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대선 국면서 공약화 촉구 봇물
헌정회, 민주주의 구조적 한계 넘어야
시민단체, 국민개헌이 대선 ‘시대정신’
“국민발안 개헌 뒤 개헌안 도출해야”

사진 = 대한민국법원
사진 = 대한민국법원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후보를 확정하는 등 6·3 대선이 본격화된 가운데 헌법 개정, 즉 개헌을 촉구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이번 대선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에서 촉발된 만큼 다음 정권에선 이를 보강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고쳐 제7공화국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거다. 방법론적인 측면에선 국민발안에 기반한 개헌 요구가 커지고 있다. 개헌 자체를 국민의 손으로 이룰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주권자에 의한 직접민주주의의 범위를 더욱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개헌에 대해선 모든 정당이 그 당위성에 공감하는 만큼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에 녹아 있는 ‘개헌 요구’를 각 정당과 후보가 받아안음으로써 그 밑거름을 조성하자는데 여론이 모아지고 있다.

◆개헌이 절실한 이유
개헌은 대선을 비롯한 전국 단위 선거가 있을 때마다 시대적 요구로 떠오른 핵심 개혁과제였다. 마지막 개헌이 이뤄진 1987년 이후 정권 차원에서 도출된 개헌안은 단 한 차례(문재인정부)에 불과했고 이 역시 국회에서 불발돼 우리나라 법 체계의 근간인 헌법은 38년째 낡아빠진 헌옷을 입고 있다.

12·3 비상계엄사태는 개헌의 필요성과 당위성, 시급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와 승자독식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이 노출됐고 거대 양당이 소수를 배제하면서 과도한 중앙집권제로 중앙이 지방을 배제하며 대의제와 관료제는 주권자를 배제한다. 모든 권력이 소수 기득권 엘리트집단에 집중돼 있고 이들은 그 철옹성 안에서 서로를 악마화하는 혐오와 분노, 적대와 대결의 상극 정치를 지속하고 있다.

대통령제를 우리 실상에 맞는 권력체계로 바꾸고 거대 양당 중심제를 실질적 다당제로 바꿔 다수와 소수가 상생하게 하는 한편 과도한 중앙집권제를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제로 바꾸고 지역대표형 상원제와 주민자치제를 도입해 중앙과 지방이 상생도록 하는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 권력의 분산과 공유를 통해 ‘배제 민주정 체제’를 ‘상생 민주정 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거다. 또 대표제와 관료제에 직접민주제와 추첨민주제를 접목해 대표와 민초가 상생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 특히 빈부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 심화, 저출생·고령화, 남북 긴장, 기후위기 등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지혜도 새로운 헌법에 담아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시민단체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국민발안권 회복
국민주도상생개헌행동은 28일 개헌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개헌을 대선 공약으로 채택할 것을 각 정당과 대선 후보에게 요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대선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변화를 담아낼 개헌의 적기라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이들은 우선 헌법 조항인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을 담보하기 위해선 과거 유신독재체제에서 사라진 ‘국민발안권’을 되찾아오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에 의한 직접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넓혀야 정치가 국민을 진정한 주권자로 대접하게 된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18일 MBC 100분토론에서 “국민이 정치와 국정에 일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많이 열어두고, 우리 국민이 이 나라의 주권자로서 언제나 위엄을 갖고 정치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며 직접민주주의 강화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12·3 비상계엄사태가 미수에 그친 것도 국민이 주권자로서 정권의 경거망동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기도 하다.

개헌행동이 국민발안 원포인트 개헌을 요구하는 이유는 대통령제 개혁, 지방분권·자치 강화, 기본권 강화, 기후위기·저출생·고령화·양극화 대응 등 다양한 개헌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이러한 개헌안들은 정당과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복잡해 쉽게 합의되기 어렵고 무엇보다 국민발안 개헌이 진정한 국민주권 민주공화국으로 가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임기 초에는 개헌이 국정의 블랙홀이 될까 개헌을 주저하고 임기 후반에는 레임덕으로 개헌 추진 동력이 사라지니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국민발안’ 원포인트 개헌을 한 뒤 개헌을 위한 절차들을 밟아가자는 게 이들의 제안이다.

국민발안권을 회복한 헌법을 기초로 위헌 요소를 안고 있는 국민투표법 개정을 포함해 국회가 개헌절차법을 만들고 국회와 국민이 함께 도출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개헌 로드맵을 이들은 제시하고 있다. 현행 국민투표법은 2014년 헌재가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려 위헌 법률인데 국회는 10년 넘게 법 개정을 하지 않았다. 이번 대선 선거일 확정과 맞물려 대선 투표일에 개헌 국민투표도 함께하자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국회가 국민투표법 개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개헌 투표 자체가 사실상 좌절됐다.

