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서쪽으로 약 330㎞ 떨어진 잘츠부르크(Salzburg)는 해발 1500~ 3000m의 고산지대에 있는 도시다. 잘츠부르크로 가는 중간에 고대도시 멜크(Melk)가 있는데, 멜크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성립하기 전 130년 동안 다뉴브강 유역의 오스트리아를 지배하던 바벤베르크 왕조(Babenberg: 976~1106)의 수도였다.
지리적으로 동쪽으로 빈과 118㎞, 서쪽으로 잘츠부르크와 210㎞, 북서쪽으로는 체코의 중세도시 체스키크롬로프(Český Krumlov)로 통하는 교통의 중심지인 멜크는 독일의 남부 슈바르츠발트에서 발원한 도나우강이 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 헝가리~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러시아 등을 거쳐 흑해로 빠지는 유럽의 젖줄이 멜크강이 합류하는 바하우 계곡에 있다.

멜크는 오스트리아의 니더외스터라이히주에 속하는 주민 약 5000명이 살고 있는 작은 도시이지만, 멜크 수도원(Melk Abbey)을 포함한 멜크 전체가 2000년 UNESCO 세계문화유산 경관 지역으로 지정됐다.
3세기 중반 이집트에서 금욕과 기도로 세속의 유혹을 외면하고 은둔생활을 하면서 기독교 교리를 연구하는 공동체로써 수도원이 시작됐는데, 수도원은 529년경 유럽에 전파되어 베네딕투스가 로마의 남동쪽 몬테카시노에서 아폴로 신전을 부수고 몬테카시노 수도원(Monte Cassino Abbey)을 처음 세웠다. 로마 가톨릭교회 소속인 베네딕토 수도회는 베네딕투스가 정한 생활 규범을 따르는 남녀 수도사들의 연합체를 일컫지만, 통일된 하나의 수도회가 아니라 각 수도원마다 하나의 수도회를 이루는 공동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1089년 바벤베르크가의 레오폴드 3세가 자신의 성 중 하나인 멜크 성을 베네딕토회에 기증하여 수도사를 양성하는 학교가 처음 설립됐다. 이것은 오스트리아 최초의 학교라고 하는데, 수도사를 양성하는 학교로 사용하다가 1702년 건축가 야콥 프란타우어(1660~ 1726)가 20여 년에 걸쳐 대대적인 개축 공사를 마치고 수도원으로 변신했다. 14~16세기의 르네상스 이후 자연주의와 고전주의가 혼합된 바로크 양식은 특히 풍부한 실내장식, 생생한 색채, 화려한 소재 등을 강조했는데, 멜크 수도원은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 건물이다. 멜크 수도원은 15세기에 들어 종교개혁에 저항하는 요새가 되기도 했지만, 320m의 성벽과 65m에 이르는 첨탑이 요새처럼 보이는 수도원은 성지순례 코스이자,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에 포함된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멜크 수도원은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통틀어 가장 큰 수도원으로서 오스트리아 전체 23개 가톨릭 교구를 관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학생들도 가르치고 있는 신학교이다. 또, 1층은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는 성당이 있다. 특히 멜크 수도원은 오랫동안 수도사를 양성하는 학교여서 9세기 초반에 쓰인 설교집을 비롯하여 10세기에 작성한 1800권의 필사본 등 10만여 권의 고문헌과 고서적을 소장하고 있는데, 고문헌 연구에 매우 중요성을 인정하여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멜크 수도원은 멜크 시내에서 골목길로 산 중턱에 있는 수도원까지 갈 수 있지만, 여행객 대부분은 수도원 정문 앞에 마련된 넓은 주차장에서 곧바로 정문으로 들어간다. 멜크 수도원보다 지대가 높은 주차장에서는 수도원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파스텔톤의 노란색과 주황색의 수도원 건물이 매우 세련되고 아름답다. 특히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부분 유적이 요란하게 표지석을 세우는 것과 달리 멜크 수도원은 주차장에서 정문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UNESCO 세계문화유산’이라고 간략하게 페인트로 쓴 글씨가 눈길을 끈다.

정원 잘 다듬어진 화단 길이 있는 아치형 정문 위에는 열쇠 두 개가 겹친 문양이 있는데, 이것은 화합을 상징한다. 수도원은 정원까지만 무료 관람이 가능하고, 내부를 관람하려면 입장료 13유로를 내야 한다. 개선문처럼 화려하게 장식된 수도원 입구의 양쪽에는 수도원의 수호성인인 성 레오폴드와 성 콜로만의 석상이 지키고 있고, 성문 위에는 라틴어로 ‘ANNO M DCC ⅩⅧ’가 새겨있다. 참고로 라틴 숫자는 로마문자로 표기하는데, 10은 C, 50은 L, 100은 C, 500은 D, 1000은 M으로 통용되었다. ANNO는 서기(西紀), M은 1,000, D는 500, C는 10을 의미하여 결국 멜크 수도원을 개축 공사한 1718년을 뜻한다.
수도원 정문 외벽이 노란색과 흰색으로 채색되어 한결 깨끗하고 밝은 인상을 주는데, ⊓자형 건물로 둘러싸인 안마당을 지나 1층에 들어서면 온통 황금빛이 가득한 교회다. 바닥은 붉은 카펫이 깔려있어서 한층 더 위엄을 느끼게 하는데, 내부는 일체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2층은 바벤베르크 왕가의 왕실로 사용하던 곳인데, 화랑과 11개의 전시실로 이뤄진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황제의 계단(Imperial Staircase)’이라고 하는데, 이은 2층이 황제가 머물던 궁전인 탓도 있지만, 계단을 마치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아름답게 꾸민 나선형 계단이기 때문이다.


2층의 196m에 이르는 복도의 북쪽 벽에는 바벤베르크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 즉 오스트리아를 다스렸던 역대 임금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남쪽은 모두 창문이어서 실내가 유난히 밝고 환해 보인다. 복도의 천장은 빈의 쉔브룬 궁전, 파리 베르사유 궁전의 천정처럼 돔형으로 만든 것도 아름답고, 화랑과 박물관의 천정은 프레스코(Fresco)로 장식되었다. 화랑에는 가톨릭의 권력이 강력했던 중세의 시대상이 담긴 그림과 조각들로 가득하고, 도서관은 수백 년 전에 필사본으로 작성된 고문헌이 가득하다. 2층의 박물관과 도서관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면 수도원의 뒤편인데, 이곳에서 멜크 마을과 멜크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여서 마치 전망대 같다. 멜크는 유럽의 중세도시가 그러하듯 아름다운 조각과 분수가 있는 광장을 비롯하여 마차가 다니던 좁은 골목에 말을 대신한 소형차들이 앙증맞게 오가고 있으며, 시민들은 노천카페에서 와인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