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필립 뱅크스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part 1. 지난 겨울, 우리나라에 ‘칠가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이 유행어는 디지털 아티스트 필립 뱅크스가 공개한 캐릭터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이다. 지난 2023년, 필립 뱅크스는 자신의 X(구 트위터)계정을 통해 "나의 새로운 캐릭터"라는 제목의 이미지를 게시하며 칠가이를 세상에 알렸다.

그 사진 속 칠가이는 회색 스웨터와 연청바지를 입고, 주머니에 양 손을 넣은 채, 아무런 움직임 없이 서 있었다. 그의 눈은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고, 입꼬리는 미묘하게 한 쪽만 올라가, 그를 더욱 결연하게 보이게 했다.

칠가이의 종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카피바라와 강아지 사이 그 중간 어딘가의 모호한 생명체를 형상화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2024년, 이 캐릭터는 틱톡에서 인기를 끌며 세계 각지에서 '밈'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영미권을 넘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애당초 영미권에서 칠가이는 고단한 세상 속에서도 무심하고 긍정적인 태도로 느긋하게 살아가는, 낙관적이 쿨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로 묘사됐다. 그러나 국내에서 칠가이 밈은 본래의 의미를 잃고, 단순히 '칠'이라는 음을 이용한 언어유희의 대상으로 변질된 경향이 있다.

새해 복 chil짜(진짜) 많이 받으시길..
 

chill년(7년)이 지나도 사랑해

널 만난 건 chill럭키야(*숫자 7은 행운의 숫자다)

넌 참 까chill(까칠)해

한 대 chill(칠) 수도 없고

침을 chill chill(질질) 흘리면서 자니

박수 chil(칠) 때 떠나라

날 망chill guy(망칠 남자)라는 걸 알지만 아무렇chill(아무렇지) 않게 계속 만나며 똑같이 망chill(망칠) 생각인 chill girl

상술한 문장들이 바로 그 예시들이다. 이쯤 되면, '칠'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칠’이라는 단어는 영어 단어 'chill'을 한국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Chill은 본래 ‘차갑게 만들다’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현대 영어에서는 ‘느긋하다’, ‘침착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칠 가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고수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실제로 칠 가이의 표정과 자세는 그 어떤 설명 없이도 그 특유의 여유를 자연스럽게 풍기고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필립뱅크스
사진= 인스타그램/필립뱅크스

part 2. 온라인 상에서 ‘칠가이’를 활용한 패러디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는 가운데, 몇몇 브랜드들의 행보에도 눈길이 간다. 핸드폰 케이스, 키링, 인형, 티셔츠 등 '칠가이'의 이미지를 담은 다양한 제품들이 차례로 출시되며, 그 인기를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칠가이 밈의 배경음악 또한 화제다.

필자는 한 때 꿈에서도 '칠가이 배경음악'이 들릴 정도로 자주 들어 chill girl이 될 뻔 했다.

'칠가이 BGM('브금') 계이름은 다음과 같다.

도 미b 파 라b 시b 도 / 도 미b 파 라b 시b 라b

도 시b 라b 파 미b 도 미b 파 /  라b 시b 도 시b 라b 파 /  라b 파 라b 파 라b 시 라b

사진= 유튜브 '말그대로내맘대로 이콜씨'
사진= 유튜브 '말그대로내맘대로 이콜씨'

이 BGM을 편곡해 '사실 많이 힘들었던 chill guy'라는 곡명으로 SNS에서 큰 화제를 모은 청년을 만나봤다.

더 높은 목표를 위해 휴학을 결심한 문지유(22세·실용음악과)씨는 입시 횟수로 치면 '4수생'이다.

입시 음악에 대한 권태감이 그를 감싸고, 음악을 포기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 재미삼아 올린 영상이 9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그의 삶에 작은 전환점이 찾아왔다.

과거 음악을 즐겼던 때의 순수함과 열정이 되살아나며, 음악에 대한 새로운 열망이 그의 가슴 속에 불을 지폈다.

'사실 많이 힘들었던 chill guy'를 제작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그는 "어느 날 친구가 보내준 '가면 뒤에서 울고 있는 칠가이 그림'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됐다"고 답했다.

힘들어도 티내지 않는 칠가이의 모습이 마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시청자분들이 이 영상을 통해 재미를 느끼고, 또 한편으론 작게나마 위로와 감동이 되길 바랍니다"

새로운 입시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SNS를 통해 대중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일은 여전히 그에게 큰 즐거움이다.

기타리스트이자 작·편곡가가 꿈인 문지유 씨는 "음악 관련 영상 제작은 물론, 작곡과 편곡도 꾸준히 할 생각"이라며, "앞으로도 많은 기대와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진= 뱅크시 인스타그램
사진= 뱅크시 인스타그램

part 3. ‘칠가이’의 태도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끊임없는 경쟁 구도를 견디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MZ세대에게 새로운 지침서를 제공한다.

실제로 침착한 태도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은 정신 건강에 유익하다. 국제 학술지 ‘Journal of Health Psychology’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여유로운 속도로 생활하는 것이 급박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정신 건강에 더 이롭다고 한다. 연구팀은 느긋한 생활 속에서 자아 성찰과 스트레스 관리가 더 원활히 이루어져, 심리적 안정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칠가이 특유의 여유롭고 느긋한 행동 자체만으로도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쿨하게’ 살아가는 것이 '의연함'으로 이어진다는 교훈이 그 안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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