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느림의 위안을 아시는지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처절한 얼굴로 카메라를 향해 외치는 배우의 광고를 보면서 격하게 공감했던 적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 날, 멍하게 침대나 소파에 누워 건성건성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를 본다면 제법 괜찮은 처방전일 수 있다. 사건같은 것들은 딱히 없이 화면은 느릿느릿하다. 지루한 부분은 잠깐 졸다 봐도 괜찮다. 자다 일어나서 봐도 괜찮다. 바로 그것이 그녀의 영화들이 말하고 있는 ‘슬로 라이프’이기 때문이다. 계속읽기
2. 다 나누고, 별이 되다
제가 마주한 사회는 거칠고, 춥고, 험하고, 인간관계에서도 지치기만 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장남으로 태어난 무게감 때문일까요? 저는 늘 차분하고 내성적이었어요. 쑥스러운 자기 칭찬이지만 늘 나보다 남을 생각하며 살았어요. 헌혈도 자주 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면 먼저 나서서 도왔죠. 그게 곧 저를 위하는 길이라 믿었거든요. 그러나 세상 속에서 저는 쉽게 지치기도 했어요. 그렇게 지쳐 스러질 때쯤에야... 계속읽기
3. 별을 보내는 의식
아이들은 자체로 자신만의 삶을 그린다. 그들의 우주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푸릇한 세상을 난, 너무 작게 보았구나. K의 주변을 빙 둘러싼 충혈된 눈동자들이 물기 아래로 반짝인다, 쉰두 개의 붉은 별처럼. 우주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던가. 별들이 모여드는 맑은 은하를 목격했던 십여 분이 초고속 사진을 재생하듯 흐른다. 별을 보내는 소박한 의식이 몽글몽글한 솜뭉치가 되어 심장 안을 굴러다닌다.... 계속읽기
4. 성심당이 구워낸 기적의 스토리
성당의 청아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대전 원도심에 잠시의 평온이 깃든다. 성당 맞은편 은행동의 한 귀퉁이,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동네빵집에선 갓 구운 구수한 빵 냄새가 향긋하게 피어오른다. 그 세월이 60여 년이다. 도시는 많이 변했지만 대흥동성당과 이 동네빵집은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원도심의 중심 추 역할을 하고 있다. 원도심은 이제 끝났다고 하지만 선뜻 장담할 순 없다. 이 동네빵집의 ‘미친 존재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밝은 빛을 발한다. 계속읽기

5. 대둔산에서, 첩첩이 산 너머 대전
그곳, 전북 땅에서 대전이 보일 줄 몰랐다. 논산 벌곡 수락계곡을 따라 오른 대둔산. 마천대(878m)에 오르자 360도 조망이 감탄사를 불렀다. 남쪽으론 전북 완주군이 확 트인 시야에 들어왔고 뒤돌아서니 왼쪽부터 논산 탑정호와 계룡산이 차례차례 존재를 알렸다. 그리고 멀리서 보이는 도시, 대전이었다. 마천대에서 발길을 돌려 낙조대(859m). 대전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첩첩이 산 너머 보이는 대전, 망원렌즈로 들여다보니 더 선명했다. 정부대전청사와 한빛탑이 보이고 키가 큰 백화점·호텔 건물과 그 옆 고층 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뒤쪽엔 신탄진의 고층 아파트도 보인다. 계속읽기
6. '갱갱이'라는 타임머신
고백건대, 몰랐다. 강경을 잘 몰랐다. 그저 젓갈과 옥녀봉 정도. 금강자전거길 종주 중 스쳐 지나갔던 기억이 전부였다. 기묘한 곳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길래 책과 온라인을 뒤적뒤적했다. 알면 알수록 나온다. 화려했던 과거, 근대문화유산과 저항의 역사, 옛 학자들의 숨결과 성지순례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옥황상제 딸도 반했다는 금강변의 아름다움도 빠뜨릴 수 없다. 갱갱이(강경을 일컫는 사투리)란 이름의 타임머신, 그날의 이야기. 계속읽기
7. 11월, 대청호에서 보내는 편지
"혹시 아세요? 가을이 왜 빨간 계절인지.” H, 당신이 내게 희한한 질문을 했던 그곳에 와 있어요. 그때처럼 판암역에서 63번 버스로 갈아타고 신상동 바깥아감에서 내렸지요. 당신과 동행했던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 흥진마을 억새길 한 바퀴 돌려고요. 봄에 벚꽃으로 화려했던 벚꽃한터 앞 데크길은 가을빛깔로 채색돼 있고요, 안쪽엔 대청호와 하늘이 그러데이션을 보여 주네요. 그 아래에선 억새들이 바람과 왈츠를 추고 있네요. 평화로운 이 길 속으로 들어갑니다. 계속읽기
8. 황혼이 그린 명화, 방축골 붉은노을
달그락, 달그락. 안방에서 아내가 부스스한 눈으로 나오더니 짜증이 심히 난 목소리로 다그친다. “뭔 소린가 했네, 아니 꼭두새벽부터 무슨 설거지를 하고 그래요?” 존댓말이다. 화가 났다는 신호다. “아니, 뭐 이제 할 일도 없고 이제 아침준비 해야 할 텐데 당신이나 도와줄 겸해서….” 계속읽기
9. 만추, 그 色의 찬미
5구간 흥진마을 코스는 마을 한 바퀴 약 3㎞를 도는 둘레길이다. 신상교 아래에서 흥진마을에 발을 들이는 순간 예쁘게 물든 낙엽이 비처럼 쏟아지고 가을동화는 시작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추억을 소환하고 설렘을 끄집어내는 순수한 가을 이야기가 이곳에 있다. 계속읽기
10. 아날로그 꿈의 공장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아시아의 월트 디즈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스튜디오 지브리(이하 지브리)’ 애니메이션 작품들이다. ‘사하라 사막에 부는 열풍’이란 뜻의 지브리는 그 의미를 그대로 실현하듯, 1985년 설립 이후 세계 애니메이션계에 열풍을 일으켰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중심으로 걸어온 햇수만도 30여 년, 현란한 CG와 3D가 범람하는 지금도 지브리는 여전히 가슴 따뜻해지는 아날로그 정신을 고수하고 있다. ‘꿈의 공장’ 지브리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계속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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