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충청에 미치는 영향력 상당해 역사·상징 충분
워낙 고대국가여서 현실성 부족 및 공감대 형성 숙제
이미 명칭 안착한 지하철 9호선 한성백제역 사례 살펴야

사진 = 대전시청
사진 = 충남도청

대전충남특별시의 약어(대충특별시·대충시)가 주는 부정적 어감을 지적하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통합 지자체의 명칭부터 시급히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역사성과 상징성 등을 따졌을 때 ‘백제’라는 콘텐츠를 충분히 활용하자는 필요성이 제기된다. 명분은 충분하지만 백제가 워낙 고대국가였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숙제는 남아 있다.

◆세종, 충북 넘어 전북까지

4일 대전시와 충남도,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등에 따르면 백제는 북쪽의 부여계통으로 구성된 여러 이주민 세력이 한강유역의 선주민과 결합해 형성된 국가라고 보는 게 정설이다. 지금의 경기, 충청, 전라지역엔 당시 마한이라는 나라 안에 여러 소국이 있었는데 고구려를 세운 동명왕의 셋째 아들인 온조가 이곳에 터를 잡아 마한의 여러 소국을 병합해 성장·발전시킨 게 백제의 시작이다. 삼국사기엔 백제 건국 시기가 기원전 18년으로 기록됐으며 국호는 ‘모든 백성이 즐겨 따랐다’라는 의미다. 백제는 이후 고구려, 신라와 함께 한반도를 나눠 가졌고 삼국 중 가장 먼저 전성기를 맞았다. 제13대 근초고왕 시절이다. 근초고왕은 전라지역의 마한을 통합시키고 가야지역까지 영향력을 끼치면서 점차 영역을 남쪽으로 확대했고 고구려의 남진정책을 효율적으로 저지하면서 371년 평양성까지 공격,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전성기 백제의 영역은 경기와 충청, 전라지역은 물론 북한의 황해도 일부 지역까지 확장됐다. 그러나 남진 정책에 크게 힘을 실은 고구려 장수왕대엔 영역을 크게 잃었고 475년 장수왕이 지금의 서울 인근인 백제의 한성을 함락했다. 이 시기부터 백제의 중심지는 한성에서 충청지역으로 후퇴했다. 계속된 고구려의 남진 정책으로 현재의 충남 천안, 세종, 대전 일부까지 뺏긴 백제는 충남 중남부 지역에서 사생결단을 통해 결국 충청 일부를 되찾는 데 성공하며 현재의 일부 충북지역을 제외한 충청지역을 영토로 했다. 이는 백제라는 콘텐츠를 대전시와 충남도 간 행정통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역사성으로 작용한다. 특히 대전시와 충남도는 행정통합의 영역을 장기적으론 충청 전역으로 확대할 뜻을 내놨고 충북도 역시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만큼 당위성은 부족하지 않다. 특히 충남도가 메가시티 논의에서 철저하게 제외돼 교류 확대와 연대 차원으로 전북도에 접근하는 걸 고려하고 과거 백제가 호남지역에도 영향력을 뻗친 걸 감안하면 이 같은 상징적인 명분엔 더욱 힘이 실린다. 백제 역사에 후백제까지 편입한다면 당위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후백제의 수도는 옛 사비백제의 부수도권이었던 전북 익산-전주 권역이고 해당 지역은 백제부흥운동의 성패를 놓고 나당과 가장 치열하게 쟁패를 벌였던 대전과 함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곳이다.

◆현실성 부족, 공감대 형성 숙제

백제라는 충청의 얼을 대전시와 충남도의 행정통합 과정에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명분은 충분하지만 현실성 등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백제가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한 때 맹위를 떨쳤고 1599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겼지만 워낙 고대국가여서 공감대 형성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여서다. 대표적인 게 KTX 공주역 사례다. 지난해 충남연구원이 KTX 공주역 이용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변경될 역명 중 공주역(논산·부여)에 대한 선호도는 공주에서 62.7%, 논산과 부여는 35.6%, 청양 25.9%, 세종에서 16.7% 순으로 나타났다. 백제역은 공주 11.3%, 논산과 부여가 41.1%, 청양, 11.1%, 세종이 16.7%를 보였다. 백제역보단 공주역을 선호하는 의견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이처럼 공주역을 백제역으로 변경하려는 작업이 시작됐지만 공주시, 논산시, 부여군 간 구체적인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고 해당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백제라는 콘텐츠를 활용하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전혀 형성되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이를 뒤집는 사례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서울지하철 9호선 한성백제역의 사례다. 서울지하철 9호선 계획 당시 한성백제역의 임시 역명은 신방이역이었다. 그러다 2017년 9월 29일부터 10월 29일까지 온라인 등을 통해 역명 공모가 이뤄졌고 이듬해 5월 21일 서울시의 제1차 지명위원회 심의에서 한성백제역이 낙점됐다. 인근에 한성백제 시기 위례성의 주성으로 쓰였던 몽촌토성이 존재하고 한성백제시절의 유물 수만 점을 보관하는 한성백제박물관이 위치했단 점이 작용했다. 같은 해 8월 2일 서울시 고시에 따라 해당 역은 한성백제역으로 최종 확정됐다. 한성백제역은 다른 노선에 비해 이용객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한성백제의 역사를 서울시민에게 알리는 중요한 역할은 했단 건 부정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전시와 충남도의 행정통합, 이를 넘어 세종시, 충북도까지 확장하는 한편 전북도와 연대를 노린다는 걸 상정하고 한성백제역이란 역명이 공모에 선정되고 완벽하게 안착한 점도 고려하면 공감대 형성만 이뤄진다면 행정통합에서 백제라는 콘텐츠를 활용하기 수월할 수 있다.

홍제연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백제충청학부장은 “백제가 충청권에서 갖는 상징성과 역사성은 상당하다. 다만 고대국가의 영역이 완벽하게 현재의 충청과 딱 맞아떨어지진 않기에 ‘백제를 십분 활용하자’라고 하는 것도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다만 지역민과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현실성 문제는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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