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빵을 사기 위하여 대전역에서 열차를 환승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유명 빵집 입소문으로 이른바 빵의 성지가 된 사례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감성사회에서 여러 층위로 분석할 만한 문화현상의 하나로 꼽힌다. 앞으로 언제까지 그 열기와 선호도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과업체 하나가 대도시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고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는 일은 그리 수월하거나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주나 군산 등지에서도 그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난 제과점이 있지만 특정업체 전세료 폭등이 뉴스로 등장하고 전 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사례는 드문 일이 아닐까 싶다. 부디 이 호황을 온전히 활용하여 다른 관광 인프라와 연계, 대전이 국토의 중심부라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노잼도시라는 달갑지 않은 평판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밀가루를 이용한 빵이나 케이크로 관심을 모으고 있으니 또 다른 밀가루 음식, 칼국수를 함께 육성하여 ‘식사와 디저트’라는 유기적인 조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노려봄 직하다. 빵과 칼국수의 결합 같은 문화관광 콘텐츠를 통한 관광상품화의 길은 긍정적이므로 밀가루를 사용한다는 공통분모는 일단 매력 있는 포인트가 된다. 강원도 동해시에서도 칼국수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는데 오래 전 시작하여 인지도를 굳힌 대전 칼국수 축제, 근래 누들페스티벌 등은 여기에 힘을 실어줄 교두보가 될 만하다.
칼국수를 빚을 양이면/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밀가루 반죽을/ 오래 오래 손끝으로/
주무르다가/ 홍두깨에 말아/ 질펀히 편 다음/ 몇 갈래로 접어/ 도마 위에 펴놓고/
가늘게 가늘게 썰어내는/ 느긋한 기다림 속에/ 맛이 배어 있나니/ 사람들아/ 사람들아/ 공장에서 찍어내는/ 팔도라면으로/ 우리의 살과 뼈를/ 살찌운다 한들/ 우리의 허기를/ 메운다 한들/ 그 속에서/ 무슨 빛깔의 영혼이/ 꽃피울 수 있으랴.
- 최원규, ‘국수’
명품 ‘칼국수 도시’를 제대로 육성시키려면 공장에서 뽑아내는 기계면(麵)을 식재료로 쓰기는 어렵다. 원로 최원규 시인은 지금과 같은 인스턴트 스피드 시대에 전통적으로 국수 만드는 법에 대한 상찬과 그리움을 피력하면서 복고풍의 여유와 멋을 노래한다. 그런 칼국수가 축제로 제대로 뿌리 내리려면 반죽 그리고 면발을 써는 과정을 수고롭지만 모두 인력으로 감당하는 수제 칼국수라야 가능할 것이다. 바쁜 일상에 홍두깨 등으로 미는 반죽과 어머니 손길을 떠올리는 칼질을 고객들에게 시연함으로써 칼국수 본거지로서의 명성이 굳어지지 않을까. 바쁜 손님들께는 이 과정을 생략하고 기존 만들어 놓은 면으로 끓인 국수를 제공하면 될 일이다. 친환경 국산 밀가루에 쌀가루, 콩가루, 들깨, 메밀가루 등을 넣어 찰진 수타면을 만들고 국물과 고명 역시 다양한 식자재로 차별화 한다면 K-푸드의 일환으로 세계무대에서 파스타와 어깨를 겨룰만한 품질과 맛, 외양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모두들 분주히 움직이는 세상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는 여유를 함께 파는 마케팅은 어떨까. 더러 조금 느린 과정 속에서 나와 내 삶의 본래 모습, 리듬이 비로소 실물감으로 나타나기를 기다려볼 수 있다. 밀가루를 치대고 홍두깨로 밀어 만든 칼국수 한 그릇, 나날이 빨라져만 가는 일상에서 기다림과 따뜻한 정감을 덤으로 선사하는 명품 칼국수 도시를 그려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