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묘, 호남 8대 명당 중 한곳 ··· 동지에 제향

효심 감복한 선조, 제향일 동지로 정해 하사

제3회 뿌리문화축제 문중퍼레이드에 참석한 여산송씨 문중인사

여산송씨(礪山宋氏)는 고려때 판도판서(版圖判書:호부상서로 고치기전 정3품 장관)를 지낸 송자영(宋自英:서산군(瑞山君)에 봉해짐)의 큰 아들 송유익(宋惟翊:여산군礪山君)을 시조로 받든다.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때 진사(進士)를 지냈으며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고려때 정3품 문관품계)로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정령을 출납하던 추밀원의 정3품)에 추증(追贈:공이 많은 벼슬아치가 죽은 뒤에 나라에서 그의 관위를 높여 주던 일)됐다.

시조 송유익묘는 익산시 여산면 문주동(구봉산下) 호산에 있다. 호남고속도로 여산 휴게소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산들이 수려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길게 마을을 향해 뻗어내린 산을 볼 수 있다.

그곳에 여산송씨(礪山宋氏)의 시조묘(始祖墓)가 있으며 이곳은 호남 8대명당 중 하나라고 부르는 곳이다. 태조산인 대둔산에서 내려온 용이 주산인 천호산(天壺山)을 만들고 그 중심맥으로 내려온 용에 자리하고 있어 대단한 국세(局勢)라고 한다.

시조묘에서는 매년 동지일에 향사(享祀,제사)하는데 향사일이 동짓날로 정하게 된 것은 1606년(선조36) 후손 이조판서(정2품장관)송언신이 노부모 봉양을 위해 관직을 사임하고 낙향하려하자, 선조가 효심에 감복해 시조의 제향일을 만상(萬象)이 소생하며 새로운 희망과 화창한 기후를 앞에 둔 동지로 정하여 하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산송씨는 시조 송유익 이후의 세계(世系)를 실전(失傳:고적등이 대대로 전해온 사실을 어떤 이유로 알 수없게 됨),그의 후손으로 정당문학(政堂文學;중서문하성의 종2품)을 지낸 송숙문(宋淑文)을 1세조로 받들며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여산송씨는 역사에 이름을 올린 많은 명신(名臣:이름난 신하, 훌륭한 신하) 현유(賢儒)를 배출했는데 고려 충렬왕 때 중찬(中贊:고려시대의 정승으로 1275년(충렬왕 1)첨의부를 설치하면서 기존의 문하시중을 첨의중찬으로 바꾸어 좌.우에 각 1명을 둠, 1308년 정승(政丞)으로 고쳤으며 이때부터 조선시대는 의정부의 삼공을 ‘정승’이라 함)을 지낸 송송례(宋松禮)가 명성을 떨쳤다.

정승을 지낸 송송례(宋松禮)의 아들 송염(宋琰)과 송분(宋玢,?~1318(충숙왕5)형제대(代)에서 송운(宋惲:개성원윤을 지냄) 파조(派租)로 하는 원윤공파(元尹公派), 송방영(宋邦英:밀직부사를 역임)을 파조로 하는 밀직공파(密直公派), 송원미(宋元美:소윤을 지냄)를 파조로 하는 소윤공파(少尹公派), 송린(宋璘:지신사(도승지)를 지냄)을 파조로 하는 지신공파(知申公派), 정가공파(正嘉公派:파조 송서 宋瑞)등 5파로 분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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