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모든 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작게는 오늘의 계획이 틀어지는 일부터 크게는 입사, 수많은 인간관계와 사업에서의 실패 등 인생의 쓴맛을 본 자들이 되새기는 일종의 신세한탄이다. 그러나 전화위복이라는 고사성어도 인생사에서 한 번쯤은 겪게 될 말이다. 마치 9회말 2아웃 역전 만루홈런과도 같은 순간이 대표적인 예시다. 이처럼 사람은 인생에서 위기의 순간을 마주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순간이 반복되는 스포츠처럼 보인다. 편혜진(26·여)의 씨도 자신만의 ‘역전 드라마’를 써냈다.
◆타블렛 위의 화가
그림의 분파는 실로 다양하다.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순수미술부터 CG, 만화 등 현대의 트렌드에 발맞춰 생겨나는 상업미술까지 셀 수 없을 정도인데, 편 씨는 본래 연필과 도화지에 자신의 그림을 담아내길 목표했다. 교복을 입던 시절에도 미술을 꾸준히 꿈꿔왔다는 거다. 그러나 그가 내딛는 발걸음은 때때로 원하는 길과 조금씩 엇나갈 때도 있었다.
“원래도 미술을 전공했고 웹툰고등학교를 지망할 정도였죠. 그러나 입시에서 실패를 겪은 뒤 아쉽게도 대학 진학 당시 과를 공대 쪽으로 꺾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현재 편 씨의 직업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다. 유명 가수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에 참가할 뿐만 아니라 백화점 전시 공간에 이름을 올려 놓는 등 어엿한 사회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많은 결과물에서는 성취감이 느껴지는 데다가 긍정적인 반응은 덤 아닌 덤으로 다가와 뿌듯하단다.
“한 번은 경기 지역 카페에서 사용될 그림 이미지를 작업한 적이 있는데, 카페를 검색하다 그림이 올라와 있으면 괜스레 미소가 지어지죠. 특히 부모님의 경우 뮤직비디오 촬영 당시 엔딩크레딧에 올라온 제 필명을 SNS 프로필 사진으로 하기도 하시니까 보람이 느껴집니다.”
◆실패를 전환점 삼다
다만 ‘인생은 원하는 풀리지 않는다’는 말은 편 씨에게는 조금 달랐다.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가지 않았다는 얘기다. 단순히 미술을 꿈꿨던 그가 현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데에는 대학이 일종의 터닝포인트였던 셈이다. 얼핏 보면 미술과는 거리가 먼 공대에서 편 씨는 디자인과 토목 관련 공부를 하면서 그림에 대한 감을 되레 성장시킬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현재는 일러스트레이터 일을 프리랜서 방식으로 하고 있는데 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 쪽으로 길을 향했던 게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특히 지금 하는 일의 경우 포토샵이 필요한데 당시 배웠던 것들 덕분에 오히려 잘 됐다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내로라는 사업가부터 많은 직장인들 모두 명함과 사원증을 받기 전 혹은 자신의 직위를 내려 놓은 뒤에는 헤매기 마련이다. 그러나 편 씨는 회복탄력성이 좋은 편에 속했다. 회사를 다닐 당시 퇴사 1개월만에 고용센터에서 취업성공패키지와 내일배움카드 등을 찾아 그림관련 학원에서 다시 꿈을 키우기도 했단다. 여기에 그는 공백기간 동안 눈칫밥 대신 가족의 응원까지 얻으면서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다.
“일을 쉬고 있을 때 그때마다 부모님께서 갑자기 방에 들어오더니 ‘나는 너의 일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응원한다’는 말을 건네셨죠. 얼떨떨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용기를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감사했죠.”
◆선한 영향 뿌리는 작가를 꿈꾸며
미술, 음악, 패션, 디자인 등을 일평생 업으로 삼고 가야하는 예술가는 자신의 신념을 두고 늘 줄다리기를 하기 마련이다. 순수한 창작을 선택할 것이냐, 돈을 벌 수 있는 장사꾼을 목표할 것이냐에 대한 얘기다. 이중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예술가에게 가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예술가 3명 중 1명은 예술로 돈을 일절 못 번다는 통계마저 있을 정도다. 그러나 편 씨는 돈 대신 신념을 택하기로 했다. 신념뿐만 아니라 사회를 보다 밝게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말이다.
“추후에는 제가 웹툰 쪽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선한 영향을 뿌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고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질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 제 삶의 목표죠.”
이재영 기자 now@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