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작가·국제펜한국본부 대전시위원회장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인 TS.엘리엇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말했다. 그의 대표시 ‘황무지’에 나오는 첫 문장 표현이다. 4월이 다가오기만 하면 그의 이 시 구절은 우리에게, 대한민국 땅에 사는 우리에게 회자되는 말 중에 가장 큰 공감대를 주며 자주 인용되고 있다. 그는 희망의 봄 4월을 왜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 동면을 깨고 기지개를 켜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지상의 모든 것들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진통을 겪을 수밖에, 아픔을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이런 시적인 표현은 격동기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적인 현실과 함께 이념의 추이나 대립 등으로 인해 4월이 되면 우리를 향해 아프게 다가오고 있다. 멀리는 독재 정권에 항거하면서 자유, 민주, 정의를 부르짖던 4월 혁명, 민주주의의 초석을 세웠던 4·19혁명을 의식해서이기도 하지만, 만물이 소생하는데 겪는 희망은 늘 그만큼의 아픔을 동반했듯이 4월이 다가오면 여러모로 우리가 겪는 현실이 진통을 겪는 시행착오가 반복되어왔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올해 맞이하는 4월은 그 어느 때보다 잔인한 달이 되고 있다. 정치권의 좌우 진영 대립과 함께 국민들은 반분되어 이 세상을, 이 봄을 혼란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대통령 탄핵사건의 종지부를 찍은 4월 4일의 헌재 결정을 수용하는 과정은 이 희망찬 봄을 봄이 아닌 채로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게 한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이란 현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함께 두고두고 우리 역사의 흔적이 되어 아프게 남을 것이다.

게다가 3월 내내 경상도 곳곳을 비롯해서 지리산 자락까지 번진 대형 산불로 인해 국토는 초토화 되었다. 적잖은 사상자 등 인명 피해에다가 수많은 이재민과 재산의 손실을, 이 4월에 다시 복구하고 수습해야 하는 현실이 비참하기만 하다. 또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등장으로 인해 무역 상호관세 충격을 안게 되었다. 걱정스럽기만 하다. 25%의 관세 폭탄으로 큰 무역 손실을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자유 무역 질서가 사실상 무너졌고, 한미 무역파트너 십도 깨져버려 FTA협정이 13년 만에 백지화 수순을 밟게 될 수도 있다.

어쩌다가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참담하기만 하다. 이런 시태 속에서 다시 60일 이내에 대통령을 선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걱정이고 염려가 된다. 그동안도 정부수립 이후부터 칠십 년을 넘게 그래왔듯이 수준 이하의 정치 집단이, 지도자란 탈을 쓴 이들이 오르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또다시 군림해올까를 생각하면 앞이 깜깜하고 아찔하기까지 하다.

야권에서는 합법적으로 선거에 의해 뽐은 대통령을 취임 전부터 탄핵해야 한다고 소리쳤고, 계엄 사태이후는 박근혜 대통령 시에 ‘배신자’프레임에 이어 이번에도 여권 국회의원 중에 스스로 자당 대통령을 탄핵시키는데 적어도 10여명이 또 한 번의 ‘배신자’가 되어 합세를 했다. 반란표를 던져 마침내 대통령을 내모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는 탄핵 상황 이후 어떤 대통령을 다시 뽑는 다는 것인지, 필자는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물론 초보 대통령이 탄핵의 덫에 걸려 자충수를 둔 탓에 쫓겨나고 말았지만, 다시 정치철학 부재의 입후보자들이 권력을 잡으려고 용을 쓰는 꼴을 또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에 결 싸서 부화뇌동 하는 국민들이 국가의 장래를 오도할 수도 있다.

TS.엘리엇이 말했듯이 역시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열이틀만 지나면 민주화의 횃불을 들었던 4·19 혁명일이 다가온다. 이를 핑계대면서 대통령을 재선거하는 마당에서 또다시 종북주의자나 사법리스크가 큰 이들까지 등장해 활개 치지 않기를 바란다. 국가의 지도자는 바르게 뽑혀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수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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