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아시아·유럽·아프리카의 삼 대륙 사이에 있는 지중해는 동쪽 터키의 이스켄데룬만 해안에서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서쪽 지브롤터 해협까지 약 4000km나 되는 거대한 바다다. 대륙 사이에 있어서 지중해라고 이름 붙여진 바다의 동부에는 그리스와 터키가 있고, 중부의 북서쪽 아드리아해는 이탈리아와 발칸반도의 경계를 이룬다. 그리고 서부는 대서양과 지중해가 만나게 지브롤터 해협이다. 지중해에서 발칸반도의 남쪽에 있는 크레타섬(Creta)은 지중해 최대의 섬으로서 북쪽 에게해(Aegean)와 서쪽의 이오니아해(Ionia)로 나누는데, BC 2000년경부터 대륙 사이의 여러 나라와 해상무역을 하면서 최초로 에게 문명을 이룩했다. BC 1600년경에는 크레타섬과 가까운 발칸반도의 남쪽 해안에서 미케네 문명(Mycenae)이 이어받더니, BC 750경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지중해 연안을 정복하면서 찬란한 그리스 고전 문명을 이루었다.(자세히는 2020. 7. 8. 그리스 여행 참조)

세계제국 로마는 BC 753년경에야 로물루스(Romulus)·레무스(Remus) 쌍둥이 형제가 건국했고, 로마(Rome)라는 지명도 로물루스의 이름에서 기원한다. 그리스 문명보다 1000년 이상 늦은 로마는 BC 264년~BC 146년 약 100년 동안 해양 제국 카르타고(Carthage)와 세 차례의 벌인 포에니 전쟁(Punic War)에서 승리하여 지중해를 제패하고, 세계 제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탈리아반도 최남단의 나폴리는 BC 10세기경 그리스인들이 개척한 식민도시로서 나폴리라는 지명도 그리스어로 ‘새로운 도시(Nea Polis)’라는 뜻이다.
로마가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한 1세기경에 나폴리는 폼페이·소렌토·카프리섬 등과 함께 황제들의 여름 휴양지로 이용되다가 AD 90년경 자치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게르만족의 침략으로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인 1282년에 나폴리 왕국이 세워졌다. 또,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프랑스의 지배를 받다가 1860년 청년 장군 가리발디에 의해 이탈리아가 통일될 때까지 도시국가 나폴리 왕국으로 존재해왔다.

나폴리는 호주의 시드니,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美港)’ 중 하나라고 하지만,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공습을 받고 폐허가 되었다. 게다가 2차 대전 후 철도와 항공교통의 발달로 해상무역의 기능이 크게 약화하면서 도시는 많이 쇠퇴해졌지만, 오늘날까지도 이탈리아 남부의 중심도시로서 철도교통과 금융의 중심지이다.
로마에서 남동쪽으로 약 190㎞ 떨어진 나폴리는 인구 190만 명이 사는 로마·밀라노에 이어 이탈리아 제3의 도시이자 캄파니아(Campania)의 주도(州都)이다. 로마에서 30분마다 출발하는 직행열차를 타면 1시간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고, 일반열차는 약 2시간 40분이 걸린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로마에서 직행열차를 타고, 당일치기로 나폴리와 폼페이를 여행하는 실속파도 있다. 시내 북쪽 약 8㎞ 떨어진 곳에 카포디키노 국제공항도 있다. 그렇지만, 로마에서 폼페이를 거쳐 소렌토를 여행한 우리 가족은 소렌토에서 페리를 타고 지중해의 작은 섬 카프리섬을 여행한 뒤, 다시 정기여객선을 타고 지중해를 건너 나폴리 항에 도착했다.(자세히는 2023. 4. 12. 카프리섬 참조)

