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응원의 가장 좋은 방법은 저서 꼼꼼하게 읽기.

‘문인(文人)’을 처음 만났던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글쓰기에 다소 소질이 있어보였는지 중학교 3학년 때 자형이 김이홍 시조시인께 데려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인, 문인이라면 대체로 베레모를 쓰고 파이프 담배를 문 깡마른 체구의 인물들로 상상을 했는데 만나보니 푸근하고 후덕한 인상이었다. 당시 서울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셨고 학교에서 매일 만나는 담임 선생님 그 모습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와 함께 시조에 관심을 가지라는 당부도 있었다.

문인을 자주 만나게 된 것은 대학, 대학원 시절부터였다. 용돈을 아껴 시집, 소설집을 사서 앞부분을 읽고 나름 ‘필’이 꽂히면 그 문인을 직접 만나 책에 친필 서명을 받는 습관이 생겼다. 젊은 작가는 물론 원로, 중진 문인들도 찾아뵈었다. 이메일이나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대부분 출판사로 전화하여 작가 연락처를 수소문하였다. 작가들께 전화를 걸어 사연을 설명하고 다방에서 만나 저서에 사인을 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책이 귀하던 시절, 그리 저렴하지도 않은 시집, 소설집을 구입하여 이런저런 경로로 작가, 시인을 수소문하여 대화를 나누며 서명을 받던 ‘오지랖’ 행태가 그 후 대학에 봉직하면서, 특히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없는 외국문학을 전공으로 삼으며 자연스럽게 문헌과 자료, 기록으로 접촉하는 형태로 바뀌어 갔다.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는 오랜 기간 집적된 관련 서적과 선행 연구를 접하면서 직접 대면과는 또 다른 흥미를 느꼈다. 분석과 상상 거기에 논리적 뒷받침이 더해지면서 발견하는 작가의 메시지와 교훈, 현대성은 직접 만남을 통한 소통과는 또 다른 흥미와 지적 성취감을 줄 수 있었다.

가수나 탤런트, 배우들은 현장에서 열광하는 팬들,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이며 성원하는 애호가들의 성원으로 인기를 유지하며 힘을 얻는다. 직접 무대에서 혹은 화면을 통하여 면대면 소통이 가능한 연예인들은 즉각적인 환호와 반응으로 활동의 원동력을 얻는다지만 문학예술의 경우 작가와 독자 사이에 어느 정도 적절한 공간과 여백이 필요할지 모른다.

요즈음 북 콘서트, 토크쇼나 사인회 등을 통해 작가를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많아졌지만 문학에서 작가와 독자의 만남이란 본질적으로 글을 통하는 것이고 작품이 이끌어내는 상상의 영역에서 나누는 교감이다. SNS 등 여러 채널로 저마다 한마디씩 보탤 수 있는 세상에서 작품집을 구입하여 읽고 작가의 한마디, 한 구절을 기억하고, 그렇게 해서 깊어진 감수성으로 자신이 체험한 삶의 순간, 일상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면 비로소 그 만남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려면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어느 정도의 시간과 공간의 이격(離隔),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직접 대면과 빈번한 접촉이 잦은 어수선하고 분주한 상황에서는 단단하고 심도 있는 문학작품이 생산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와 시인들을 찾아다니며 번거롭게 굴었던 젊은 시절의 행동거지가 새삼 돌이켜진다. 독서와 간접소통 그리고 한걸음 떨어져서 보내는 무언의 성원이 문학과 작가를 성장시키는 ‘팬’들의 소임일 것이라 생각한다. 전 세계 관심이 쏠려있는 노벨상 수상 한강 작가에게도 이런 조용한 응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여기저기 호들갑스럽게 불러 세우는 세속적인 반짝 이벤트보다 그냥 있던 자리에서, 노벨상 수상 이후 부담을 느끼지 않고 평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더 좋은 작품을 쓰도록 무관심의 관심을 보낼 때인 듯싶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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