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강

▲ 베트남 다낭시 한 강에 조성된 통칭 용다리.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 마종기, ‘우화의 강 1’ 부분

#. 새해를 맞아 모처럼 강가를 걸었다. 잔잔한 강을 바라보며 긴 세월, 짧은 기간 교우해온 여러 친구들을 떠올리며 올 한해 건강과 평화를 빌어본다. 강은 모든 것을 포용하며 유유히 흘러간다. 더러 홍수 철에는 격류로 바뀌어 주변을 휩쓸며 큰 재해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강의 이미지는 대체로 평화롭고 대범하다. 고요히 구비치는 강을 바라보며 시인들은 시상을 떠올리고 화가들은 여러 구도와 색감으로 자신이 해석, 구성한 형상과 이야기를 캔버스에 담는다.

올해로 태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고 야석 박희선(1923∼1998) 시인께서 30여 년 전 필자에게 지어준 아호는 우강(愚江)이다. 요즈음은 나이든 세대들도 즐겨 쓰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아호를 자주 사용할 기회가 없지만 야석 선생이 오래 생각하여 선사한 아호 앞에서 늘 성찰의 계기를 갖는다. 느리지만 강은 모든 사연과 속내 이야기를 갈무리하며 유장하게 흘러간다. 바다에 이르러서야 강은 비로소 더 크고 넓은 대상에 자신을 합류시켜 대승의 경지로 나아간다. 나이가 드니 이름보다는 서로 아호를 부르며 교유하면 좋으련만 물리적 나이를 거슬러 점점 젊어지려는 시대 추세는 70, 80대들도 아무개야 하며 이름으로 소통한다. 모두가 젊어지려는 이 시대에 짐짓 늙은 느낌을 주는듯한 아호는 결국 스스로의 품성을 성찰하고 일상을 반추하는 나침반으로서만 기능하는 것일까.

#. 강에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전설이나 설화같이 전승되는 스토리가 뒤따르기도 하지만 주로 예술가들이 강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의 명성에 힘입어 널리 알려지고 명소로 자리 잡은 경우 또한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 프랑스 파리 센 강에 놓여있는 36개 다리 하나하나에는 제각기 독특한 스토리와 사연이 담겨있어 다리 자체로 문화콘텐츠, 관광자원이 되었다. 기욤 아폴리네르가 쓴 ‘미라보 다리’라는 시 한편으로 평범한 다리는 일약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센 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퐁 뇌프 역시 ‘퐁네프의 연인들’이라는 1991년 레오 카락스 감독이 만든 영화로 새롭게 조명 받았다. 센 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는 알렉상드르3세 다리는 19세기말 러시아와 프랑스가 밀월관계에 있을 때 우의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국제관계는 시시각각 이해관계에 따라 변하지만 조형물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은 무상한 이해타산을 넘어 굳건해 보인다.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던 다리 퐁 데 자르는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가 파이프 담배를 물고 서있는 배경이 되어 오래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 이런 다리의 힘에 주목한 경우는 근래 관광지로 떠오른 베트남 중부 다낭시를 흐르는 한 강에 놓인 속칭 용다리<사진>인데 주말 밤이면 불과 물을 뿜어내는 이벤트로 단기간에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가 다리의 부가가치에 눈을 뜨고 있다. 우리나라 여러 곳 멋진 다리들에도 근사한 이야기와 사연들을 만들어 입히고 싶어진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 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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