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1980년대 말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여름 휴가철이면 비행기로 4시간 떨어진 괌과 사이판으로, 멀리 7시간을 날아가는 발리가 큰 인기가 된 지도 오래전이다. 사실 이 섬들 대부분은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이 주둔했던 전적지인데, 일본인들은 마치 빼앗긴 고향을 둘러보듯 애틋한 마음으로 찾았다. 게다가 미국을 부러워하는 일본인들은 하와이보다 가까운 괌·사이판 등이 매력적인 휴양지로 각광받으면서 일본 항공사들이 노선을 확대하고, 기업들도 투자를 벌였다. 그런데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한국인들이 마치 일본인들의 뒤를 쫓아다니는 형국이 되더니, 연평균 150만 명의 관광객 중 50% 이상이 한국인이고. 일본인이 35%라고 한다.

한반도에서 동남쪽으로 약 2400㎞, 필리핀에서 동쪽으로 약 2600㎞, 하와이에서 남쪽으로 약 5000㎞ 떨어진 태평양의 작은 섬 괌(Guam)을 비롯하여 사이판(122㎢), 티니안(101㎢), 로타(83㎢) 등 22개의 섬이 바나나처럼 길게 이어진 섬들을 마리아나 제도(Mariana Islands)라고 한다. 필리핀을 형성하고 있는 7000여 개의 섬인 필리핀 제도에서 마리아나 제도를 잇는 아시아대륙 쪽을 필리핀해라 하고, 그 바깥 넓은 바다를 태평양이라고 한다.

마리아나 제도에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원주민 차모로족(Chamorro)이 살았는데, 1521년 세계 일주에 나섰던 마젤란이 섬들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당시 마젤란은 원주민들이 카누를 타고 여러 섬을 돌아다니며 해적질하는 것을 보고 ‘도적들의 섬(Isia de los Ladrones)’이라고 말했는데, 1564년 필리핀을 점령하여 최초로 식민지를 세운 스페인은 이듬해인 1565년 스페인의 장군이자 필리핀 총독 레가스피(Legazpi)가 ‘도적들의 섬’까지 식민지로 만들면서 당시 스페인 국왕 필리페 4세의 왕비인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아 아나(Maria Anna)’의 이름을 따서 마리아나 제도라고 이름 붙였다. 스페인은 이 섬들을 필리핀과 멕시코를 오가는 무역선의 중간 기착지로 삼았으나, 1898년 미국과 전쟁에서 패한 뒤 마리아나 제도에서 가장 큰 괌(Guam)을 빼앗겼다.

그러자 스페인은 1899년 나머지 섬들을 모두 독일에 450만 달러를 받고 처분해서 마리아나 제도는 미국령이 된 괌을 중심으로 한 마리아나 제도와 독일령이 된 북마리아나 제도로 나뉘게 되었다. 태평양전쟁(1941~1945년) 때 일본이 독일령 사이판 일대를 빼앗은 뒤 티니안에 해군기지, 사이판에 육군기지를 설치했지만, 1944년 7월 미 해병대가 북마리아나 제도를 점령 후, 북마리아나 제도는 1947년부터 1986년까지 40년 동안 UN의 신탁통치를 받았다.

1975년에 주민투표로 미국의 속령으로 편입되었다가 1978년에 북마리아나 제도 연방을 구성했다. 미국은 스페인 전쟁 때 할양받은 괌과 북마리아나 제도를 예전처럼 마리아나 제도로 통합하려고 했지만, 2차 대전 때 미국령 괌과 일본령 북마리아나 제도 주민들의 적대 갈등이 해소되지 않아서 별개의 행정구역으로 하고 있다. 괌은 영어식 표기이고, 차모로 어로 구아한(Guåhån)이라고 하며, 5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면적은 546㎢로서 제주도(1845㎢)의 3분의 1이며, 인구는 약 17만 명이다. 수도는 하갓냐(Hagatna)로서 약 4000명이 살고 있다. 주민은 원주민 차모로족이 47%, 필리핀인 25%, 백인 10%, 기타 각지에서 온 사람들인데, 300여 년간 스페인의 식민생활을 한 영향으로 가톨릭이 70%, 개신교가 25%라고 한다.

