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아프간 요새

제주도(1845㎢)의 약 3분의 1 정도인 괌(543.9㎢)은 1565년 스페인의 필리핀 총독 레가스피(Legazpi)가 식민지로 만들고, 당시 스페인 국왕 필리페 4세의 왕비인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아 아나(Maria Anna)’의 이름을 따서 그 일대의 섬들을 마리아나 제도(Mariana Islands)라 했다. 그 후 필리핀과 멕시코를 오가는 무역선의 중간 기착지로 삼았지만, 330여 년 뒤인 1898년 미국과 전쟁에서 패한 뒤 마리아나 제도에서 가장 큰 괌(Guam)을 빼앗겼다.

아프간 요새에서 본 아가나만
아프간 요새에서 본 아가나만

외국 여행은 현지의 역사와 문화유적 감상, 현지의 맛집이나 기념품 매장을 찾아 추억을 남기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섬 북쪽에 앤더슨 공군기지, 남서쪽에 미 태평양 제7함대 해군기지가 있는 등 괌 전체 면적의 1/3가량이 미국 군사기지여서 섬을 일주하듯 돌아보아도 볼만한 것이 별로 없다. 역사 유적은 스페인이 원주민인 차모로족과 싸운 아가냐에 구축한 아프간 요새를 비롯하여 스페인과 미국이 벌인, 그리고 태평양전쟁 때 일본과 미국이 벌인 14개의 다양한 형태의 방어 시설이 전부다. 이런 전적지도 대부분 고작 1~2개의 대포를 설치해 둔 것이 전부고, 투명한 천혜의 해안가뿐이다(자세히는 2024. 8. 28. 괌 개요 참조).

스페인광장
스페인광장

괌의 중심인 투몬만의 투몬 비치에서 남쪽으로 가장 가까운 아가나만(Agana Bay)은 원주민 차모로족이 침략자인 스페인군과 싸운 전적지로서 ‘아프간 요새’라고도 하는데, 이곳에는 낡은 대포 몇 개가 전시되어 있다. 아가나에는 괌을 점령한 스페인의 총독과 주둔군이 있던 괌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na)이 있는데, 1944년 미군과 일본군이 전투를 벌이면서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80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스페인광장에서 도보로 약 2분 거리에 스페인인들이 예배드리던 ‘아가냐 대성당’이 있지만, 관광객에게는 공개하지 않는다. 아가냐 대성당과 대각선에 있는 괌 박물관은 1944년 미군과 일본군의 전투 때 파괴된 것을 2016년에야 현재의 건물로 재건했지만, 전시물은 볼만한 것이 없다. 발리와 롬복에서 박물관도 이와 비슷했지만, 그래도 명~청 시대에 교역했음을 말해주는 청자·흑자를 보았던 것이 기억되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기억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자세히는 2021.8.18. 롬복 시내 투어 참조)

괌 박물관
괌 박물관

스페인광장에서 해변 쪽으로 돌출된 곳에 파세오 공원(Paseo de Susana Park)이 있는데, 1944년 7월 미 해병대가 괌을 수복한 후 조성한 기념공원이다. 공원에는 미국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데, 이것은 미국 보이 스카우트연맹이 1950년 창립 40주년을 맞아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선물한 맨해튼의 자유의 여신상의 1/72 크기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매년 7월 21일 괌 수복기념 축제를 벌인다.

마젤란 초상
마젤란 초상

공원 입구는 차모로족이 사는 차모로 빌리지((Chamorro village) 뒤편인데, 차모로족을 통일한 추장 카푸하의 동상이 있고, 조금 더 들어가면 아담한 ‘성 안토니오 다리’와 ‘시레나 인어상’이 있다. 차모로 빌리지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후 6시부터 원주민 야시장이 열리는데, 투몬에서 이곳까지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어서 다양한 먹거리 음식과 열대과일을 맛볼 수 있다. 민속공예품도 살 수 있고, 원주민들의 음악과 춤도 구경할 수 있다. 또, 주말 새벽에 열리는 벼룩시장도 원주민들의 살아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또, 차모로족의 주거유적인 라테 스톤 공원(Latte Stone Park)은 석재로 주춧돌을 세우고 그 위에 반석을 얹은 2개의 기둥으로 이뤄졌는데, 공원에는 높이 1.5~2m의 돌기둥 8개가 2줄로 나란히 있다. 돌을 가공한 솜씨가 티니안섬 타가족 추장 저택의 주춧돌보다는 훨씬 세련됐다. 이곳에서도 라테 스톤을 테마로 한 공예품을 팔고, 또 부근에는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차모로족과 강제징용한 조선들을 동원해서 판 콘크리트 방공호도 있다.

