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츠부르크 시내를 가로지르는 잘차흐강(Salzach River)을 중심으로 호헨부르크 고성이 있는 산기슭을 배경으로 국립오페라 극장에서 북쪽으로 쭉 뻗어 '성 슈테판 대성당'까지 이어지는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를 구시가지라고 하고, 트램이 달리고 미라벨 정원이 있는 강북을 신시가지라고 한다. 잘차흐강 위에는 마카르트 다리(Makartsteg)를 비롯하여 슈타트 다리, 모차르트 다리, 논탈어 다리 등 많은 다리가 있는데, 마카르트 다리를 건너기 직전 오른쪽에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자 카라한(H von Karajan: 1908 ~1989)의 생가가 있다. 생가 앞에는 그가 지휘하는 모습의 동상이 있고, 카라한 생가 골목 건너편에는 초음파를 처음 개발한 크리스티안 도플러(Christian Doppler: 1803~1853)의 생가도 있다. 또, 프란츠 그루베르와 함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작곡 작사한 요세프 모어도 이곳 출신이다.


잘츠부르크 구시가지인 게트라이데 거리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을 위하여 차량의 통행을 전면 금지하는 보행자 전용도로이지만, 관광객을 태운 마차는 지나다닐 수 있다.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이자 잘츠부르크의 랜드마크인 이곳은 소금 생산으로 부유한 도시를 찾아온 유럽의 여러 나라 상인이 각국의 특징을 살려서 지은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즐비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상점들은 잘츠부르크를 ‘음악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브랜드 '스와로브스키', '프라이 빌레' 매장을 비롯한 기념품 전문 매장이 널려 있고, 관광 상품마다 모차르트 관련 물건들로 넘쳐난다. 특히 가게의 간판들은 고기 모양의 어물전, 별이 그려진 숫자로 등급을 나타내는 호텔, 여러 개의 꽃으로 둘러싸서 행복한 삶을 상징하는 은행 간판, 아름다운 꽃 모양의 카페, 약 그릇과 약을 빻는 막대기, 그리고 의술의 신(神) 헤르메스 지팡이로 세계 공통적인 약국의 심벌마크가 그려진 약국 등 철제 간판이 거리를 장식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중세에 문맹자들을 위하여 상점에서 간판에 판매하는 물건을 새기던 관습이어서 잘츠부르크만의 특징이 아니지만, 잘츠부르크는 관광객들에게 이국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옛 모습처럼 꾸몄다고 한다.


잘자흐강 위에 놓인 마카르트 다리를 건너면, 정면에 6층 황금색 벽돌이 눈에 띄는 건물이 모차르트의 생가다. 모차르트는 1756년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잘츠부르크 교회 악단의 부악장이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다른 형제들은 모두 일찍 죽고 누나 마리아 아나(1751~1829)와 두 남매만 생존했다. 이 건물 3층에서 태어난 모차르트는 아버지가 두 남매의 재능을 보여주기 위하여 여러 차례 유럽 여행을 했다. 모차르트는 6살 때인 1762년 뮌헨~빈~ 프레스부르크~ 빈 등 독일과 오스트리아 연주 여행을 했고, 이어서 1763년 6월부터 1766년 11월까지의 유럽 여행에서는 남부 독일의 주요 도시와 브뤼셀· 파리를 여행했다. 런던에서는 1년 6개월 동안 머무르기도 했다. 모차르트는 17살 되던 해에 잘츠부르크의 신시가지인 미라벨 정원 앞의 로타리 보라색 3층 건물로 이사했다.


그는 파리 여행에 동행했던 어머니가 죽자 잘츠부르크의 궁정 오르간 연주자가 됐지만, 25세 되던 1781년 대주교와 갈등으로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으로 이주했다. 모차르트는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하고, 1780년대 후반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돈 조반니(Don Giovanni)· 코지 판 투테(Cosi fan tutte)등의 작품으로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1791년 12월 갑자기 건강이 악화하여 빈에서 35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는데, 행려병자들의 시체와 함께 공동묘지에 묻혀서 유해를 찾지 못했다. 1902년 빈의 성 마르코스 공동묘지의 언덕 위에 가묘(假墓)를 만들었다.(자세히는 2023. 12. 6. 빈 중앙묘지 참조)
모차르트의 생가는 1917년 국제 모차르테움 협회(Mozarteum)가 인수하여 모차르트 기념관으로 만들었는데, 건물 입구에는 ‘모차르트 생가(Mozart geburtshaus)’라고 독일어 안내판과 모차르트의 흉상도 박혀있다. 입장료는 성인 10유로, 청소년 4유로이지만, 잘츠부르크 카드를 소지했다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실내에서는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1층에는 모차르트가 사용했던 침대, 피아노, 바이올린, 자필 악보, 서신 등이 있고, 2층에는 유명한 오페라 ‘마술피리’를 초연할 당시 사용했던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3층과 4층에는 모차르트가 가족들과 잘츠부르크에서 생활하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잘츠부르크 시내에는 모차르트가 살던 집이 두 군데 있는데, 구시가지에 있는 생가 이외에 17세 때 이사한 집은 미라벨 정원이 있는 신시가지에서 전차가 다니는 도로변의 보라색 3층 건물이다. 이 건물도 현재 모차르트 기념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구시가지 뒤편 산 중턱에는 호엔잘츠부르크 고성(Festung Hohensalzburg)이 있다. 1077년 게브하르트 대주교가 교황 서임권 투쟁에서 독일 남부의 황제파와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 해발 120m 산 위에 지은 ‘호엔잘츠부르크’는 잘츠부르크 어디에서든지 호엔잘츠부르크성이 잘 보이기 때문에 잘츠부르크를 상징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성까지는 푸니쿨라가 왕복으로 운행하고 있으며, 티켓은 푸니쿨라가 포함된 티켓과 성만 입장할 수 있는 티켓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잘츠부르크의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 같다. 참고로 게트라이데 거리에는 1890년부터 파울 퓌르스트(Paul Fürst)가 은박지에 파란색으로 무늬를 넣고 가운데에 모차르트 초상화를 인쇄한 포장지로 만든 ‘모차르트 초콜릿’이 유명해서 현재까지 가업으로 대물림되고 있는 등 모차르트의 이름을 빌린 기념품을 많이 만들어서 팔고 있다. 게트라이데 거리는 이곳이 모차르트의 생가 골목이라서 더욱 프리미엄을 얻는 것 같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