개헌행동 관계자는 “정치권은 주권자의 국민발안 개헌 요구를 무시한 채 대선에만 몰입해 대선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물리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헌정사 80년에 이르기까지 늘 반복되는 이 같은 주권자를 무시하는 작태를 두고 볼 수 없다. 권력자들이 개헌을 밀실에서 야합하고 헌재가 판시했듯 개헌권력자인 국민은 개헌 절차에서 한 번도 주도적으로 참여한 역사가 없다”며 국민발안 개헌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100년 넘게 시행하고 있는 국민발안권 도입이야말로 내란 종식의 완성이요, 12·3 비상계엄이 촉발한 극단주의로부터 국민주권 민주공화국을 수호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임을 대선 후보들과 정치권은 깊이 숙고해야 한다. 국민발안 개헌만이 12·3 비상계엄 이후 엄동설한 속에 저항하고 희생한 국민을 주권자로 대접하는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내년 지방선거엔 반드시
헌정회도 최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헌 대선 공약화를 촉구했다.

헌정회는 성명을 통해 “다가오는 대선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설 결정적 기회가 돼야 한다”며 “2026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해 제7공화국의 문을 열자”고 제안했다.

헌정회는 분권형 권력구조 개편에 개헌의 방점을 찍었다. 이들은 우선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권사정권 시대의 유산으로 규정하면서 과도한 권력 집중은 견제와 균형의 부재를 초래하고 결국 권력 남용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국회 권력도 분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 단원제인 국회를 양원제로 바꿔 권력을 분산함으로써 국회 내 자율조정통제 기능과 지역을 대변하는 보루로서의 기능을 강화해야 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선진국이 시행하고 있는 지역대표형 상원제를 도입할 때가 됐다는 거다.

이들은 또 지방분권형 개헌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이는 국회 지역대표형 상원제 도입과 맞닿아 있는 것인데 중앙권력을 지방정부로 이양해 지방정부가 시민의 실질적인 요구에 부합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정부의 자치입법권과 자치재정권 확대가 골자다.

이와 함께 헌정회는 개헌의 결정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했다. 헌정회는 “헌법은 국민과 국가 간의 사회계약이다. 헌법 개정의 시작도, 내용도, 최종 확정도 모두 주권자인 국민에게 달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이 배제된 현행 개헌 절차로 인해 지난 38년간 단 한 번의 개헌도 이뤄지지 못했다. 이번 개헌안엔 반드시 개헌절차법과 국민발안제가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정회는 정치구조 개혁도 촉구했다. “지금처럼 극단적 대립과 분열이 계속된다면 대한민국에 남는 것은 탄핵당한 대통령과 두 쪽으로 나뉜 광화문광장일 것이다. 국회 비례성 강화와 선거제도 개혁으로 다양한 의견이 공정하게 반영되는 협력의 정치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기대감은 크지만…
개헌을 통해 우리나라 법·제도의 미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국민의 정치적 권리를 강화해야 하는 당위성은 차고 넘치지만 개헌의 키를 쥔 현 정치권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개헌에 적극적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지금의 시대적·정치적 상황을 이유로 개헌을 후순위 과제로 밀어놓고 있고 개헌에 소극적이었던 국민의힘은 반대로 이번 대선 국면에서 개헌에 적극적이지만 정략적인 접근으로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후보는 지난 18일 MBC 100분토론에서 국민발안제를 언급하면서 “우리 국민이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많이 하고 있다. 국민이 정치에, 국정에 일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많이 열어두고, 국민이 이 나라의 주권자로서 언제나 위엄을 갖고 정치권이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지만 실질적 개헌 논의엔 선을 긋고 있다. 해야 한다는데 공감하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일단 대선에서 이겨 정권을 잡으면 정치권과 함께 보조를 맞춰가겠다는 게 이 후보의 입장이다.

이 후보의 이 같은 입장의 기저엔 국민의힘이 다시 대권을 향해 도전장을 던진 현 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여전히 내란 성격의 12·3 계엄사태가 진행 중이라고 보고 있어 이 문제를 종식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국민의힘을 포함한 보수진영에선 이 같은 이 후보의 인식을 파고 들고 있다. 이 후보가 개헌에 소극적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대항마’로 부상하려는 거다. 현재 국민의힘 경선 참여하고 있는 대부분의 후보들이 개헌론을 펼치고 있다. 한동훈 후보의 경우 임기단축 개헌을 통해 대선과 총선 일정을 맞추겠다고 했고 홍준표 후보는 대통령 4년 중임제 및 국회 양원제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지방분권 개헌에 적극적이다.

조만간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역시 권력분산형 개헌으로 대선 이슈를 잡아나갈 것으로 알려졌다. 과도기적 성격으로 개헌을 통해 국가운영의 틀을 잡은 뒤 윤석열 전 대통령 잔여임기만 채우고 정권을 이양하는 로드맵으로 대권 도전기를 쓸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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