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이나리 신사 입구

우리나라는 서낭당(城隍堂)이나 건국 시조 단군을 모시는 민속신앙을 미신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지만, 일본에는 토속 신을 모시는 신사(神社)가 전국에 많다. 그런데, 신사는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전통 신 이외에 국가나 지역에 큰 공적을 세운 인물을 봉안하는 공간으로 확대되었다. 신사는 초기에는 우리의 서낭당처럼 숲이나 동굴, 바위 등 신성한 장소를 정하여 기도할 때 찾아갔지만, 불교가 영향으로 사찰을 짓고 불상을 봉안하고 신자들이 찾아가는 영향을 받아 지금처럼 신사 건물을 짓고 신을 모시게 됐다.

신사 전경
신사 전경

신사의 건축양식은 에도 시대에 고착되었는데, 크게 도리이(鳥居), 본전(本錢), 배전(拜殿)으로 구성된다. 도리이는 불교사찰의 일주문처럼 속세와 신의 구역을 구분하는 공간으로서 신사의 대문인데, 우리의 삼족오(三足烏)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본전은 신사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 배전은 참배하는 공간이다. 또, 신사에는 신사의 관리와 의식 진행을 맡는 신쇼쿠(神職) 또는 신누시(神主)가 있고, 하나의 신사에 신쇼쿠가 여럿인 경우도 있다. 이때 최고 책임자를 구지(宮司)라 하고, 그 아래로 네기(禰宜), 곤네기(権禰宜) 등 직책을 두지만, 신사에 따라서는 구지 아래에 곤구지(権宮司)라는 직책을 두는 경우도 있다.(자세히는 2021.12.29. 나카사키 스와신사 참조)

신사 관리소
신사 관리소

일본에서는 모든 토속 신 중에서 오곡의 신을 으뜸으로 여겼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나리신(稻荷)은 폭풍의 신인 스사노오(須佐之男)의 아들 우카노미타마노카미(宇迦之御魂神)이라고 한다. 교토 근교의 이나리 산(稻荷山: 233m) 기슭에 있는 후시미 이나리 신사(伏見 稲荷神社)는 일본 전역에 있는 약 3만 개의 이나리 신사의 총본산이다. 이나리 신사는 794년 간무천황(桓武)이 교토로 천도하기 전인 711년 하타노키미(秦氏)가 하타씨의 수호신을 모시면서 창건했다고 한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하타씨는 백제에서 도래한 이주민이라고 하지만, 가야에서 건너왔다고도 하고, 신라의 이주민이라고도 한다. 한반도 도래인을 모시던 신사가 농사를 주관하는 오곡의 신으로 바뀌게 된 것은 한반도에서 농사짓는 법을 전래해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원래 오곡을 관장하는 농업의 신을 모시는 이나리 신사가 지금은 상업 번창, 사업융성, 가내 안전· 교통안전, 예능 향상의 수호신으로서 추앙받고 있다.

신사 배전
신사 배전

후시미 이나리 신사는 교토에서 JR 나라선을 타고 두 번째 역인 조그만 이나리역에서 내린 뒤 약 7분 정도 걸어가면 신사 입구다. 신사 입구의 좁은 골목길에는 신사 특유의 붉은색 칠을 한 도리이(烏居)가 즐비하다. 골목길 양쪽에는 길거리 음식점이 유명한데, 거리 정비 계획으로 앞으로 사라질 예정이라고 한다.

배전의 여우
배전의 여우

이나리 신사는 일 년 열두 달 연중무휴로 개방하고 있고, 입장료도 없다. 후시미 이나리 신사는 2006년 미국의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영화 '게이샤의 추억(Memoirs of Geisha)'의 촬영지로 유명한데, 주인공인 시골 처녀 치요는 교토 게이샤의 집에 팔려 가서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그리고 게이샤가 되어 자신을 도와준 회장에게 연정을 품지만, 2차대전 패전 후 게이샤를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간다. 몇 년 후 회장의 친구가 찾아와서 미국인과의 거래에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사유리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사유리는 회장을 잊지 못하고, 얼마 후 회장도 그녀에게 연정을 품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영화는 2006년 78회 아카데미상에서 6개 부분 후보에 지명되고, 미술상, 의상상, 촬영상의 3개 부분을 수상했다.

일본 전국에서 중고생들의 수학여행 단골 코스이자 외국인들이 교토에서 청수사(淸水寺)와 함께 가장 많이 찾는 신사로서 2020년 일본에서 4번째로 입장객이 많은 신사라고 한다.(자세히는 2022.9.28. 청수사 참조)

도리이 형상의 에마
도리이 형상의 에마

신사에 들어서면 동그랗게 말린 칼을 입에 물고 있는 여우 조각상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오곡의 신 이나리신은 하얀 여우를 타고 있는 수염을 기른 남자로 나타나기도 하고, 혹은 볏단을 들고 긴 머리를 멋지게 늘어뜨린 여자로 나타나서 여우를 이나리 신의 사자(使者)라고 하여 ‘여우(キツネ) 신사’라고도 한다. 그러나 여우는 산에서 사는 보통의 여우가 아니고,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여우 즉, 뱍코상(白狐: 흰 여우)이다. 마치 여수 향일암(向日庵)이 거북의 전설로 사찰 입구부터 경내에 크고 작은 거북을 많이 만들어 둔 것과 비슷하다.

센본도리이 숲
센본도리이 숲

이나리 신사의 본전 건물은 쇼군의 후계자 선정을 놓고 벌어진 오닌의 난(應仁:1467~1477) 때 소실되었다가 1499년에 재건했다. 그렇지만, 이나리 신사는 본전 건물보다 산기슭인 신사 입구에서 정상까지 약 4㎞ 정도 도리이가 유명하다. 1000개의 도리이가 세워졌다고 하여 ‘센본도리이(千本烏居)’라고도 하지만, 매년 전국에서 기증한 도리이가 늘어나서 약 1만여 개의 도리이가 동굴처럼 길게 늘어서 있는 것으로 더 유명하다.

이나리 신사 도리이
이나리 신사 도리이

일본의 신사나 사찰, 궁중은 붉은 색깔이 많은데, 이것은 붉은색이 악귀를 막는다고 하여 오래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색깔이다. 우리네 조상들도 동짓날 붉은색의 팥죽을 끓여서 액운을 막는다고 대문 앞에 뿌리던 것과 비슷하다. 또, 소원을 비는 나무판인 에마(繪馬)는 신사에서 소원을 빌 때 말(馬)을 바치던 관습이 점점 간소화되면서 말을 그린 나무판에 소원을 적는 것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나리 신사에서는 에마가 모두 여우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도 특징이다. 인도에서 발상하여 중국을 거쳐 한반도와 일본에 전래한 불교가 우리는 중국의 가람배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만, 일본은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해왔다. 또, 불교를 능가하여 일본 전통 신을 숭상하는 다양한 형태의 신사는 일본의 전통 신앙을 잘 보여주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외래종교인 불교에 짓눌려서 전통 토속 신을 모시는 서낭당이나 삼성각 등이 사찰의 뒤편에 원두막처럼 조그맣게 자리하고 천대받는 것이 안타깝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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