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기도드려 어머니 시신 찾은 효자

8세 전자는 공의 고조부로서(八世 銓字 公之高祖父) 은청광록대부로 어사대의 어사대부를 역임했으며 배위는 중군부인이다(銀靑光祿大夫御史臺御史大夫歷任而 配位則 中郡夫人矣).

9세 참자는 공의 증조고로서(九世 참字公之 曾祖考) 은청광록대부로 한림원학사를 지냈으며 배위는 중군부인이다(銀靑光祿大夫 翰林院學士而 配位 中郡夫人矣).

10세 성자는 공의 왕고로서(十世 晟字公之 王考) 은청광록대부로 세자시강원 찬선대부를 지내고 원나라에서 증직위하니 훈(공)에 호군이요 작(위)는 군공으로 배위는 중군부인이며 원나라에서도 증작위군부인이다(銀靑光祿大夫 世子侍講院 贊善大夫 歷任 於元贈勳 護軍 爵君公也 而配中郡夫人矣 又 於元國贈爵 郡夫人也).
11세 명양공 즉 공의 선고로서(十一世 明亮公則 先考) 흥록대부로 집현전의 대학사였다.

원나라에서 증직은 훈공으로 호군이요, 작위는 군공이다. 배위는 대군부인으로 원나라의 증직은 종2품 작위 군부인이다(興祿大夫 集賢殿 太學士矣 元國 贈勳 護軍爵君公 矣配 大君夫人矣 而元國贈爵 從二品 郡夫人也)

12세 즉 김신(金侁)공은 (十二 世 諱 侁公(一名 : 詵(原音 신(集韻上 疎臻切) 俗音 선shen(三省刊大字源) 안성 죽계에서 출생하고 태서곡에서 거주하였다(安城 於竹溪 出生而 台西谷則生居之地也 : 錦山郡 文化公報課 發行 地理誌 參照要). 공의 생거지에 대해서는 이미 보첩 등에 많으나 문헌 지리지 등의 기록을 추고함은 당연할 것이다(公之 生居地 對 古代文獻 等 追考 當意矣).

공은 일찌기 타고나신 자품이 보통사람보다 뛰어나시고 재간과 도량은 넓고도 원대하시며(公早而天姿卓異器局宏遠) 또한 일찌기 외롭게 편모를 뫼시고 어릴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심에(早孤偏親自幼至孝) 덕행과 충효는 세상에서 추앙받았고(德行忠孝世世推矣), 고려 24대 원종조에 출사후(高麗二十四代 元宗朝出仕後) 이어 누진승차하니(連累陞差) 고려 24대 원종조계유(一二七三年七月) 상장군(정3품)으로서 원나라에 하절사로 갔고(高麗二十四代元宗朝在位一二六○~一二七四)癸酉(一二七三)七月以上將軍行於元賀節使(高麗史節要第十九卷七十五頁條參照) 또한 동년팔월 고려왕이 보낸 상장군 김선이 성탄하절사로 왔다는 기록이 있다(亦同年八月庚戌朔丁丑高麗王王遣其上將軍金詵聖誕節來賀)元史卷之八,世祖五年一五二頁參照).

공은 원나라에서 소임을 다한 후 수개월 경과후 귀국 향리에 이르니(於元公則所任盡力後數個月經過歸國至鄕里則) 그 당시 섬진강을 따라 올라온 왜구들이 그 유역을 비롯해 지리산 및 덕유산을 거점으로 해 약탈이 극심하던 시기라(其當時蟾津江從流來入倭寇流域爲始智異山及德裕山據點殺傷掠奪極甚時期) 결국 공의 부재중 향리도 약탈피해 막심하니 대경실색이라(結局公之不在中鄕里亦是掠奪被害莫甚大驚失色也). 향리고을에 남은 빈터에는 (鄕邑遺址) 푸른 담쟁이 숲속에 묻혀있으며(碧蘿絞林) 고을사람들은 날카로운 병기에 죽은자 산과들에 백골이 언덕을 이루었는데(被禍鄕民死鋒千山萬野白骨成邱) 공의 모부인 역시 화를 입었으나 체백의 소재처를 알 수 없음에도 물을 곳도 없는 바(公之母夫人亦爲被禍體魄不知所在處而無所可問也) 공은 주야로 통곡하며 몸소 모부인체백을 찾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몸만 수척함에(公則晝夜哀痛爲哭而親自母夫人體魂努搜寧毁矣)기어코 찾아야하겠다는 일념의 각오로(期於努探一念之悟) 후원에 짐짓 일부러 높게 설단하고(設壇故園爲高,진악산 관음굴) 칠일칠주야를 호곡기원하자(七日七晝夜號哭祈于) 다음날 가을하늘에서(昊天翌日) 한줄기 눈으로 가르키는 길로 따라가보니(一條雪指路) 많은 무리의 유해가 우거진 풀속에 쌓였음에 그 적실함을 알지 못해(然衆骸총積莫知其的) 다시 정성을 다하여 하늘에 기도하시기를(祈天甬致誠曰), 만약 나의 어머니 유골이 옳다면 변색이 당연하리라고 말을 마치지도 아니한데(若是吾母遺骨卽當變色言未訖) 황천이 감응하사(皇天感應) 청천백일하에 운무로 어두우며(靑天白日雲霧晦冥) 격렬한 천둥은 입을 다물게하고 큰비는 반나절에 그치니(雷霆護금大雨半餉而止) 눈을 뜨고 한 곳을 살펴보니 유해의 색이 변함에 푸른색이 완연하고(開目視之一處遺骸之色爲變靑宛然則) 이마 위에 자주빛 글씨로 왈 고려국대효자김신의 모친뼈라 하였으니(額上有紫書曰高麗國大孝子金侁之母骨也) 공은 급히 유해를 거두어 염습후 정성을 다하여 정중히 상례를 마치심에(公至急遺骸收감至誠竭力喪禮鄭重禮畢也) 후일 고려국대효자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책자에 등재되었음에 만세영원토록 불멸할 것이다(後日高麗國以大孝子而東國新續三綱行實圖冊字爲上載萬歲永遠不滅而己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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