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한국인 평화위령탑

1922년 국제연맹으로부터 위임통치권을 받은 일본은 조선인, 필리핀 노무자들을 강제 징용하여 사이판. 티니안 섬들의 밀림지대를 벌목하고, 사이판에 육군기지, 티니안에 해군기지를 설치하더니, 1941년 미국의 해군기지가 있던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하여 태평양전쟁을 벌였다. 당시에는 미국에서 아시아까지 중간 급유를 하지 않고 태평양을 횡단할 항공 기술이 없어서 미국은 하와이를 중간 기착지로 삼고 있었다. 1944년 7월 미 해병대의 북 마리아나 섬 점령으로 패망했다. 사이판섬 일대에는 BC 2000년 전부터 원주민 티모르족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무자비한 개발과 수많은 격전을 벌인 탓에 원주민의 유적은 찾아볼 수 없고, 태평양전쟁을 벌였던 일본군의 전적지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동안 일본인들은 자국의 빼앗긴 영토를 찾아가듯 전적지를 찾는 관광객이 대부분이었으나, 1980년 말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한국인들이 뒤를 이어받았다. 관광지마다 일어·영어·한글 등 3개 국어 안내판을 세워둬서 영어를 한마디로 알지 못하더라도 여행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을 정도다.

최후사령부 올라가는 길
최후사령부 올라가는 길

제주도의 10분의 1에 불과한 좁은 섬 사이판에서 중심가는 북서쪽에 있는 마이크로 비치(Micro beach)이다. 북쪽 켄싱턴호텔 사이판, 아쿠아 리조트 클럽 사이판, 크라운 플라자 리조트 사이판, 하얏트 리젠시 사이판, 사이판 월드 리조트, 사이판 PIC 가장 남쪽인 코럴 오션 리조트 등 주요 호텔 등이 있는데, 사이판의 유명 관광지를 일주하는 타시(Tasi) 셔틀버스도 가라판 시내에서 T-갤러리아 면세점에 정차하여 섬 북쪽에 있는 '한국인 평화 위령탑', ‘일본군 최후사령부’, '만세절벽', '새섬 전망대'까지 운행한다. 1일 이용권을 현금 구매하면, 하루 동안 자유롭게 반복 탑승하는 방식이다. 물론 렌터카도 가능하다.

일본군 사령부 앞 대포
일본군 사령부 앞 대포

마이크로 비치의 도로 오른쪽인 머피(Marpi)산 기슭에는 일제강점기에 징용되어 이곳에서 희생된 한국인을 위로하는 ‘한국인 평화위령탑’이 있다. 5각형 화강암으로 세운 높이 6m의 위령탑 꼭대기에는 비둘기들이 한국을 향해서 날아가는 모양을 조각해 놓았고, 탑 오른쪽에 위령탑 비문이 있다. 비문에는 해방 후 40년이 지난 1981년 9월 민간 단체인 ‘사단법인 해외 희생 동포 위령 사업회’에서 세웠음을 알게 되었다. 한국인위령탑은 티니안섬과 팔라우섬에도 있다.

일본군 최후 사령부
일본군 최후 사령부

통계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약 3000명 이상의 한국인이 사이판에 징용 또는 징병으로 끌려왔다고 하는데, 이렇게 초라한 탑을 보니 일본제국주의에 더더욱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머나먼 태평양의 작은 섬까지 끌려와서 숨진 영혼들을 일본은 마땅히 참회하고 위로해야 할 것이지만, 성조기·태극기·유엔 깃발만 게양대에서 나란히 펄럭이고 있다.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 공원 내 장승 뒤에는 사이판의 국화인 불꽃 나무(자귀나무)꽃이 붉게 피어있다,

