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세시대 노르망디 지역을 두고 영국과 프랑스 간 복잡한 사건들을 거쳐 특히 15세기 백년전쟁 이래 두 나라는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지만 앵글로 색슨과 라틴 계열의 차이만큼 감성과 의식의 편차는 컸다. 세계대전 중에는 같은 연합국 동맹이었고 유럽연합 결성과정에서도 주역으로 나섰으나 본질적으로 경쟁관계, 민족 자존심이 두드러지게 노정되는 그런 처지로 지내고 있다. 얼마 전 개봉한 영국 영화 ‘나폴레옹’은 영국인이 프랑스 국민 영웅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을 보여준다. 프랑스인들이 크게 반발했다는데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 나름대로 해석한 시각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제3자의 눈으로 볼 때도 나폴레옹의 삶, 성취와 좌절을 다룬 작품이라면 담아내야 할 여러 대목이 누락된 듯싶다. 영화 엔딩 크레딧에서는 각 전투에서 희생된 전사자 숫자를 길게 열거하고 있는데 조제핀과의 애정행각과 전쟁에 대한 열정 같은 한정된 관점을 집중 부각하는 바람에 가령 나폴레옹 법전과 그의 재위 중 시작된 바칼로레아 처럼 오늘날에도 큰 의미를 부여받는 업적에 대한 조명은 꺼져있다. 전 세계 민법의 모델이 된 나폴레옹 법전이나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행되는 대학입학자격시험 바칼로레아 등을 19세기 벽두에 도입한 선구적인 안목은 평가할 만한데도 말이다.
세계 220여 개국 지도를 들여다보노라면 아주 우호적인 사이의 이웃나라를 찾기 쉽지 않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유럽에서 베네룩스 3국 그리고 바티칸, 모나코, 안도라, 리히텐슈타인 등 미니국가들과 이웃한 나라들과의 조용한 공존 등을 꼽을 정도로 제한된 경우뿐이다. 이웃나라간의 전쟁이나 무력충돌 그리고 인종, 종교, 경제적 차원의 갈등으로 소모적인 긴장을 유발시키는 곳이 얼마나 많은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3년차에 접어들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의 무력충돌도 참혹하다. 잠시 교전 상태는 멎었는가 싶지만 언제 다시 점화될지 모르는 일촉즉발 위기상태인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상황은 국토, 민족, 종교 등이 얽힌 복잡한 내력을 안고 있다. 그동안 두 차례 튀르키예로부터 대학살의 비극을 경험한 아르메니아로서는 1991년 독립 이후에도 여전히 주변국가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국가 간 국경이 대체로 꼬불꼬불하고 복잡한 요철형태를 나타내고 있는데 비하여 아프리카 54개국 국경은 직선이 많다. 강대국들의 이 지역 식민지배 전력을 상징하는 이런 직선 형태의 국경선이 슬픈 과거사를 보여주는데 여전히 무력충돌, 쿠데타와 내부 불안이 아프리카 대륙을 감싸고 있다. 이웃 두 나라, 콩고와 콩고민주공화국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콩고라는 이름은 신산했던 이 지역의 지난날을 상징한다. 대규모 무력충돌은 아니더라도 분리 독립 움직임이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카탈루냐(스페인), 퀘벡(캐나다), 스코틀랜드(영국)지역은 국가 내부에 잠재적 분쟁 요소를 안고 있다.
다른 나라 걱정을 할 때가 아닌 듯싶다. 북한을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주변의 버거운 존재들과 고단한 역사의 부침을 겪은 우리로서는 생존과 민족자존을 위하여 이즈음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노련하고 현실적인 외교력으로 모나지 않고 쏠리지 않는 상호번영 실사구시 균형을 추구하는 역량이 더욱 필요한 지금이다. 정무외교, 경제외교 등 정부차원의 전 방위 외교력은 물론이려니와 다양한 계층과 영역에서 단단하고 실질적인 우호관계를 맺을 수 있는 민간외교 프로세스인 ‘공공외교’ 활동이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되었으면 한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