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베네치아 부두
베네치아 부두

페리를 타고 베네치아 부두에 내리면 비좁은 섬에서도 제법 넓은 광장 같은 도로가 있다. 부두에서 베네치아 부두에서 수 세기 동안 베네치아의 사회·정치 중심지였던 산마르코 광장까지 가려면 몇 개의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산마르코 광장까지 가는 도로는 사실상 베네치아의 메인 스트리트다.

베네치아 부두의 노점상
베네치아 부두의 노점상

이곳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이 인종 전시장 같은데, 이들을 상대로 수많은 노점상과 기념품점이 즐비하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형형색색의 가면과 모자다. 가면은 산마르코 광장을 에워싼 베네치아 주재 각국 대사관에서 매일 밤 무도회를 개최하면서 남녀들이 자기의 신분을 감추기 위하여 쓰던 전통으로 오늘날까지 베네치아의 특산물이 되었다.

두칼레궁 앞에서 본 산마르코 광장
두칼레궁 앞에서 본 산마르코 광장

베네치아에 온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코스는 산마르코 성당, 베네치아를 지배했던 총독이 살았던 두칼레궁, 그리고 세계적인 유리 제품을 생산하는 무라노섬, 카지노와 해수욕장, 베니스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리도섬 등이다. 이곳들은 도보로도 하루 사이에 모두 돌아볼 수 있지만, 도시에는 나무 그늘이 없어서 무더운 여름철에 걷는 것은 대단한 인내심을 요하는 고생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여행 시기를 결정해야 한다.

탄식의 다리
탄식의 다리

베네치아의 400여 개의 다리 중 가장 유명한 다리는 ‘탄식의 다리 혹은 통곡의 다리(Ponte del Sospiei)’다. 한 도막의 짧은 아치형인 탄식의 다리 왼편이 옛 총독 관저인 두칼레 궁전이고, 오른쪽이 죄수들을 가두었던 감옥이다. 두칼레궁에서 재판받은 죄수들이 다리를 건너 감옥으로 들어가면서 “이제는 아름다운 베네치아를 볼 수 없겠구나!”하고 탄식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바람둥이로 유명했던 카사노바도 이 다리를 거쳐서 감옥에 갇혔다고 한다. 투박하고 네모난 모양의 두칼레 궁전은 9세기에 처음 건축된 이후 수차 개축되면서 고딕식과 르네상스식이 절충된 모습인데, 오랫동안 지중해 무역으로 국부를 쌓은 도시국가 베네치아가 외국을 점령하여 약탈한 문화재와 베네치아 출신 예술가들이 남긴 예술품으로 장식되었는데,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탄식의 다리를 지나 두칼레궁전을 안고 우회전하면, 베네치아 관광 1번지 산마르코 성당이 있는 산마르코 광장(Plazza San Marco)이다. 베네치아의 상징인 산마르코 광장은 산마르코 성당을 중심으로 광장이 직사각형인데, 성당은 828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산마르코(St. Marco)의 유해를 가져온 뒤, 956년 섬 6개를 연결하여 그 위에 성당을 짓고 유해를 모셨다. 산 마르코는 신약성경 ‘마태복음’의 저자다.

산마르코 성당
산마르코 성당
두칼레 궁
두칼레 궁
산마르코성당 정문
산마르코성당 정문

베네치아는 해상무역으로 큰 부를 축적한 도시국가였지만, 가톨릭에 의지하여 도시의 권위를 높이려고 산마르코의 유해를 가져온 것 같다. 산마르코 성당은 착공한 지 107년 만인 1063년에 완공되었는데, 상인들로부터 소득의 1%씩을 징수하여 건축비로 사용했다. 그런데, 성당 건축에 100년 이상 걸린 탓에 첨탑은 고딕식이고, 아치형 정문은 로마네스크식, 화려한 금분 모자이크 장식은 비잔틴식 등 다양한 양식의 복합 건물로서 당시 베네치아가 여러 나라와 교역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인 것을 보여준다. 산마르코 성당은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 제노바 성당 등과 함께 ‘중세 유럽의 4대 교회’이지만, 성당 내부는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산마르코 광장의 옛 대사관 건물들
산마르코 광장의 옛 대사관 건물들
산 마르코 광장의 서쪽
산 마르코 광장의 서쪽

성당의 반대편 건물은 코레르 미술관이다. 미술관 앞에서 산마르코 성당을 향해서 오른쪽이 신정부 청사이고, 왼쪽이 구정부 청사빌딩이다. 이렇게 광장을 에워싼 것 같은 3면의 건물들은 도시국가 베네치아 공화국과 교역하던 나라의 공사들이 집무하던 공관이어서 1805년 베네치아를 점령한 나폴레옹은 이곳 산마르코 광장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모두 업무 빌딩으로 변신했다.

산마르코 성당과 신정부 청사 사이에 높이 99m의 종탑은 원래는 9세기경 등대로 사용했던 곳인데, 이곳에서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만들어서 실험했다고 한다. 종탑은 1902년 석조로 재건했지만, 1912년 붕괴하자 재건축하면서 관광객을 위한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서 전망대로 꾸몄다. 이곳에서 산마르코 광장을 조망하는 것도 운치가 있다.

베네치아 광장 종탑
베네치아 광장 종탑

산마르코 광장은 서유럽 도시들의 광장처럼 마치 타일을 붙인 것처럼 잔잔한 석주로 포장되었다. 광장에서 수십만 마리의 비둘기들과 여행객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은 베네치아의 명물이지만, 정작 현지인들은 비둘기의 배설물로 골치를 앓고 있다. 또, 베네치아는 겨울과 봄 사이의 우기는 물론 여름철에도 갑작스러운 홍수로 바닷물이 불어나서 도로며 1층 건물들이 침수되는 현상을 겪는다. 이것을 아쿠아 알타(Aqua Alta)라고 하는데, 이런 현상에 익숙해진 베네치아인들은 우리네 시골집의 평상(平床) 같은 길쭉한 철제구조물을 도로의 건물 벽에 기대두었다가 바닷물이 차오르면 평상을 깔아서 그 위로 사람들이 통행하고 있다. 가끔은 바닷물이 출렁이는 산마르코 광장에서 보트를 타거나 수영하는 모습이 우리네 신문과 방송 뉴스에서도 보도되고 있다. 성 마르코 성당의 바닥도 움푹 가라앉은 현상이 상당한데, 마치 침몰하는 베네치아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산마르코 성당을 둘러싼 성벽 같은 건물들 아래 아치형 출입구가 여러 도로로 통하는 길목인데, 성당의 왼편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비좁은 골목에 크고 작은 상가가 즐비하다. 이곳에서 베네치아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으며, 지중해 무역으로 이슬람의 유리 제조 기술을 익힌 베네치아인들이 다양하고 고급 크리스털 제품은 베네치아의 특산물이자 세계로 수출되는 주요 상품을 한쪽에서는 뜨거운 화로에서 기술자들이 직접 만들고 있고, 한쪽에서는 크리스털 제품을 전시하면서 판매하는 매장이 있다. 우리 가족은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세계 어느 도시에도 있다고 하는 중국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중국집 특유의 냄새도 없고, 음식도 퓨전 중국 음식들이었다. 비좁고 허름한 골목은 우발적인 범죄를 당하기 쉬우니, 대낮이라도 조심해야 한다. 이렇게 독특한 베네치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중 첫째로 꼽기도 한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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