아가나 대성당
아가나 대성당

아가나만에서 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아산만(Asan Bay)은 1944년 7월 미 해병대가 상륙하여 일본군과 격전을 벌인 곳이다. 아산만은 1898년 미국이 점령 이후 전통적인 스페인 양식이던 것을 현대식 2층 콘크리트 건물로 재개발됐다. 아가나와 니미츠 언덕 사이의 계곡인 마이나 지역은 니미츠 힐로 올라가는 길목인데, 니미츠 언덕에 세운 ‘아산만 전망대’는 미군이 일본군을 격퇴한 것을 기념하는 ‘태평양전쟁 사적공원’이다. 이곳에서는 북쪽의 아가나만과 남쪽의 피티만(Piti Bay)을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이곳은 1997년 8월 6일 KAL기가 추락한 현장으로 많은 희생자가 생긴 가슴 아픈 장소이기도 한데, 개인적으로 그날 55분 늦게 아시아나로 출발한 우리 가족 다섯 명은 사이판에 도착했다. 당시 괌으로 여행 간다는 말만 들은 가족과 직장동료들은 어느 여객기를 타고 출국했는지 알지 못한 채, KAL기 사고 소식을 듣고, 신문의 사망자 명단을 몇 번씩이나 샅샅이 살펴보기도 했다고 한다.

파세오공원
파세오공원

아산만의 바닷가는 미 해군기지이고, 그 옆에는 피시 아이 마린 파크(Fish Eye Marine Park)가 있다. 이곳은 바다 쪽으로 약 300m의 인공 덱을 만들어서 바닷속 9m까지 들어가 유리창 너머로 360도를 둘러볼 수 있는 수중 전망대가 있다. 또, 스쿠버 다이빙과 스노클링을 할 수 있는 해양공원이다. 미 해군기지 남쪽의 아카트만(Agat Bay)은 남부의 상업중심지로서 미군과 일본군이 전투를 벌였던 것을 기념하는 대포가 몇 문 놓여있다.

파세오공원 자유여신상
파세오공원 자유여신상

괌의 가장 남쪽에 있는 세티만 전망대(Cetti Bay Overlook)는 별다른 표지판이 없어서 지나치기 쉬운데, 언덕길을 약 5분쯤 올라가면 오른쪽에 붉은색 담장이 보이는 곳이 전망대다. 2층 전망대에 올라가면 화산 분출로 형성된 1000여 개의 작은 언덕들이 펼쳐지는 완만한 구릉을 볼 수 있고, 날씨가 좋으면 멀리 최남단 코코스섬까지 볼 수 있다. 특히 석양에 아름다운 일몰로 인기가 있다. 최근에는 남녀 불문하고 젊은이들이 ATV(All Terrain Vehicle)를 타고 정글 투어, 집라인 등이 관광상품으로 큰 인기다. ATV는 괌뿐만 아니라 사이판이나 티니안, 로타섬에서도 마찬가지로 비좁은 섬에서 보고 즐길 것이 없어서 만든 관광상품이다. 간단한 조작법을 교육받으면, 초보자라도 즉시 짜릿한 속도로 울창한 숲과 정글을 달릴 수 있다. 콘크리트 숲에서 사는 MZ 세대에게 자연을 직접 체험해 본다는 점은 있겠지만, 이용료가 1인당 100달러라 한다. 이런저런 추가비용을 생각하면, 불필요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라태스톤(차모로족 주택 주춧돌)
라태스톤(차모로족 주택 주춧돌)
티니안 추장 타가하우스 석재
티니안 추장 타가하우스 석재
아산만전망대 입구
아산만전망대 입구
아산만전망대
아산만전망대
아산만전망대 전경
아산만전망대 전경
피시아이 마린파크(수중전망대)
피시아이 마린파크(수중전망대)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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