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애도기간, ‘숨 고르기’
원칙 유지하면서 시점엔 유연한 태도

야당이 쌍특검법과 헌법재판관 임명 등 현안 처리와 관련해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제주항공 참사의 무게가 엄중한 만큼 속도 조절을 통해 효율적인 해소 방안을 모색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모양새다. 민심을 앞세운 속도전이 자칫 역풍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여론 인식이 바탕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민의힘이 한동훈 전 대표 퇴출 이후 빠르게 전열을 정비하면서 여당 지지율이 다시 반등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30일 KBS라디오 ‘전격시사’에 나와 “헌법재판관 공석 3명을 임명하는 것이 최 권한대행의 당연한 의무”라면서도 “임명 시한을 지금 당장 정할 필요는 없다. (제주항공 참사) 사고 수습에 대한 권한대행의 국정수행 과정을 지켜보면 민주당의 대응 방향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비상계엄사태로 인해 민심이 야당으로 기울었고 이를 지렛대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국정운영 주도권을 쥐고 줄곧 강공모드를 취했는데 지금은 태세 전환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힘을 싣는 뉘앙스다. 다만 박 원내수석부대표는 연쇄 탄핵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지는 않다. 한 전 권한대행에 대해서도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지 않았나. 그 이후에 한 전 권한대행이 내란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부분을 확인했기 때문에 탄핵한 것이고 최 권한대행에 대해서도 어떤 결정을 할지 지벼보겠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쌍특검법(내란특검·김건희특검)과 관련해서도 민주당 내에선 일정 부분 퇴로를 마련해주는 모양새를 만들고 있다. 김윤덕 민주당 사무총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특검법 수용에 대한) 마지노선을 설정한 바는 없다. 최 권한대행이 수용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 권한대행이 쌍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원칙이지만 한층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거다. 김 사무총장은 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의 수에 대해서도 “좀 기다려야 하지 않겠나. 신중하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며 설득과 대화도 할 것이다”라고 했다.
민주당의 이 같은 태세 전환은 제주항공 참사라는 시기적 민감성도 있지만 ‘연말연시 분위기도 있는데 너무 몰아붙이는 것 아니냐’는 여론도 무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26∼27일 전국 만18세 이상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도는 30.6%로 전주보다 0.9%포인트(p) 상승한 반면 민주당은 45.8%로 전주보다 4.5%p 하락했다. 여전히 양당 간 격차는 15.2%p, 14주째 오차범위 밖에서 우세하지만 이달 둘째 주 26.7%에서 큰 폭으로 격차가 줄었다는 게 민주당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어차피 최 권한대행도 윤 대통령이 임명한, 여권과 한통속인데 여당 편에 서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연쇄 탄핵에 따르는 반대급부도 있으니 속도를 조절하면서 전략을 다시 짜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정치권 일각의 의견도 이를 뒷받침 한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