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만 활동가.

어릴 적 장롱 안 아늑하던 ‘아지트’를 기억하는가.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할 뿐만 아니라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 말이다. 교복을 입고 날마다 찾던 아파트 단지의 공원과 골목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청년이 되고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기 시작할 때면 내 몸 하나 편히 둘 곳을 찾기가 어렵다. 어딜 가든 이불 안이 아니면 눈칫밥 신세다. 그러기에 대전 유성 청년마을 박재만(34) 씨가 운영하는 청년마을은 색다르게 다가온다.

◆친환경부터 독립출판물까지
유성구 어은동의 나선지대를 거점으로 하는 청년마을 여기랑은 제법 흥미롭다. 폐기물이 전혀 발생하지 않도록 일회용품을 대신 재활용 가능한 소재의 제로웨이스트부터 대형서점에서는 찾기 힘든, 자연과 생태를 다룬 책들이 나열돼 있는 독립서점, 시민들이 지속가능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일종의 공방까지. 대전 곳곳을 돌아다녀도 드문 공간들이 한 데 모여있는 공간인 것이다. 박 씨는 ‘주식회사 재작소’에서 프로그램 기획운영과 제작 지원을 담당하고 있단다. 시민들이 제품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 실험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 사업을 하기 전부터도 친환경 사업에 맞춰진 활동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조실험 레이저 재봉틀이나 제작 장비들이 있는데 저희도 이를 활용하고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공유작업실을 만들었죠. 여기서 이런저런 활동들도 하다보니까 사람과 사람 간의 커뮤니티가 이어지고 있다는 게 보였고 그런 걸 캐치해서 청년마을이라는 사업에 뛰어 들었습니다.”

◆두 손으로 보다 푸른 하늘을 바라다
그러나 박 씨의 전공을 보면 지금 하는 일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항공우주를 전공했다고 하는 이들을 떠올리면 으레 하늘을 날고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굳이 공통점을 꼽으라면 시제품을 제작하는 정도겠지만 되레 그는 가전제품을 수리하고 자가수리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전공지식을 환경과 재활용으로 접목시키려 했다. 창작이 창작에 그치기보다는 지속 가능한 방향성을 염두에 뒀다는 얘기다.

“뭔가를 직접 만들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는 엄청난 전문가가 아니에요. 여기서 그런 제품들을 만들었을 때 경험은 좋지만 계속 쓰이기 어렵다는 점이 있죠. 예를 들어 유치원생들이 이런저런 장난감 같은 걸 만들어도 계속 쓰긴 어려운, ‘예쁜 쓰레기’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죠. 과정에 가치를 두는 건 좋지만 부산물들이 막연하게 소비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만들기를 할 때도 지속 가능하고 환경적인 방법을 고려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지닌 채 활동을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특히 박 씨는 자신이 지닌 손재주를 곳곳에서 쓰다 보니 여기저기서 연락을 받았단다. 쓰레기 무단투기 등의 사회문제부터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된 약자문제까지 도시에서 쉽사리 풀기 힘든 문제들을 접하다 보니 기술성을 가진 채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했다는 거다.

◆지속 가능한 커뮤니티를 꿈꾸며
궁동과 어은동을 합친 어궁동. 그 중심에 서 있는 박 씨이기에 청년들이 들려주는, 또는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 많단다. 이야기를 취합해보면 결국 대전에 머무르고 싶다는 바람이 적잖다는 후문이다. 대전 지역민들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살기는 좋다’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대전이 노잼도시라는 오명 아닌 오명이 씌워진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즉 경제적 부분이나 활동할 ‘마당’이 부족하다는 점이야말로 대전 청년들이 쉽사리 정착할 수 없게 하는 원인 중 하나라는 얘기다.

“인근에 대학교가 많이 있는 만큼 20대 청년들이 많아요. 이에 근처에서 학업을 했던 사람들의 경우 계속 머물고 싶은 마음이 있죠. 하지만 인프라 등이 부족하다보니 청년들이 지역에 머물러야하는 당위성을 찾지 못하는 거죠.”

결국 박 씨는 지속 가능성에서 해답을 찾기로 했다. 청년마을을 찾는 이들의 공통된 이야기로는 커뮤니티, 문화적인 속성에 보다 호감을 갖는다는 것이다. 지자체도 공간을 지원해주거나 다양한 커뮤니티 사업이 진행되는 등 특색있는 문화공간이 운영되고 있는 만큼 어궁동과 동구 등도 각각의 색깔에 맞춘 문화공간을 조성하는 활동이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청년들의 바람처럼 그의 목표도 청년들이 오래 모일 수 있는 공간을 가꿔 나가는 것이란다.

“청년마을이 끝나고서도 청년들과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가고 커뮤니티를 이어가는 것이 근시안적인 목표입니다. 최종적으로는 청년들만의 아지트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할 수 있겠죠.”

제로웨이스트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제로웨이스트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이재영 기자 now@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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