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마 소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무대 이프 성

마르세유 앞바다 이프 성. 사진= '프랑스 기행' (도서출판 예담)
마르세유 앞바다 이프 성. 사진= '프랑스 기행' (도서출판 예담)

프랑스 최대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 3.5㎞, 배로 15분 거리 작은 섬에 세워진 이프 성(城)은 마르세유를 방어하기 위한 초소로 1531년 축조되었는데 그 후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두꺼운 벽을 비롯하여 복잡한 구조로 탈옥이 어려워 정치범 수용소로 쓰였다고 한다. 악명 높은 무시무시한 감옥이었지만 이곳에서도 계급과 권력, 부유함에 따라 차등대우가 이루어져서 힘 있는 죄수들은 햇볕이 잘 들고 벽난로가 있는 공간에 수용되었다고 한다. 알렉상드르 뒤마(1802∼1870)의 대표작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배경이 된 이곳은 소설 속 이야기에 따라 흡사 몬테 크리스토 백작이 실제 인물인 듯한 착각을 하도록 감옥 구조도 바꾸어 꾸며 놓았다. 허구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인 양 실감을 주기 위하여 독방과 독방 사이의 굴을 일부러 팠다고 하니 문화마케팅의 원조국다운 발상이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양평 황순원문학관 소나기마을에서 노즐로 분사되는 소나기가 작품 속 분위기와 느낌을 재현하고 있다.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하기 직전, 상선 파라온호의 일등항해사 에드몽 당테스는 곧 선장이 되고 결혼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의 출세를 시기하는 회계사 당그라르나 연적 페르낭은 에드몽을 나폴레옹의 내통자로 밀고한다. 결혼식장에서 체포되어 투옥된 에드몽은 옥중에서 사제 파리아를 알게 되어 그로부터 방대한 학문과 교양을 익히고 탈옥 준비를 하는데 탈출 직전 사제는 죽는다. 그는 몬테 크리스토섬 동굴에 막대한 보물이 있음을 알려준다. 파라온호 선주는 파산했고 부친은 굶어 죽고 원수 당그라르는 귀족으로 출세했으며 페르낭도 검찰총장이 되었고 연인 메르세데스를 아내로 맞이한 것을 알고 에드몽은 복수심을 불태운다.

▲ 귀스타브 스탈 (1817-1882)의 '몬테 크리스토 백작' 판화.

근대 복수극의 시발점이 된 ‘몬테 크리스토 백작’에서는 어마어마한 재물을 바탕으로 신념과 지략으로 하나하나 절묘한 복수의 책략을 펼쳐간다. 자칫 진부한 통속소설에 떨어질 작품이 치밀한 구도와 웅장한 스케일 그리고 당시 사회에 대한 탁월한 묘사로 낭만주의 소설의 걸작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이탈리아, 지중해, 동양에까지 이르는 광활한 무대와 이국취향 그리고 오직 복수라는 하나의 목표에 열정을 불태우는 주인공의 집념, 종국에 이르러 보여주는 화해와 포용의 메시지 등은 이 작품이 단순한 대중소설의 범주를 벗어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재미있는 소설’을 쓴 뒤마는 그동안 혼혈이라는 태생적 여건과 프랑스 예술계의 보수성 그리고 이른바 통속성 논란으로 작가적 역량과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문학사의 중심부에서 다소 비껴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 20세기 후반 들어 대중문학, 통속문학에 대한 기준이 변화하고 그 동안 영화, 연극, 뮤지컬, 애니메이션, 패러디 등 많은 장르로 번안되어 세계적인 인지도를 확보하였음에도 뒤마 문학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그러다가 2002년 탄생 200주년을 맞은 뒤마 유해가 국가 최고유공자 묘역인 파리 팡테옹으로 이장되었다. 이프 성에는 현실과 허구 사이를 즐겁게 넘나드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스트레스에 싸인 현대인들의 심리와 감성을 파고들어 잇따른 반전과 복수로 짜릿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 소설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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