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대만 북부여행에서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예류 지질공원, 스펀, 진과스, 지우펀 등 네 곳을 필수코스라고 하는데, 이곳을 묶어서 예스진지라고도 한다(자세히는 2025. 3. 12. 예류 지질공원 참조). 그중 진과스(金瓜石)는 신 베이시(新北市)의 산속에 있는 광산촌인데, 오랫동안 두메산골이던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철도 공사를 하던 중 금광이 발견되면서 개발된 지역이다. 1945년 일본이 물러난 이후에도 대만 정부에서 계속 금을 채굴했으나, 1970년대 들어 금이 고갈되자 폐광촌이 된 것을 1990년대 관광지로 개발했다.
타이베이에서 진과스까지는 직행버스를 타고 가거나 타이베이 중앙역에서 동부 간선 철도인 이란(宜蘭), 화련(花蓮)행 열차를 타고 가다가 루이팡 역(瑞芳站)에서 내린 뒤 역 광장에서 진과스행 1062번, 788번, 825번 시외버스를 타면 갈 수 있다. 그렇지만, 타이베이 MRT 중소야 푸싱 역(忠孝復興站) 2번 출구에서 진과스행 1062번 시외버스를 타면 진과스까지 직접 갈 수 있어서 기차를 타고 가다가 버스로 갈아타는 것보다 편리하다. 진과스에서 버스 종점은 산 중턱에 있다. 비탈진 산 중턱에도 중‧고등학교도 있지만, 택시 투어로 스펀에서 진과스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택시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내렸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가파른 계단을 몇 차례나 쉬었다가 올라갔다. 계단 양쪽에는 광부들이며 살았을 허름한 일본식 집들이 닥지닥지 붙어있었는데, 마치 일본의 어느 산촌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이 비탈진 산기슭에도 수많은 골목이 있고, 많은 집들이 밀집해서 골목마다 안내표찰이 세워져 있다.
가까스로 진과스의 금광 입구에 도착하니, 우체국, 광부 식당, 기념품 판매점들이 좁은 지대의 높고 낮은 곳에 올망졸망 있다. 이렇게 깊은 산속까지 한국인들이 얼마나 많이 찾아오는지 가게마다 한글로 쓴 안내판이 많다. 진과스에서는 금광 개발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황금박물관(黃金博物園區), 일본 황태자를 위한 태자빈관(太子賓館), 박물관 입구에서 광부 도시락을 판매하는 쾅꽁스탕(磺工食堂) 등이 전부다. 이곳의 풍경은 고개 넘어 지우펀과 비슷하지만, 지우펀은 술집과 상가가 흥청거리는 도시 분위기인 것과 달리 완연한 산촌 느낌이다. 우리는 주변을 잠시 살펴보다가 한 광부 식당에 들어가서 진과스의 명물 광부 도시락을 주문했다. 광부 도시락은 광산 깊숙이 들어가서 금을 캐던 광부들이 싸 들고 다니던 도시락을 흉내 낸 것으로서 도시락을 주문하면 광부들이 도시락을 싸서 들고 다니듯이 보자기에 싼 도시락을 갖다준다. 도시락은 평범했는데, 도시락을 먹은 뒤 보자기와 나무젓가락은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게 한 것은 훌륭한 아이디어 같았다.
광부 도시락으로 점심을 마친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왕세자가 방문한다고 해서 지었다고 하는 일본식 목조주택인 태자빈관을 들어갔다. 황금박물관 입구 왼편에 있는 태자빈관 역시 지대가 높아서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했는데, 전형적인 일본식 대문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목조 단층 주택 두 채가 나란히 있고, 그 전면에는 잘 가꾼 정원수와 작은 연못이 있다. 이곳에 일본의 태자가 직접 방문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진과스에서 금광이 한창 활기를 띨 때 영빈관으로 사용했을 것 같다. 건물과 연못의 배치가 전북 군산시의 신흥동의 일본인 히로쓰 가옥(廣津)과 매우 비슷했다. 태자빈관의 내부는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 한바퀴 돌아본 뒤 나왔다.
2004년 신베이시 시립박물관이 된 황금박물관의 입장료는 80대만달러(한화 약 3200원)였는데, 입장료는 아마도 대만 대부분의 관광지에 통일된 요금인 것 같다. 박물관 입구부터 옛 금광 입구까지는 채굴한 광물을 실어 나르던 협궤열차 선로가 그대로 남아있다. 협궤열차 선로 옆에는 광부들이 오갔을 길이 있고, 광부들의 힘든 채굴 모습을 조각한 조각상들이 띄엄띄엄 세워져 있다. 광산 채굴 당시 공기를 순환시키는 초대형 모터가 웬만한 건물보다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데, 전시관 왼편이 광산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관광객들 대부분 광산 입구 오른쪽에 있는 전시관을 찾아가는데, 1층에는 진과스의 역사를 잘 정리해 놓았다. 2층으로 올라가면 세계에서 가장 큰 220㎏의 금괴가 유리 상자 안에 전시되어 있다. 이 금의 가치가 무려 300억 원이나 된다고 한다. 금덩이를 전시하고 있는 유리 박스 양쪽에 구멍을 뚫어서 사람들이 만져볼 수 있게 만들었다.
잠깐 황금 덩이를 만져본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마는 금괴를 만지고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로 너나 할 것 없이 줄을 서서 손바닥으로 금괴를 쓰다듬으면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그런데, 금을 넣어 둔 유리 상자 앞에는 매일 현재의 금 시세로 환산하여 이 금괴의 가치를 알려주는 전자게시판도 있다. 우리 가족도 다른 여행객들처럼 차례대로 줄을 지어 유리 상자 양쪽에서 손을 디밀고, 황금을 만져보며 기념사진을 한 장씩 찍었다.
황금박물관에서 나올 때는 광부 식당과 광산 입구가 아닌 반대쪽 능선의 숲 사이로 난 오솔길로 내려왔다. 아마도 비좁은 산길 계단을 올라오는 관광객과 하산하는 관광객이 뒤엉킬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 같았는데,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갈 때보다 한결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또, 우리가 광부 식당으로 올라갈 적에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산꼭대기까지 집들이 빼꼭하게 붙어있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진과스에서 한창 황금을 캘 때 광부들과 그 가족이 살았을 집들이다. 이런 광산촌에서 하루 벌어 먹고살던 광부들에게 부자가 되고 싶다는 심정에서였는지 마을 한가운데는 관우 상을 모신 도교 사찰이 있다. 중국인들은 역사상 유명한 인물들을 신으로 추앙하고 있는데, 삼국지의 관우를 재물 신인 관성제군으로 모시고 있어서 장사꾼들이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관성제군 관우에 대해서는 2024. 12. 25. 대만 용산사 참조).
그런데, 도교 사찰 아래에는 2차 대전 때 패망한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축하하는 평화 기념공원도 조그맣게 있었다. 마을 공원 같은 평화 기념공원의 조각들을 살펴보면서 일제강점기에 식민 지배를 받았을 그들의 모습이 동병상련으로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