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거리를 거닐 때 담벼락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모습을 마주하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이른바 '그라피티'이다.
그라피티(graffiti)는 건물의 벽 등에 마치 낙서처럼 긁거나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을 뜻한다. 과거 서울과 인천의 지하철이 외국 '그라피티' 작가들의 습격을 받으며 국내에 널리 알려졌다.
당시 수많은 그라피티 작가들이 활동했던 외국 지하철은 이미 포화상태였으나, 누구도 손대지 않았던 한국의 지하철은 그들에게 도화지가 돼줬다. 지하철에 그림을 그려 넣기 위해 외국 작가들이 지하철의 환풍구를 뜯어내고 침입하는 등 한바탕 대소동이 일어났다.
그라피티는 일반적인 벽화와는 조금 다르다. 그라피티 대부분은 허락받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신분을 숨기고 도시의 공공장소를 찾아다니며 자신만의 언어로 사회적 메시지를 남기는 그라피티 작가들의 작품은 일종의 예술이 된 낙서다.

그라피티로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작가는 영국의 영화감독이기도 한 뱅크시다. ‘거리의 예술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뱅크시는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가 담긴 그림을 거리에 남기고 사라지는 인물로, 본명과 나이, 얼굴이 전혀 공개되지 않아 ‘얼굴 없는 화가’로도 불린다. 뱅크시가 추구하는 길거리 낙서는 기존에 익숙했던 패턴을 전복시키며 무궁무진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그라피티는 엄연한 범죄행위다. 형법상 재물손괴죄에 해당해 3년 이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공무에 사용되는 물건을 손상하면 공용물건손상죄가 성립된다. 처벌 수위도 7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늘어난다.
지난 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 포스터에 대통령을 조롱할 목적으로 쥐 낙서를 한 대학 강사 등이 처벌받은 사례도 있다.

지난 2019년 청계천 '베를린 장벽'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린 훼손시킨 그라피티 작가정태용(29)씨 에게는 벌금형 판결이 내려졌다. 앞서 정씨는 2018년 6월 청계천에 전시된 베를린 장벽에 그림을 그렸다. 정씨는 스프레이로 서독 쪽 벽면에 분홍, 파랑, 노랑 등을 칠했고 동독 쪽에는 '날 비추는 새로운 빛을 보았습니다. 내 눈을 반짝여줄 빛인지' 등의 글귀를 새겨 원형을 훼손시켰다.
당시 전시된 베를린 장벽은 독일 베를린시가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통일을 염원한다는 의미에서 실제 베를린 장벽 일부를 서울시에 기증한 것이었다.
재판부는 "국민 도의감에 반하는 행위로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판결했고 최근 이어진 항소심에도 원심을 유지했다.
여전히 '그라피티'가 범죄이냐 예술이냐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공공건물을 손상시키는 범죄일지, 자유로운 가치를 담은 예술일지 많은 생각이 필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확실한건 이에 고통받고 있는 상인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