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오래된 통계이긴 하지만 이성과 데이트할 때 상대방의 신체 부위 중 어디를 가장 먼저 쳐다보는가 하는 물음에 남녀 모두 ‘구두’ 즉 신발 부위를 우선적으로 꼽는다는 설문 결과를 본 적이 있다.
감성과 의식, 가치판단 기준이 급속히 변화하는 우리 사회여서 이즈음에도 여전히 유효한지는 알 수 없지만 신발, 구두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구두는 옷차림과 신체의 거의 모든 부분의 인상을 멋지게 바꿔주는 강력한 마감재라는 표현은 패션의 완성으로서의 구두의 중요성을 논할 때 자주 인용되는 문구다. 그래서 구두에 투자하자, 구두가 고급이면 옷차림까지 멋있게 보인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기도 한다. 차림새는 그런대로 말쑥한데 별로 눈에 띄지 않거나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하거나 미흡해 보이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구두, 신발 때문일 확률이 매우 높다.
과거 가죽구두, 캐주얼화 그리고 운동화로 크게 구분되었던 신발패션 체계가 크게 확대되는 동안 약칠을 하는 가죽구두의 비중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거리 곳곳에 자리 잡고 있던 구두미화코너를 찾기 어려워졌다. 행인들의 신발을 보노라면 구두 착용자가 드물다.<그림> 신사복 정장 차림에 백 팩을 메고 다니는 패션이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차림새였던 것처럼.

너나없이 개성을 앞세우고 상상을 초월하는 파격이 자연스러워진 이즈음이지만 남성의 경우 정장 차림에는 그래도 끈 달린 가죽구두가 고전적인 격조의 모양새로 꼽힌다. 끈 없이 신을 수 있는 로퍼형 신발, 다이얼을 돌려 조절하는 신발이 많이 나왔지만 전통적으로 끈 달린 신발은 끈을 풀었다가 신을 때 다시 매는 것이 오랜 세월 상식으로 통용되어 왔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동안 늘어나고 이리저리 제멋대로 틀어진 신발의 끈은 귀가 후 풀어 놓는 것이 좋다. 밤새 원상회복시킨 다음날 다시 발의 상태에 맞추어 적절하게 조여 매는 것이 발의 건강, 신발의 수명을 위해서도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대단히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인체 다른 부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해온 발이 나날이 겪고 있는 과로와 혹사는 엄청나 보인다. 무겁거나 가볍거나 체중을 온전히 지탱하면서 종일 움직여야 하는 발의 노고를 우리는 잊고 살기 쉽다. 구두나 운동화 끈을 살짝 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통째로 빼놓았다가 아침에 다시 일일이 끼워 매도록 유럽 명문가에서 교육시킨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인내심을 기르고 끈을 꿰는 동안 그날 할 일을 생각해 보라는 배려에서가 아닐까 싶다.
패션의 금과옥조, 나아가 매너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라 할만한 ‘T(시간), P(장소) 그리고 O(상황)에 따른다’라는 개념이 각자의 개성적인 취향과 편리함이라는 대세 앞에서 느슨해지는 사이 옷과 신발의 조합은 다양해졌다. 형형색색의 운동화, 샌들이나 슬리퍼 스타일 신발이 크게 보급되고 있지만 취업 면접이나 상견례 자리에 운동화나 슬리퍼를 신고 나갈 수는 없지 않을까. 예전에는 주말에 운동화 끈을 모두 빼서 빨아 널어 말렸다가 다시 꿰어 신곤 했다. 편리함이 문화와 전통을 주도하는 시대에 이제 끈 달린 구두와 운동화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인 듯하다. 구두 끈이나 운동화 끈을 다시 조여 매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곤 하던 마음가짐도 갈 곳을 잃은 것은 아닐까.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