먹는 관행이 굳어진 것이 사실이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이런 분위기를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기던 차에 코로나 확산으로 혼밥 풍조가 더 가속화 되었을 듯싶다. 이런저런 세상이야기, 직장의 애환을 나누며 한 끼 식사를 함께 하면서 친교를 도모하는 과정에는 여러 장점이 있다. 더치페이라 부르는 계산 풍조가 확산되어 함께 먹더라도 식대 지불은 각자의 몫으로 처리하는 문화는 바람직하다. 아직 밥값을 서로 내겠다고 계산대 앞에서 팔을 잡아끌며 밀치고 당기는 아름다운 다툼이 벌어지곤 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각자 계산으로 부담을 줄여간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혼밥을 하게 되면 자신이 선호하는 메뉴를 고를 수 있고 식사시간 조절도 자유롭다. 점심 먹는 시간을 줄여 남는 시간을 자기계발이나 취미생활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산책이나 운동, 외국어 또는 실용분야 학습 그리고 음악 감상 등 다양한 시간 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동료나 지인들과의 식사 후 카페에 들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치 않는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런 혼자 활동이 극단으로 치우쳐 사회생활을 등지고 나아가 일본 사회의 어두운 그늘 같은 속칭 오타쿠, 외톨이의 삶, 대인기피증으로 확산되면 위험하다.

#. 코로나와 관계없이 일찍부터 혼밥이 일상화된 일본의 경우 퇴근 후에도 혼자 식사, 간단하게 술 한 잔 후 귀가하는 풍조가 우리사회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1인용 좌석이 상당한 비율로 마련되어 있고 아예 옆 사람과의 접촉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칸막이 시설도 적지 않다. 우리도 그동안 아크릴 칸막이를 곳곳에 설치했는데 벌써 자취를 감추었다.

일본 오사카시 번화가 도톤보리 식당가 어느 라면식당의 구조는 오래전부터 설치된 나홀로 식사 시스템의 정점을 보여준다. 식당에 들어서면 키오스크에서 주문할 라면을 고르고 돈을 넣으면 티켓이 나온다. 여기까지는 이미 일반화된 무인주문 방식이지만 대기 의자에 앉아 자신이 먹을 라면에 대한 세부 주문사항을 자세한 설문지에 기재한다. 토핑이며 면발의 꼬들꼬들함 정도 그리고 파 첨가 등에 이르기까지 흡사 병원 문진표 작성하듯 답변을 적어 종업원에게 제출하고 기다리다가 좌석이 비었다는 푸른 램프가 켜진 자리로 들어간다.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쳐진 좁은 좌석에 앉으면<사진> 벽면에 붙어있는 이런저런 고객 유의사항이 눈에 띈다. 얼마간 면벽수도하듯 기다리면 발(簾)로 만든 커튼이 열리고 라면이 제공된다. 종업원이 속사포로 인삿말을 건네며 90도로 인사를 하고 가림막을 닫으면 비로소 혼자만의 식사가 시작된다.

고객에게 호기심과 흥미를 제공하고 나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경영 방식으로 운용한다 하지만 칸막이 쳐진 촘촘한 좌석은 다가올 사회의 예고편을 보는 듯 착잡하기도 하다. 1932년 발표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미래사회의 한 단면이 얼핏 스쳐지나간다. 혼밥의 빛과 그림자를 보는 듯하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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