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을 비롯하여 부산, 인천, 대구, 대전, 광주 등 대도시에서 운행되는 우리나라 지하철은 단연 세계 수준급이다. 영국 어느 기업이 발표한 전세계 지하철 만족도 조사에서 서울 지하철이 단연 1위로 선정되는 등 근래 잇따르는 여러 조사에서 정상을 지키고 있다. 접근성, 편리성, 반려동물 이용가능 여부, 와이파이, 편의시설, 요금, 인프라 그리고 연간 이용객 수 등 여러 항목에서 독보적이었다.
서울에 이어 상하이, 도쿄, 멕시코시티, 런던, 마드리드, 뉴욕, 모스크바, 베이징, 파리 등이 10위권에 포함되었는데 세계 최초의 런던 지하철이나, 문화콘텐츠 측면에서 일종의 롤 모델로 자주 언급되는 파리 지하철을 따돌린 서울 지하철의 우수성은 대견스럽다.
지금부터 꼭 50년 전 1974년 8월 15일 개통된 서울 지하철 1호선부터 지금 운행되는 9호선까지 그리고 2개 경전철을 포함한 모든 노선의 서비스는 훌륭하다. 열차 내 쓰레기가 거의 없음에도 끊임없이 차내를 오가며 청소하는 미화원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우리나라 지하철의 수월성을 웅변하고 있는 듯하다. 지하철 역사 50년, 길지 않은 기간에 이룩한 여러 노하우와 축적된 경험은 곧 우리사회의 압축성장과 연결된다. 그리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여 선제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의식은 21세기 사회의 핵심적인 미덕으로 꼽힌다.
지하철은 이제 총총히 어딘가로 향하는 단순한 교통수단으로서의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문화를 선도하고 이용객들의 정서를 함양하는 문화공간, 문화매개체로서의 사명이 강화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운영되는 지하철 구내 갤러리와 시(詩)작품 게시, 주변 지역의 유래와 특성을 소개하는 전시물, 이용객 휴식 공간과 화장실, 도서코너 등 다양한 서비스는 나름 수준급이다.

특히 지하철 구내 공연 프로그램은 인상적이었다. 행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한 통로 한 켠에서 들려오는 음악은 삭막한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여성연주자가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오후 한가한 시간대라 관객은 많지 않았지만 감미로운 선율을 들으며 지하철 공간 활용의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봤다. 음악은 물론 무용, 1∼2인 단막극, 인형극, 마임, 마술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 프로그램을 적절한 시간대에 운영하여 시민정서 함양과 예술인들의 활동 무대 확장, 공기업의 사회기여 등 여러 차원에서 성과를 기대할 만하다. 아울러 매표창구가 없어지며 생겨난 지하철 역 유휴공간을 공익목적의 시민, 학생모임이나 활동 장소로 제공하면 어떨까 싶다.
예산 문제로 많은 출연료 지급이 어렵다면 재능기부 차원에서 자원봉사자들의 협조로 일정한 오디션을 거친 출연진들이 다채로운 무대를 꾸밀 수 있겠다. 자신의 재능을 펼칠 무대를 찾고 있는 분들이 많아진 이즈음 지하철 무대는 공감과 소통, 나눔의 현장이 되기에 적절한 공간이다.
‘교통(交通)’은 이제 단순히 신체와 물품의 위치 이동을 도와준다는 원론적 기능을 넘어서서 정서와 감성을 이어주고 서사가 이루어지는 공간 이동을 지향하고 있다. 어수선한 세상, 자꾸만 경계하며 움츠려 드는 마음을 잠시나마 유연하게 풀어주는 역할의 한 몫을 지하철이 선도적으로 맡아주기 바란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