미국은 2차대전 후 냉전 시대부터 구소련과 아시아 공산권 국가들을 경계하기 위하여 일본 열도의 최남단 섬인 오키나와에 공군기지를 설치한 이외에 마리아나 제도의 괌. 티니안섬에 아시아·태평양 군사기지를 설치했다. 즉, 괌 북쪽에 앤더슨 공군기지, 서쪽에 미 태평양 제7함대 해군기지가 있고, 공군과 해군 모두 마리아나 지역 통합사령부(Joint Region Marianas, JPM)가 있다. 또, 육군은 괌 주방위군(Guam National Guard)이 북마리아나 제도 연방의 방어 임무까지 겸하고 있는 등 미국 군사기지가 괌 전체 면적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그 결과 미 본토 시민들은 하와이를 경유하는 항공노선이 있을 뿐이어서 육·해·공군기지 근무자나 특별한 목적이 아니라면 괌을 찾아오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자 부존자원이 없는 괌 당국에서는 관광 수입 확대로 주민의 소득을 늘리려고, 비교적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시아 지역에서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선, 서울에 괌 관광청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여러 가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령이지만 45일간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고, 외국인이 괌에서 렌터카를 운전하려면 현지 운전면허증이나 국제운전면허증이 있어야 하지만, 한국인은 국내 운전면허증만 있어도 렌털이 가능하다. 특히 렌털 차량에 한글 내비게이션이 장착되어 있어서 매우 편리하다. 렌털 요금은 차량과 이용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1일 80~100달러 정도이다. 국내에서는 인천국제공항 이외에 김해, 대구 등 지방공항에 대한항공을 비롯한 진에어, 제주항공, 티웨이 등 항공 4사가 하루에도 각각 3회씩 운행하고 있어서 제주도를 가는 것보다 훨씬 편리하다. 4시간 15분이면 맑고 깨끗한 바닷가에서 노약자나 가족 단위 해수욕을 즐길 수 있고, 특히 오붓한 시간을 즐기려는 신혼부부들에게 인기가 많다.

또 관광지는 물론 숙박업소, 음식점, 기념품 가게마다 영어·일본어·한글 안내문을 설치해서 외국어를 모르는 여행객들도 불편하지 않다. 특히 짧은 시간에 미국령인 괌에서 미국상품을 면세 가격으로 살 수 있고, 신상품도 국내 판매가격의 50% 이하로 살 수 있다고 쇼핑하러 가는 사람이 많다. 널리 알려진 쇼핑센터 중 괌 프리미엄 아울렛(GPO: Guam Premium Outlet)은 Tommy와 Ross, 티-갤러리아(T-Galleria)는 명품과 액세서리, 미크로네시아 몰은 Polo와 갭, K-Mart는 소소한 물건들로 유명하다. 국내에서는 골프장 예약이 힘들고 그린피도 만만치 않아서 최신식 시설을 갖춘 괌, 사이판을 단체로 찾아가는 경우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여담으로 국내외 여행을 하다 보면, 후회하는 곳도 있고, 한 번으로 충분하다는 느낌 그리고 포근한 정감과 함께 또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있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인도네시아 발리와 롬복이 전자라면, 괌과 사이판 등 북마리아나 제도는 두 번째이고,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일본 교토와 후쿠오카는 세 번째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괌에는 주미 한국대사관 호놀룰루 영사관 괌/북마리아나 제도 출장소가 있는데, 명칭은 출장소이지만 웬만한 영사업무는 모두 처리하고 있다. 만일 관광객이 괌에서 여권을 분실하였다면 재발급이 쉽지만, 사이판·티니안·로타 등 북마리아나 제도에서 분실했다면 괌까지 와서 신청해야 한다. 하지만, 사이판에서 괌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 출국 수속을 거쳐야 하고, 여권이 필요해서 현지 경찰서에 여권 분실신고를 하고 임시 출국허가증을 받아야 출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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