최후의 사령부 자료실
최후의 사령부 자료실

한국인 평화위령탑에서 해발 249m의 머피산으로 올라가는 초입 잔디밭에는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는 부서지고 녹슨 일본군 대포 네댓 개 놓여있다. 산 중턱에 일본군이 천연동굴에 만든 육군사령부는 마치 햄버거 빵에 야채나 고기를 넣은 모양과 같다고 해서 미군들은 ‘햄버거 바위’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1944년 7월 6일 미 해병대가 사이판에 상륙하여 공격에 나서자, 일본군 총사령관 사이토 육군 중장은 할복자살했다. 일본군 최후의 사령부(The Last Command Post)’였던 천연동굴 입구는 미군의 포격으로 부서지고 형체만 남았지만, 동굴 속에는 전쟁이 끝난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콘크리트 구조물이 견고함을 자랑하며 전쟁 당시의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아마도 이곳에 전쟁의 잔해들을 친절하게 진열(?)해 둔 사람들은 분명 일본인들이었을 것이다.

자살절벽
자살절벽

머피산 정상의 서쪽 가파른 절벽을 자살절벽(Suicide Cliff)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사이토 사령관이 할복자살한 이튿날 약 1만 명으로 추정하는 일본군과 일본인들이 미 해병대의 항복 요구를 따르지 않고 산꼭대기까지 쫓기다가 더 이상 달아날 곳이 없자,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절벽에서 투신자살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쟁 후 일본인들은 이곳에 평화공원을 만들고 관음보살상도 세웠다. 정상에는 평화 기념 공원과 전망대가 들어서 있으며, 만세 절벽과 태평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머피산 정상에서 본 사이판 전경
머피산 정상에서 본 사이판 전경

머피산에서 내려와서 한국인위령탑에서 길 건너 바닷가로 약 200~300m쯤 떨어진 해안가에도 만세 절벽(Banzai Cliff)이 있다. 사이판의 최북단인 사바네타 곶(Sabaneta point)과 라과카탕 곶(Lagua katan point) 사이에 있는 약 80m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은 거친 바위와 검푸른 바다로 떨어지는 사이판의 대표적인 풍경 명소이지만, 이곳도 1944년 7월 미군이 사이판에 상륙하였을 때 쫓기던 일본군이 머피산 서쪽 가파른 절벽에서 투신하여 ‘자살절벽’이라고 불린 것처럼 평지에 있던 일본군들이 ‘천황 만세’를 외치며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곳이다. 절벽 언덕에는 일본 각 단체에서 세운 위령비가 즐비한데, 하얀 파도가 물거품을 일으키며 절벽으로 밀려왔다가 산산이 부서지며 흩어지고 있다.

자살절벽
자살절벽

만세 절벽 북쪽 끝에서 약간 동쪽으로 굽어진 매독 곶에는 태평양의 거센 파도와 바람을 피하기 좋도록 말발굽 모형처럼 섬 안쪽으로 굽은 새섬(Bird Island)이 있다. 육지를 향해 웅크리고 있는 바위가 거북처럼 생겼다고 하여 거북을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는 원주민들은 ‘거북 바위’라고 불렀다고 하지만, 당시 사이판에 살던 일본인들은 달맞이하기에 좋다고 ‘달맞이 섬’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해안선에서 약 60m쯤 떨어진 삼각형의 새섬은 무수한 화산구멍이 새들의 보금자리로 안성맞춤인데, 새들은 이곳에 집을 짓고 아침이면 멀리 날아갔다가 저녁때 구름처럼 돌아온다고 하여 오래전부터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하지만, 정오 무렵에 찾아간 탓인지 새들을 구경할 수는 없었다. 산호초로 눈부신 태평양 바다와 만세 절벽을 배경 삼아 기념사진 몇 장을 찍고 계단을 올라오는데, 40대쯤 되어 보이는 원주민 내외가 일제 도요타 마크도 선명한 중고 픽업 차에서 야자열매를 팔고 있다. 야자 1개에 2달러라고 하는데, 열대과일을 맛보기 위해서 많은 관광객이 줄을 지었다. 우리도 야자열매 세 개를 샀다. 각종 인공 조미료에 찌든 입맛 탓인지 약간 싱거웠지만 먹을 만했다. 적어도 100% 무공해 자연식품일 테니까.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새섬
새섬
사이판 저주의 해변
사이판 저주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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