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그레베 마을.

알프스산맥이 이탈리아 북쪽에서 동서로 뻗으면서 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와 국경을 형성하는데, 알프스산맥의 카디보나 고개에서 지중해의 시칠리아섬까지 1192㎞에 펼쳐진 아펜니노산맥은 한반도의 태백산맥처럼 이탈리아반도의 척추를 이루고 있다. 그중 피렌체 남쪽 해발 200~800m의 키안티 산맥에 있는 산악도시 키안티(Chianti)는 BC 800년경부터 에트루리아인들이 정착하면서 포도 재배를 시작했다. 토스카나주 한가운데인 피렌체(Firenze)와 시에나(Siena) 사이의 높고 낮은 언덕들이 겹겹이 펼쳐진 구릉 지대에서 시에나, 아레초(Arezzo) 사이에 있는 키안티는 토양과 기후 조건이 좋아서 포도주의 명산지로 유명하다. 키안티 와인은 유럽 각지에서 로마로 가는 순례자, 상인들의 피렌체에 머물면서 입소문으로 널리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교황청에서도 공식 음료로 지정되면서 영국에도 수출되었다.

키안티는 카스텔리나(Castellina), 판치노(Panchino), 그레베(Greve), 라다(Radda)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완만한 구릉 지대는 온통 포도밭, 올리브나무밭이고, 토스카나 지역 특유의 사이프러스 나무가 즐비하다. 특히 1716년 토스카나를 다스렸던 메디치가 코지모 3세(Cosimo III de’Medici: 1642~1723)가 칙령으로 오래전부터 포도를 재배해온 키안티의 카스텔리냐. 가이올레(Gaiole). 라다·그레베 등 네 개의 마을에서 생산한 포도주에만 ‘키안티’라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한 역사적 전통을 갖고 있다.

키안티와인 상표
키안티와인 상표

그러나 키안티 와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키안티 이외의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에도 ‘키안티’라는 상표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1924년 키안티의 와인 생산자 33명은 키안티 와인의 전통과 품질을 보호하기 위하여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협회(Consorzio Vino Chianti Classico)를 조직하였고, 1932년에는 법령으로 1716년 최초 설정한 키안티 마을에서 생산한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와 그밖의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을 ‘키안티(Chianti)’로 구분해서 부르게 했다. 즉, 키안티 클라시코는 키안티에서도 토양과 기후 조건이 좋은 지대에서 생산된 포도주만을 키안티 클라시코라고 하는데, 키안티 클라시코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과 식별하기 위하여 미칼렌젤로의 제자이자 건축가 화가로 유명한 조로죠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가 그린 검은 수탉인 갈로 네로(Gallo Nero) 문양을 병목에 붙이기 시작했다.(바사리에 관하여는 2023. 5. 24.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 참조)

일종의 품질보증서인 갈로 네로의 유래는 14세기에 끊임없이 영토분쟁을 벌이던 피렌체 공국(검은 수탉)과 시에나 공국(하얀 수탉)의 경쟁에서 비롯되었다. 두 공국은 수탉 한 마리씩을 준비하여 새벽에 수탉이 울 때 두 공국의 기병이 달리기 시작하여 둘이 만나는 지점을 국경으로 정하기로 했는데, 피렌체는 수탉을 굶겼고, 시에나는 수탉에게 배불리 먹이자, 결국 배고픈 피렌체의 검은 수탉이 먼저 울면서 피렌체는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됐다고 한다.

이탈리아 포도주 중에서도 최고등급에 속하는 ‘클라시코 키안티’는 키안티 지방에서도 카스텔리냐가 원조인데, 카스텔리냐 마을 주변은 온통 포도밭이다. 마을의 중심인 ‘중세 시간의 거리(Street of the Times)’에는 수탉이 그려진 클라시코 키안티 포도주 양조장(Winery)과 가게가 있다.

또, 14세기에 쌓은 고성을 고고학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이 지역에서 발굴된 청동기 시대 유물과 에트루리아 시대의 마차를 비롯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성탑 위에 올라가면 키안티 포도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된다. 2차 대전 때 파괴되었다가 재건축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산 살바토레 교회(Church of San Salvatore)에는 동정녀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그린 15세기 프레스코화가 있다.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프러스
사이프러스

특히 카스텔리냐에는 토스카나 지방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길 양편에 가로수처럼 많이 심은 것이 특징인데, 영화 ‘글라디에이터(Gladiator)’에서 주인공 막시무스 장군이 코모두스에 의하여 저격당하였다가 노예로 팔려 가면서 아내와 어린 아들이 아버지를 기다리는 고향 집 풍경으로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막시무스의 고향은 스페인인데도 영화에서는 키안티의 사이프러스 나무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키안티에서 슬로시티로 휴식을 즐기거나 여행객들은 포도주 생산 농가들이 포도주를 산더미처럼 쌓아둔 개인 저장 굴로 안내하고, 균사(菌絲)가 거미줄처럼 퍼진 속에서 시음하게 하고, 한 사람당 두 병씩 판매하는 현지 체험이 정해진 코스이기도 하다.

적포도주.(빨강 원 안에 검정수탉)
적포도주.(빨강 원 안에 검정수탉)

그레베(Greve) 마을은 슬로시티 운동의 발상지로 유명하지만, 키안티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곤 해도 인구는 고작 2000~3000명에 불과하다. 그레베 마을은 세 개의 계곡이 만나는 언덕 위에 있어서 주변 지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데, 삼각형 광장인 피아자 마테오티(Piazza Matteotti)에는 16세기 초 영국 헨리 7세의 지원을 받아 북아메리카의 동해안을 탐사한 키안티 출신 탐험가 조반니 다 베라자노(Jiovanni da Verrazzano)의 동상이 있다. 광장의 측면을 따라 늘어선 아치형 통로를 지나면 수공예품, 도자기 및 기념품 판매점과 와인 바, 레스토랑 등이 있고, 광장 남쪽에는 11세기에 지은 신고전 양식의 산타 크로체 교회(Santa Croce Church)에서는 종교화 및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다. 이렇게 포도주를 찾아온 여행객들에게 마을의 특산물과 수공예품을 기념품으로 판매하는 점에서 이들의 앞서간 자본주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슬로시티에 관하여는 2023. 7. 19. 키안티 개요 참조)

피엔자 고성
피엔자 고성
안티노리 와이너리
안티노리 와이너리
개인 와어너리
개인 와어너리
저장굴로 가는  나선형 계단
저장굴로 가는 나선형 계단
산타 크로체 교회
산타 크로체 교회

그런데, 1984년 키안티에서 포도 생산 농가들은 DOCG라는 독자적인 원산지를 보증하는 상표를 제정했다. ‘DOCG’란 D.O.C 인가를 받은 포도주 중 최우량 포도주라는 증명으로서 키안티 7개 지역의 포도주가 DOCG의 92%를 차지하고, 다른 지역의 포도주가 약 8% 정도라고 한다. 참고로 키안티 클라시코는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산지오베제(Sangioves) 품종을 80% 이상 사용해야 하며, 레드 품종을 20%까지 블렌딩 할 수 있다. 또, 키안티 클라스코는 재배 면적 ha당 7.5톤, 포도나무 한 그루당 생산량은 2kg으로 제한되지만, 키안티는 ha당 9톤, 포도나무 한 그루당 3kg를 생산할 수 있어서 포도의 완숙도, 당도, 최소 알코올 함량 기준도 키안티 클라시코(12%)가 키안티(10.5%)보다 훨씬 높다. 또, 최소 숙성 기간도 키안티 클라시코는 12개월, 키안티는 그 절반인 6개월로 정해졌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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