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수필가·여행작가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는 조상이 남긴 문화유산을 보관 전시하여 국민의 자긍심과 함께 외국 관광객에게 자국의 역사를 알기 쉽게 소개하는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대만에는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하여 대만으로 쫓겨온 국민당 정부는 북경 자금성(고궁박물원)에 소장하고 있던 유물 60만 8950점을 옮겨서 국립고궁박물관을 지어 전시하고 있다(자세히는 2024년 12월11일자 국립고궁박물관 참조). 또, 대만 원주민들이 본토인의 탄압에 반발하여 벌어진 1947년 2월 28일 항거의 진압 과정에서 희생된 원주민들을 기리는 ‘2.28 평화기념공원’ 안에 일제강점기 시대인 토지 개혁을 할 때 사용했던 측량 도구, 토지개혁 역사 기록, 토지 채권 등 자료를 전시하던 공간을 고쳐서 2013년 대만 원주민의 문화유산을 전시하는 국립대만박물관(國立臺灣博物館)을 세웠다.(자세히는 2024년 2월 5일자 2.28 평화기념공원 참조)
그런데, 타이베이 최대의 국립대만식물원(台北植物園) 경내에 국립공예연구원 등 여러 건물과 함께 국립대만 역사박물관이 있다. 대만 정부가 국립고궁박물관 이외에 1956년 국립 역사박물관을 세우게 된 것은 대만이 원래 대륙 최남단인 푸젠성(福建省)에 속했던 섬이라는 역사가 있다. 국민당 정부가 국부천대(國府遷臺) 할 때 푸젠성의 하남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던 지방의 문화재들을 옮겨왔는데, 이후 대만 전 지역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물을 통합하여 전시하는 지방 박물관 역할을 하던 중 식민 통치하던 일본으로부터 반환받은 예술품을 함께 전시하면서 국립 역사박물관이라고 했다.
대만에는 약 5만 년 전부터 말레이-폴리네시아계 16부족의 원주민이 살았는데, 이들은 식인풍습도 있고, 부족 간에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 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식민 통치 시기에 원주민들은 대만 북부와 서부 평야 지대에 사는 까오산족(高山族 또는 生蕃族)과 고산지대에 살고 있는 핑푸족(平埔族)으로 통합 정리되었는데,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고려해 국립고궁박물관의 소장품 중 일부를 양도받아 중국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약 5만 6000여 점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하지만, 2013년 2.28 평화기념공원 안에 국립 대만역사박물관을 개관한 이후 약간 관심이 적어졌다. 타이베이 시내에서 MRT 샤오난센 역(小南門站)에서 3번 출구로 나서거나 단수이선(淡水) 장제스 기념관 역 1번이나 2번 출구로 나서면 대만 정부 청사들과 장제스 총통을 기리는 국립중정기념관이 있는 번화가인 중정구(中正區)에 있다.
대만식물원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있는 중국 전통 양식의 5층 건물이 일제강점기 당시 대만상업진흥회관 건물을 개축한 국립 역사박물관인데, 중국인 특유의 붉은색 원형 기둥의 건물이 주변의 무성한 나무들과 잘 어울린다. 국립 역사박물관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관하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입장료는 80 대만달러(한화 약 4000원)지만, 65세 이상 노인과 미취학 어린이들은 무료입장할 수 있다. 물론 특별전시가 열릴 때는 그 입장료를 따로 받는다. 국립 역사박물관은 5층 건물로서 상설전시실과 특별전시실로 나뉘는데, 역사박물관이라는 명칭과 어울리지 않게 역사 유물은 3층 상설전시실 3개뿐이다.
1층의 전시실 3개와 2층의 전시실 3개가 모두 회화를 전시하고, 4층 테마전시실에서도 외국 유명 화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특별전시실이 있는 등 미술품 전시가 압도적으로 많은 점으로 미루어 보면 원주민을 위한 국립 역사박물관이라는 명칭은 대만 정부가 원주민을 달래려는 조치인 것 같다.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 역사박물관의 소장품을 비교해 보면,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주로 청동기시대의 유물과 특히 마지막 왕조인 청의 황실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는 명·청 시대의 유물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국립 역사박물관은 5천 년 전의 은허(殷墟) 시대의 토기를 비롯하여 뤼양(洛陽) 지역에서 발견된 선진시대(先秦時代)의 끈 모양이 달린 도자기, 허난성(河南城) 진헝(新鄭: Xinzheng), 헝양(輝縣; Huixian) 등지에서 발굴된 한(漢) 시대의 청동기, 녹색 도자기, 전통 한족의 문화를 잘 엿볼 수 있는 육조문화(六朝文化)의 조각품 등이 있다.
또,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시대순보다는 주로 주제별로 전시됐지만, 국립 역사박물관은 시대순으로 전시가 되어 있다. 특히 서역의 이슬람 상인들과 교역 사실을 보여주는 낙타와 교역 물품을 보여주는데, 당 시대의 당삼채(唐三彩)와 자기들이 많다. 물론 대만 천도 이후 대륙에서 새로이 발견된 유물이나 유적은 전시하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전시물은 협소한 역사박물관 사정으로 국립고궁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일정 기간마다 전시물을 교체 전시하고 있지만, 마치 향토박물관과 국립박물관이 혼재된 느낌이 강하다. 특히 당 시대 귀부인들의 그림이나 공예품을 보노라면, 당시의 미인은 머리는 높이 올린 가채(加髢)에 얼굴이나 몸매는 지금처럼 날씬하지 않고 풍성한 모습이 많다. 그렇다면 당 태종의 후궁이었다가 이복 아들 현종의 비가 되었던 패륜적인 측천무후(則天武后)를 비롯하여 경국지색으로서 중국 4대 미녀 중 하나인 양귀비(楊貴妃)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중국은 한족 이외에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로서 중국 정부는 특히 소수민족이 많은 지역을 소수민족 특별자치구를 설치하여 이원적 언어 체제로 통치하고 있다. 또, 베이징에 55개 소수민족 박물관을 테마공원처럼 설치하여 공개하고 있다(자세히는 2020년 1월 8일자 중국 여행 참조). 전문가들은 만일 중국이 민주화가 된다면 30여 개 국가로 분열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국립 역사박물관을 관람한 뒤 국립식물원의 연꽃 호수공원을 산책하거나 정자에서 잠시 휴식하는 것도 좋고, 박물관 건너편에 있는 국립대만공예연구원을 관람하는 것도 좋다. 국립대만공예연구원의 입장료는 무료인데, 전통적인 천제의 자손으로서 제사를 지내던 북경 원구단의 천단(天壇) 같은 원통형 건물로서 역대 중국인들의 공예품 수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옥상에 올라가면 타이베이 시내를 전망대처럼 골고루 살펴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