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일일연속극 ‘아씨’ 임희재 작가

▲ 충남 금산읍에 조성된 임희재 문학비와 작가 흉상. 사진=금산문화원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말 탄 임 따라서 시집가던 길 /여기던가 저기던가 /복사꽃 곱게 피어있던 길 / (…) /옛날에 이 길은 새색시 적에 /서방님 따라서 나들이 가던 길 (…) /뻐꾹새 구슬피 울어대던 길 /한 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몇 소절 가사를 읽으면 이내 화자의 정황과 심리상태, 삶의 여정 그리고 분위기가 그려지고 기승전결 극의 흐름도 파악된다. TBC-TV 일일연속극 ‘아씨’의 주제가로 드라마 인기만큼이나 널리 불렸던 노래다.

텔레비전 방송 초기, TV 수상기가 아직 널리 보급되기 전이었던 1970년 3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252회에 걸쳐 방송된 드라마 ‘아씨’는 지금도 깨지기 어려운 높은 시청률 기록과 국민적인 관심을 모았던 작품으로 손꼽힌다.

당시에는 공식적인 시청률 조사가 없었고 1980년 언론 통폐합 조치로 KBS에 통합된 TBC-TV가 서울, 부산 등을 중심으로 송출되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흥미와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던 드라마로 대중문화사에 기록될 만하다.

그 후 ‘여로’, ‘허준’, ‘겨울연가’ 그리고 ‘대장금’ 같은 작품이 크게 관심을 끌었지만 TV방송 초창기 ‘아씨’의 기록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흥미진진하고 복선이 중첩되는 신박한 줄거리 전개에 의존한 것도 아니고 전형적인 등장인물들이 한결같은 캐릭터로 엮어내는 일종의 신파드라마였지만 주인공의 신산한 삶에 공감하고 동정을 아끼지 않았던 당시 국민정서가 바탕에 깔려 있었을 것이다.

이 드라마 방송 시간이면 거리가 한산해지고 방송중인 작품을 동시에 영화로 제작하는가 하면 1997∼1998년에는 같은 제목의 50부작 주말드라마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오로지 자기희생과 인내의 삶을 살아온 주인공이 보여준 전형적인 여성상에 대한 국민들의 동정과 공감이 선풍적인 인기의 원천이었고 김희준, 김동훈, 김세윤, 여운계, 사미자, 김용림, 노주현, 선우용여, 황정순 같은 출연진의 열연도 그러했지만 무엇보다도 극본을 집필한 임희재 (1919∼1971) 작가의 감각과 언어구사력 그리고 시청자의 감성을 파고드는 성격 창조 역량에 힘입은 바 크다.

충남 금산 출신 임희재 작가는 연극, 영화 그리고 TV를 종횡무진 넘나들면서 우리나라 공연예술 특히 영상 문학의 이정표를 세운 탁월한 작가로 꼽힌다. 건강 악화로 ‘아씨’ 집필 중 다른 작가에게 바톤을 넘기기도 하였으나 마지막 회는 본인이 쓰고 끝을 맺었는데 방송이 끝난 뒤 몇 달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으니 이 작품에 쏟은 작가의 열정과 애착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방송기간중 주인공 ‘아씨’ 남편의 외도와 악행을 규탄하며 드라마 스토리에서라도 징벌을 촉구하러 방송사에 몰려오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는 이 작품의 영향력과 국민감성에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

지금 2020년대에 이런 스토리와 플롯의 드라마가 방송되지도 않겠지만 그사이 엄청나게 변화된 인식과 감성 특히 여성의 위상과 가치관은 우리 사회가 이룩한 압축 성장 50년 세월의 간극을 실감하게 해준다.

요즈음 많은 TV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자극일변도 스토리 전개와 극단에 치우치는 캐릭터 설정 그리고 나날이 거칠게 표현되는 언어와 행동은 시대상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잔잔하게 물 흐르듯 서사가 펼쳐지는 가운데 뜨거운 공감과 감정이입을 이끌어 냈던 임희재 작가의 영상문학 창작 기량과 시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혜안을 새롭게 평가하게 된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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