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호프부르크 궁

인스브루크에서 가장 번화한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가 끝나고, 좁은 헤르초크 프리드리히 거리부터 구시가지(Altstadt)다.

구시가지는 600년 이상 유럽을 지배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발자취가 곳곳에 많이 남아있어서 인스브루크를 ‘알프스의 장미’라고도 한다. 구시가지 거리의 양쪽은 라우펜이라고 불리는 천장이 낮은 고딕식 아케이드 보도인데, 중세도시의 특징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미장원, 옷 가게, 술집․ 여관이나 호텔 같은 점포마다 입구에 파마머리나 옷․ 술잔 등을 특징 있게 철제 간판이 보도 쪽으로 돌출되어 있는데, 문맹자가 많았던 당시에 행인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광고물로 만들어 내건 것이다.

구시가지 가게 상표
구시가지 가게 상표

이것은 인스브루크만의 특징은 아니지만 좁은 골목길 양편에 간판들이 돌출되어 있어서 더 인상적이다. 또, 750~1000년 이상 된 호텔들은 크기나 설비가 아니라 오랜 역사와 함께 호텔에서 묵고 간 저명인사의 이름과 숙박하고 간 기록을 호텔 입구에 마치 음식점 메뉴처럼 자세히 적어서 소개하고 있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다. 여행객은 유명 인사들이 묵고 간 객실에 숙박하려고 하여 인기라고 한다.

인스브루크는 1239년 자치시가 됐는데, 인스브루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합스부르크가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 1493~1519)가 발코니에 황금 지붕을 만든 궁과 막시밀리안 1세가 살았던 호프부르크 궁전(Hofburg)이다. 1485년 합스부르크가의 프리드리히 3세(Frederick III: 1440~1494)가 비엔나에 있던 수도를 인스브루크로 옮겨온 이후, 인스브루크는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를 겸하게 되었다.

호텔의 명사 명단
호텔의 명사 명단
황금지붕
황금지붕

프리드리히 3세의 아들 막시밀리안 1세는 1483년부터 아버지와 공동 황제로 있다가 부친의 사후 단독 황제가 되었는데, 그는 1494년 밀라노의 공작 갈리아초 마리아 스포르차의 딸 마리아 비앙카와 세 번째 결혼했다.

막시밀리안 1세가 결혼 2주년 기념을 앞두고 합스부르크가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하여 광장을 내려다보는 궁전의 5층 발코니 위에 금박을 입힌 동판으로 지붕을 만들었다. 이것을 황금 지붕(Goldenes Dachl)이라고 하는데, 2,657개의 동판으로 덮은 황금 지붕이 있는 발코니 아래 2, 3층 발코니 벽에는 합스부르크가가 지배하던 8개 영지의 문장(紋章)과 황제와 왕비상을 조각해 놓았다.

막시밀리안 1세
막시밀리안 1세

막시밀리안 1세 재위 시기는 우리의 조선시대 연산군(1494~1506)~ 중종(1506~1544) 때인데, 경복궁이나 경회루 등과 비교해 보면 참으로 옹색하고 조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성로마제국 가문인 호헨슈타우펜가(Hohenstaufen: 1138~1254)는 1246년 프리드리히 2세(1212~1250)가 헝가리전쟁에서 전사한 이후 황제가 없는 대공위시대(大空位時代: 1254∼1273)가 19년 동안 계속될 때 제후들이 독립했다.

1273년 10월 트리어·마인츠·쾰른 대주교, 작센 공작, 라인의 팔라틴 백작,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보헤미아 왕 등 7명의 선제후(選帝侯)는 점차 강력해지는 보헤미아 왕 오타카르 2세를 배제하려고 가장 미약한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 1세(Rudolf I: 1273~1291)를 독일 왕으로 선출한 것이 600년 동안 유럽을 지배한 합스부르크가의 시작이다.

루돌프 1세는 교황 그레고리오 10세로부터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승인받았으나, 그의 사후 영토는 장남 알브레히트 1세(독일 왕)와 루돌프 2세(오스트리아 왕)에게 분할됐다.(자세히는 2023. 10. 11. 오스트리아 개요 참조)

궁전 로비 초상화
궁전 로비 초상화
호프부르크
호프부르크

아무튼 황금 지붕이 있는 궁전은 인스브루크가 1964년과 1976년 등 두 차례 동계올림픽 개최를 기념하여 1996년 1층은 올림픽 박물관으로, 2층은 막시밀리안 박물관(Maximilianeum)으로 이용하고 있다. 박물관 입장료는 어른 4유로, 학생 2유로인데, 인스브루크 패스(Innsbruck Card)가 있다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인스브루크 카드는 인스브루크 중앙역, 관광 안내센터, 케이블카 역 등에서 살 수 있지만, 국내에서 온라인으로 살 수도 있다. 박물관의 내부는 호프부르크 궁전과 마찬가지로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프레스코화(Presco)로 장식되었다. 3층 황금 지붕과 문양 2층, 실내에는 응접실․식탁․ 침실 등이 세련된 색조와 디자인으로 잘 보존되어 있으나, 내부의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프레스코화에 대해서는 2023. 3. 15. 바티칸 성 시스티나 성당 참조)

황금 지붕 바로 옆의 호프부르크 궁전(Hofburg)은 막시밀리안 1세가 살았던 궁이다. 합스부르크가의 초기 궁전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유럽을 지배하던 왕가의 궁전치고는 매우 협소하다. 호프부르크 궁의 입장료는 8유로이고, 인스브루크 카드가 있으면 무료입장할 수 있다.

호프부르크 궁의 1층 로비에는 마리아 테레지아와 16명이나 되는 자녀들의 초상화를 벽면에 가득 전시되어 있고, 2층은 마리아 테레지아가 아들 요제프 2세를 결혼시킬 때 로코코 식으로 새롭게 단장한 곳으로서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막시밀리안 1세도 왕궁 옆의 왕실 예배당에 묻혀있다.

마리아 테레지아 가족
마리아 테레지아 가족

마리아 테레지아는 카를 6세(Karl Ⅵ: 1711~1740)의 딸이다. 카를 6세는 자식이 없자 국사 조칙(prgmatic sanction)을 발표하여 장자 상속제에 따르되, 자식이 없으면 딸이 지위를 넘겨받는다고 했다. 1740년 카를 6세가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고 마리아 테레지아가 즉위하자, 주변의 여러 군주가 국사 조칙을 부인하면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을 벌였다.

그러자 마리아 테레지아는 1745년 남편 프란츠 슈테판(Francis Ⅰ: 1745~1765)을 황제로 즉위시키고, 자신이 실질적인 황제로서 국정을 총괄했다(마리아 테레지아에 대해서는 2023. 10. 26.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참조). 1696년 레오폴드 1세(Leopold I: 1658~1705)가 오스만 튀르크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빈의 쉔브룬 궁전을 6년 동안 파리 베르사유 궁전처럼 대대적으로 개축하여 합스부르크가의 여름 궁전으로 삼고, 인스브루크의 호프부르크 궁전은 겨울 궁전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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