나폴리 항의 지명이자 어부들이 배를 타고 멀리 바다로 나가면서 나폴리의 수호성인 루치아에게 무사 항해를 기원하는 이탈리아 민요 산타 루치아(Santa Lucia)를 흥얼거렸다.
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 루치아
산타 루치아….
그런데, 나폴리의 산타 루치아랑 여객터미널 밖으로 나오니, 길 건너 거대한 누오보성(Castel Nuovo)이 우중충한 모습으로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게다가 여객터미널 앞의 넓은 도로 가운데에는 전체 궤도로 전차가 셀 수 없이 오가고, 또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이 차도와 전차 궤도의 구분도 없이 달렸다. 심지어 달리는 전차의 꽁무니를 따라 달리다가 반대 방향에서 전차가 달려오면 순식간에 차도로 이동했다가 전차가 지나가면, 다시 전차의 궤도 위를 달리는 위험한 질주를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반대 방향에서 달려오는 차량이나 오토바이 역시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어서 금방이라도 충돌사고가 날 것 같은 위험천만하고, 무질서한 모습에 나폴리의 첫인상은 매우 음산하고 무질서하며, 지저분한 도시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지중해 최대도시라는 명성과 어울리지 않는 나폴리는 시내버스·트램·메트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지만, 지저분한 도로와 골목, 낡은 아파트들, 고지대에서 사는 주민들을 위하여 고지대까지 오르내리는 트램과 비슷한 푸니쿨라가 나폴리의 특징처럼 느껴졌다.
내겐 첫인상이 좋지 않은 나폴리에서 3일 이상 여행할 예정이라면, 아르테 카드(Arte Card)를 이용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아르테 카드는 나폴리 시내 이용권(3일권 21유로)과 캄파니아주 이용권 3일권(32유로), 7일권(34유로)의 두 종류로 나뉘는데, 나폴리 시내 이용권은 시내 교통 요금과 고고학박물관 등 관광지 3곳의 입장료가 무료이다. 캄파니아주 이용권은 나폴리는 물론 소렌토, 폼페이, 포지타노 등 캄파니아주에서의 교통 요금이 무료이다. 또, 캄파니아주 이용권으로 나폴리에서 30분 거리인 폼페이 유적지까지의 열차 요금과 입장료 18유로를 생각하면, 매우 실속이 있다. 관광안내소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는 팸플릿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여행지와 할인액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나폴리에서 세 가지 유명한 것은 포도주, 이태리피자(Pizza), 그리고 범죄 조직으로 악명이 높은 마피아(Mafia)가 있다. 포도주는 지리적으로 포도 생산에 적당한 지중해의 기후 덕택이고, 피자는 19세기 말 가난한 농부의 아내가 밀 빵을 굽고 토마토와 치즈로 음식을 만들다가 잠시 자리를 빈 사이에 쥐가 밀빵 위에 치즈를 엎지른 것을 농부의 아내는 버리기가 아까워서 먹어 본 것이 유래라고 한다.
당시 나폴리 왕국에서는 매년 요리경연대회를 열었는데, 농부의 아내가 출품한 이상한 빵을 직접 맛본 움베르토 1세의 왕비가 그 빵을 최고상으로 뽑고 왕비의 이름(Pizza Marigherita)를 따서 ‘피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늘날 이태리피자는 종류도 다양하고 맛도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전통과 권위가 있는 것은 왕비 이름을 딴 ‘피자 마리게리트’이다. 피자는 이탈리아 국기 색깔인 빨간색(토마토), 하얀색(모차렐라 치즈), 녹색(바질)이 주재료이다.

또, 마피아는 시칠리아섬을 정복한 이민족들이 나폴리를 침략하여 착취하자, 이에 대항하는 비밀조직이자 지주들의 사병조직으로 시작되었다. 마피아는 공권력보다 주민들에게 가까이 존재하면서 많은 지지를 받았는데, 오늘날 이탈리아는 물론 1930년대 초 미국까지 확대돼 아일랜드계·유대계 갱들로부터 범죄 세계의 지배권을 빼앗았다고 한다. 도박·파업 조종·고리대금업·마약 밀매·매춘 등으로 번 자금으로 호텔·식당·유흥업 같은 합법적인 기업에 투자하여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대규모 조직이 되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