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시장 대전 글로벌 전략 가속
우호협약에 국제회의 주재까지
과학·문화 융합 외교모델 주목
MOU 넘어 실질적

이장우 대전시장이 최근 스페인 순방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번 방문은 단순한 해외 방문이나 의전적 외교에 그치지 않았다. 이 시장의 스페인 순방의 핵심은 대전을 ‘과학기술 기반 글로벌 도시’로 전환하기 위한 다층적 외교 전략 실행에 있었다. 도시 간 우호협약 갱신, 경제사절단 운영, 국제기구 무대 발언 등 다양한 외교 채널을 활용해 대전의 위상과 실리를 동시에 겨냥한 실질 외교였다.
가장 상징적인 일정은 스페인 그라나다시와의 우호협약 갱신이다. 형식적 협약을 넘어 두 도시가 과학기술, 문화·예술까지 교류의 외연을 확장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중이온가속기 라온과 핵융합 입자가속기 이프미스 도네스를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 기반 관계를 플라멩코-0시축제 문화 교류로 연결한 것은 과학기술이라는 하드웨어에 문화라는 소프트웨어를 접목시킨 사례다. 도시 간 관계는 사람과 감정을 연결할 때 지속된다는 이 시장의 평소 철학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말라가시 방문에서는 과학기술과 산업 교류의 현실적 기반이 구체화됐다. 세계경제과학도시연합(GINI) 총회 회장으로서 이 시장이 직접 말라가를 차기 개최지로 선정하고 말라가시장과 도시 간 혁신포럼 개최를 논의한 것은 국제행사 유치를 매개로 한 도시 브랜드 전략의 일환이다. 여기에 국립한밭대학교와 말라가대학교 간 양해각서 체결,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의 공동연구 협력 논의는 도시 간 교류를 대학과 연구기관으로 확장시키려는 복합 네트워크 전략으로 해석된다. 단순히 기관장이 만나는 수준이 아니라 연구와 산업이 만나는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세비야시와의 회담과 세계지방정부연합(UCLG) 회의 참석은 정치적·외교적 무게감이 실린 일정이었다. 이 시장은 오는 10월부터 UCLG 차기 회장직을 수행하게 되며 회의에서는 지방정부의 다자 협력에서 재정 자율성이라는 실질적 주제를 꺼내들었다. 지방정부가 외교 주체로 나서려면 행정·정책을 뒷받침할 재정의 뿌리를 다져야 한다는 이 시장의 주장은 실제 국제 논의 테이블에서 대전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세비야시장과의 회담도 전략적으로 흥미롭다. 세비야는 유럽의 항공우주·관광 중심지로 대전의 과학기술·방위산업과 상호 보완 가능성이 높다. 회담에서 이 시장은 공동연구·기업 간 협력·대학 간 네트워크 구축을 명확히 제안했다. 이 시장이 강조한 “도시 간 협력은 연구소, 대학, 기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발언은 도시외교를 하나의 지식생태계 전략으로 끌어올리려는 의중으로 읽힌다.

경제사절단의 움직임도 의미가 깊다. 그라나다, 말라가, 세비야 각지에서 상공회의소 및 현지 기업인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대전의 스타트업, 첨단기업들이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한 점은 실질적 외교 성과로 평가된다. 특히 국립한밭대, KAIST, 말라가대 등 학술 협력을 기반으로 한 기술 중심 수출형 협력 모델은 향후 대전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이 시장의 스페인 순방은 ‘대전을 어떻게 세계 속의 도시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보여줬다. 과학기술을 중심축으로 문화·예술을 외교 도구로 삼고 경제 교류를 실질 협력으로 연결하는 삼각 전략이 도시외교의 전면에 드러났다. 지방정부가 국가 외교의 보완제가 아니라 정책과 비전을 갖춘 능동적 외교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 있다.
이제 관심은 순방의 성과가 얼마나 구체적인 프로젝트와 실질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에 모인다. 협약체결에 그치지 않고 공동연구 착수, 기업 간 협력 프로그램, 문화 교류 행사 등 실질적인 실행 단계로의 진입이 필요한 이유다. 특히 유럽 현지 연구기관, 기업과의 연계가 지역 산업과 청년 스타트업에 어떤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시장의 행보가 대전의 글로벌 위상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경제와 시민 체감 성과로 연결될 수 있을지 후속 조치에 이목이 쏠린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