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타가 비치

외국 여행을 떠나면 대개 여행지의 전통문화와 유적을 찾아보고 맛집을 들르는 것이 일정이지만, 괌이나 사이판 일대는 상하의 계절이어서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여행지인 데다가 깨끗한 바다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것이 가장 이유가 된다. 오랫동안 스페인, 일본, 미국 등 여러 민족에게 식민 지배를 받아온 북마리아나 제도에서는 원주민인 차모로족의 유적이 파괴되어 남아 있는 것이 매우 드물고, 2차 대전 당시 일본군과 미군의 전적지가 압도적이다. 특히 미국의 자치령인 북 마리아나 연방 정청에서는 관광 인프라 개발에 주력하지 않아서 여행객 대부분은 지역 역사와 문화는 피상적이고, 태평양의 낯선 풍경 사진과 색다른 식음료에 찾다가 돌아오는 점이 아쉽다.

타가 비치 가는 길
타가 비치 가는 길

티니안의 번화가인 산호세 중심부의 ‘타가 하우스(Taga House)’와 타가 하우스 바로 앞에 있는 타가 비치(Taga beach)는 차모로족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약 450년 전 차모로족의 일파인 타가족 추장이 살았다고 하는 타가 하우스는 거대한 높이 4.6m에 이르는 큰 돌기둥이 뒤엉켜 있는데, 우리가 집을 지을 때 목제 기둥을 세우듯이 거대한 석재 주춧돌이 남아 있다. 차모로족의 커다란 돌기둥을 라데 스톤(Latte Stone)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남쪽으로 1.2㎞ 떨어진 해변에 암반 채취 흔적이 남아 있다. 중장비도 없던 시대에 이렇게 거대한 석재를 어떻게 옮겨왔으며, 어떻게 집을 지었는지는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다만, 타가 하우스의 유적지가 매우 협소한 것을 보면 타가 족의 세력도 그다지 강력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타가 스톤은 북마리아나 제도 연방의 문양이 되었을 만큼 타가 하우스 라테 스톤은 유명하다.(라테 스톤에 대해서는 2024. 9. 11. 괌 남부여행 참조)

타가하우스 석재들
타가하우스 석재들

타가 하우스 바로 앞에 있는 타가 비치는 산호세 마을에서 가깝기도 하지만, 티니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일몰 감상 포인트여서 구름이 오렌지빛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석양에는 많은 관광객이 붐비기도 한다. 타가 비치는 해안가 절벽 아래에 내려가야 해서 섬에서는 모래사장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해변으로 내려가는 계단 난간은 요즘 젊은이들의 다이빙대로 이용되고 있고, 타가 비치는 차모로족의 족장인 타가와 그의 가족만 이용할 수 있는 해변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모래사장 뒤편은 절벽이 막아주고, 절벽 아래 작은 동굴 안은 햇빛을 피할 수 있다.

타가하우스
타가하우스

섬 가장 북쪽에 있는 미 공군기지 노스필드 활주로(North Field Runway Able)는 2차 대전 당시 일본 해군의 항공 함대사령부가 있던 기지이자 태평양 전쟁 당시 남양 군도에서 제일 큰 ‘하고이 비행장(ハゴイ飛行場)’이었다. 이곳에는 일본 육·해군 약 8500명이 주둔하고 있었고, 조선과 필리핀 등지에서 강제로 끌려온 노무자들이 부역하고 있었다고 한다.

출루비치
출루비치

1944년 7월 24일 섬의 북서부 출루 비치(Chulu Beach)에 상륙한 미 해병대가 9일간의 교전 끝에 하고이 비행장을 점령할 때 비행장은 폐허가 됐는데, 미 해병대가 하고이 비행장을 점령하기 위하여 상륙한 출루 비치는 랜딩 비치(Landing Beach)라고도 한다. 북마리아나 제도의 섬들은 대부분 산호초 섬이지만, 특히 산호초가 부서져 모래를 이룬 출루 비치의 별 모래로 원주민들은 별점(占)을 쳤다고 한다. 출루 비치는 주변에 야자수와 나무들이 많아서 풍경이 매우 아름다운데, 섬의 북동쪽 산호초 바위 암벽에 수많은 구멍이 뚫려있어서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조수가 10m가량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것을 ‘블로홀(Blow hole)’이라고 하여 관광 코스로 삼은 것이 조금은 가소롭다.

블로우 홀
블로우 홀

미군은 파괴된 하고이 비행장을 복구하여 그해 11월부터 일본으로 출격하는 모든 B-29 전폭기는 이곳에서 발진했다고 하는데,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사흘 뒤인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 각각 원폭을 투하한 전폭기도 이곳에서 출격했다. 여담으로 당시 미군이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뒤 일본이 즉시 항복했더라면 사흘 뒤에 나가사키에 원폭을 다시 투하할 필요가 없었지만, 당시 히로시마는 폐허가 되어서 도쿄와 연락이 되지 않아서 히로시마의 상황을 알지 못하고 있던 일 군부가 뒤늦게 히로시마가 잿더미가 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일본의 내막을 알지 못한 미국은 일본의 반응이 없자, 사흘 뒤인 9일 다시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했다. 이것도 애초는 일본 본토와 규슈를 잇는 항구이자 최대의 제철소가 있는 북규슈의 고쿠라(小昌市)였지만, 당시 비가 내리는 악천후에 시계(視界) 비행하던 조종사는 맨눈으로 판단할 수 없어서 제2 공격 목표인 나가사키로 변경 허가를 받아 폭격하게 됐다고 한다.(자세히는 2021.12.15. 나가사키 평화공원 참조)

옛 일본 해군 사령부
옛 일본 해군 사령부

현재 미군 노스필드 공군기지의 활주로는 2.6㎞라고 하며, 폐허처럼 보이는 콘크리트 2층 건물이 일본군이 사용하던 비행장 건물로서 지금은 미군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활주로 북쪽에는 2차 대전 당시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기념관이 있다. 원폭 기념비를 세우고 공원으로 만든 이곳에서 삼각 유리지붕의 원폭 투하 기념관에는 당시의 상황을 사진과 기록으로 보여주고, 또 가로 3m x 세로 5m, 깊이 2.5m의 원자탄 보관소는 일본에 투하한 원폭 저장고라고 한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일본군 활주로
일본군 활주로
롱비치
롱비치
미국 원폭 표지석
미국 원폭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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