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베키오다리 전경

동서고금의 어느 도시를 막론하고 도시는 인간 생활에 필요한 생활용수를 공급해주는 강을 끼고 있다. 피렌체 시내를 흐르는 아르노강(Arno River)에는 10개의 다리가 있지만, 그중 가장 오래된 다리가 베키오 다리(Vecchio Bridge)다. 베키오란 ‘가장 오래된’이란 의미다.

베키오다리
베키오다리

아르노강에서 강폭이 가장 좁은 이곳에는 6세기경 로마가 피렌체를 처음 개척한 이후부터 나무다리를 설치해서 사람이 통행하도록 했지만, 홍수로 다리가 자주 유실되었다. 그러자 1350년 두오모 성당과 종탑을 설계했던 지오토의 제자 타데오 가디가 튼튼한 대리석으로 공사에 착공하여 1350년 폭 25m, 길이 200m의 튼튼한 다리를 완성했다.

베키오다리
베키오다리

베키오다리가 피렌체에서 유명하게 된 것은 문예부흥기에 피렌체를 찾는 수많은 사람이 통행하면서 번화가가 되었고, 특히 1442년 피레네 총독이 다리의 양쪽 길가에 정육점, 가죽 가공점, 철공소 등 상가를 허용함으로써 쇼핑거리가 됐기 때문이다. 폭 25m의 도로는 10m 정도로 좁아졌고, 대부분의 점포가 가축과 관련된 가게들이어서 항상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그러나 상인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장사하면서 제각기 편리한 대로 공간을 늘리다 보니, 점포는 강 쪽으로 울퉁불퉁 덧대에 늘인 모습은 마치 블록을 쌓은 것처럼 새로운 모형을 만들었고, 다리 양쪽의 상점들과 노점들은 마치 피렌체의 오래된 골목을 보는 것 같다.

벤베누티 체리나 동상과 사랑의 열쇠들
벤베누티 체리나 동상과 사랑의 열쇠들

1549년 아르노강 건너편에 있는 피티 궁전이 완성되자 코시모 1세는 베키오 궁전에서 피티궁전으로 옮겼는데, 두 궁전을 오갈 때마다 상인.시민들과 뒤섞이기 싫어서 1565년 조르조 바사리(1511~1574)에게 다리의 점포 위에 2층을 증축하여 피티 궁전에서 베키오 다리를 거쳐 베키오궁전과 메디치 은행 건물까지 2층 전용 통로를 만들었다. 이 회랑은 조르조 바사리의 이름을 따서 ‘바사리 행랑’이라고도 하는데, 바사리 행랑은 비공개하다가 최근 가이드 투어인 경우에 한하여 허용했다고 한다.

우피치미술관의 단테
우피치미술관의 단테

그런데, 1593년 코스모 1세의 둘째 아들 페르난도 1세(1549 ~1609)는 베키오 다리 1층의 상점에서 풍기는 도축장의 고기와 가죽 냄새가 싫다고 그들을 쫓아내고, 고급 상점인 금은세공 상들을 입주하게 했다. 이로써 베키오다리는 피렌체에서 가장 고급 쇼핑거리로 변해서 당시 유명한 금 세공장인 벤베누티 첼리나(1500~1571) 흉상이 세워졌다. 게다가 베키오 다리는 단테가 짝사랑하던 베아트리체(Beatrice)를 처음 만난 장소로도 알려졌다(자세히는 2023.6.21. 단테 생가 참조). 피렌체의 젊은 연인들이 운명적인 사랑이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을 이곳에서 맹세하면서 그 증표로 자물쇠를 채운 뒤 열쇠를 강물에 버리는 것이 유행하여 전 세계로 퍼졌는데, 이런 풍습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져서 서울 남산타워 주변 등 전국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정작 피렌체 정부에서는 다리에 자물쇠 매다는 행위가 다리에 손상을 입힌다며 금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구원의여성
구원의여성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운 피렌체의 상징인 베키오 다리는 2차 대전 때인 1944년 8월, 독일군이 연합군에 쫓겨서 달아날 때, 추격을 피하려고 피렌체에 있는 모든 다리를 무너뜨리면서도 베키오 다리만은 남겨두었을 정도로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에게 역사적 중요성을 갖고 있다. 베키오 다리는 1966년 홍수로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복구되었고, 1982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

피렌체는 그다지 넓은 도시가 아니어서 시뇨리아 광장에서 우피치 미술관을 거쳐 베키오 다리까지 도보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베키오 다리로 가는 아르노강의 노변에는 베키오 다리, 피티 궁전, 미켈란젤로 언덕 등을 찾는 여행객을 상대로 유학생. 무명작가들이 그린 그림을 놓고 팔고 있다. 또, 피렌체는 소·양 등 가축을 많이 도축하여 다양한 고기 요리가 발달했고, 그 부산물이라고 할 소·양가죽을 가공한 롱코트와 점퍼, 장갑, 가방, 허리띠 같은 가죽제품 생산지로 유명해서 명품 숍은 물론 값싼 기념품점들도 많다. 여행객들은 피렌체에서 이런 다양한 종류의 가죽제품을 저가에서부터 명품까지 수준에 맞춰서 살 수 있는데, 서양인의 체격에 맞춰져 만들어진 허리띠의 경우에는 허리띠 구멍을 몇 개 더 뚫어야 사용할 수 있다.

다비드상
다비드상

그런데, 사실 아르노강은 가죽을 가공할 때 사용하는 화학약품과 각종 부산물을 정화하지 않은 채 방류하여 강에서 풍기는 악취가 코를 막게 한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본 피렌체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본 피렌체

베키오 다리를 건너서 오른쪽 길로 직진하면 코시모 1세의 피티 궁전과 보볼리 정원으로 가는 길이고, 왼편 길을 따라서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가면 피렌체가 낳은 르네상스 3대 화가 중 하나인 미켈란젤로를 기리는 ‘미켈란젤로 언덕’이다. ‘미켈란젤로 언덕’은 1871년 미켈란젤로의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여 조성된 피렌체 시민 공원으로서 ‘미켈란젤로 광장’이라고도 하며, 입장료가 없다. 광장 가운데에는 팔각형 계단 돌로 장식된 기단 위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David)이 있는데, 이것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소장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피렌체의 상징인 비잔틴 양식의 두오모 성당․ 고딕식 첨탑이 솟은 베키오 궁전을 비롯한 피렌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피렌체의 중앙역인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에서 1번 시내버스를 타고 약 20분이면 미켈란젤로 언덕까지 갈 수 있다. 버스요금은 1.2유로이며, 티켓은 90분 동안 시내에서 환승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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