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이스탄불 탁심광장

튀르키예 여행

오대양 육대주에서 한 나라의 영토가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에 걸쳐 있는 독특한 나라가 튀르키예(Türkiye)다. 튀르키예는 1차 대전 후 오스만제국이 해체되고 1923년 11월 출범한 터키공화국(Turkey)이 2022년 1월부터 바꾼 국호인데, 튀르키예란 '튀르크인의 땅'을 뜻한다. 튀르키예의 면적은 한반도의 3.7배인 783,562㎢(남한의 약 8배)이고, 인구는 약 8,600만 명이다. 헌법상 정교분리정책을 취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아서 국민의 99%가 모슬렘이다. 터키공화국이 수립되던 1923년부터 앙카라(Ankara)가 수도이지만, 1700년 이상 로마제국·비잔틴제국·오스만제국 등 세계를 지배했던 3대 제국의 수도여서 동서양의 고대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고대도시 이스탄불(Istanbul)에서 튀르키예 여행의 출발점이다.

이스탄불에 있는 과거 정교회 성당이자 현 모스크인 '아야 소피아'
이스탄불에 있는 과거 정교회 성당이자 현 모스크인 '아야 소피아'

오랫동안 세계 대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은 교통망이 발달해서 세계 각지에서 여객기는 물론, 유럽이나 중동에서 버스나 열차로 입국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은 인천국제공항에서 직항기를 타고 12시간 만에 이스탄불에 도착했는데, 서울과의 시차는 7시간이다. 그리고 튀르키예를 일주한 뒤에 서남부에 있는 항구 체스 메(Cesme)에서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 여행을 마친 뒤 귀국하는 직항기를 타러 또다시 육로로 이스탄불로 들어왔다.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직항이 없어서 다른 공항을 경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의 화폐는 튀르키예 리라(TL)인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원화와 환율은 약 40원이다. 각국이 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회수할 때 튀르키예만 저금리를 유지한 탓에 환율과 물가 폭등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고,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상호관세 부과 여파와 국내 정치 불안정까지 겹쳐서 달러나 유로를 갖고 현지에 가서 환전하는 것이 좋다. 참고로 국토가 남한의 8배나 되어서 만일 터키항공으로 튀르키예에 입국한 뒤에 국내선 티켓을 산다면 할인해 준다.

아야 소피아 내부의 그리스도 모자이크
아야 소피아 내부의 그리스도 모자이크

아시아·유럽·아프리카 삼 대륙 사이에 있는 대륙 속의 바다 지중해는 동쪽 튀르키예의 이스켄데룬만 해안에서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서쪽 지브롤터 해협까지 약 4000㎞나 되는데, 지중해에서 가장 큰 시칠리아섬과 아프리카 해안 사이의 해저 360m를 기준으로 동서로 나눈다. 동지중해에는 그리스와 터키가 있는데, 그리스는 발칸반도 남쪽의 크레타섬과 리비아의 바르사를 경계로 이오니아해(Ionia)와 에게해(Aegean)로 나뉜다. 한편, 에게해 북쪽으로 다르다넬스 해협(Dardanelles Strait)을 지나 마르마라해(Marmara)라는 호수 같은 지중해 속의 작은 바다를 지나 발칸반도의 흑해로 통하는 보스포루스 해협(Bosporus Strait)이 모두 튀르키예와 접하는데, 특히 보스포루스 해협의 동서 쪽에 걸쳐 튀르키예의 영토인 이스탄불이 있다. 발칸반도에서 흑해 연안에 있는 러시아를 비롯하여 불가리아. 루마니아·우크라이나·조지아 등 5개국에 보스포루스 해협은 숨통이나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다.

카파도키아 투즈괼 소금호수
카파도키아 투즈괼 소금호수

세계 문명의 발상지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오니아해 건너편 ‘해가 뜨는 동쪽’을 소아시아(Asia Minor)라고 불렀는데, BC 7000년경부터 사람이 살았던 소아시아는 개방 지대였던 탓에 여러 민족이 거쳐 갔다. BC 1900년경 히타이트족은 세계 최초로 철기 무기를 사용하면서 이곳에 강성한 국가를 세우고 번성하다가 BC 1200년경에 무너진 후 이합집산하다가 BC 546년경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가 이곳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아테네와 BC 514년부터 BC 448년까지 전후 세 차례에 걸친 페르시아 전쟁에서 패한 뒤에 아테네의 차지가 되었고, 그 후 BC 331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를 물리치고 이곳을 차지했다. 소아시아 지방은 물론 인도 북부 박트리아까지 점령했던 알렉산더 대왕이 33세의 젊은 나이로 후계자 없이 죽은 뒤, 로마가 소아시아 지방을 차지하면서 BC 1세기경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Vespasianus)는 소아시아 지방을 직접 통치하면서 아나톨리아(Anatolia)라고 불렀다.

카파도키아 상징과도 같은 '요정의 굴뚝'
카파도키아 상징과도 같은 '요정의 굴뚝'

로마제국의 영토가 점점 확장되면서 313년 기독교를 공인했던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24년 로마가 동서로 갈라질 때 아나톨리아 지방의 이스탄불을 동로마제국의 수도로 삼고, 이곳에 소피아 성당(Hagia Sophia)을 짓고, 이스탄불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라고 고쳤다. 콘스탄티노플이란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의미인데, 동로마제국은 BC 667년 그리스인들이 식민도시 비잔티움(Byzantium)을 세운 곳이어서 비잔틴제국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1299년 아나톨리아 북서부의 부족장(Bey) 오스만 가지(Osman Gazi)가 난립했던 아나톨리아 일대를 통일하더니, 1326년 부르사(Brusa)에 오스만 제국의 수도를 삼고 오스만 1세라고 했다.

카파도키아 열기구 투어
카파도키아 열기구 투어

오스만 1세는 1354년에는 발칸반도를 정복했고, 1453년 오스만제국의 메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며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켰다. 이후 오스만제국은 북으로 러시아와 폴란드, 서로는 오스트리아와 모로코, 남으로는 에티오피아, 동으로는 이란과 접하는 등 삼 대륙을 지배하는 강력한 대제국이 되어 1517년부터 이슬람의 통솔자를 의미하는 칼리프(Calif) 국을 겸했다. 16세기에 술레이만 1세 때 절정기를 맞았고, 1차대전 때 패하여 대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700년간 군림했다. 1차 대전 후 프랑스와 그리스 등 외세로부터 독립전쟁을 벌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가 초대 대통령이 되더니, 수도를 앙카라로 옮겼다. 튀르키예는 2차 대전 때 중립을 지켰으나, 종전 후 NATO에 가입했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 의해 기원전 9세기에 건립된 식민도시 '에페소'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 의해 기원전 9세기에 건립된 식민도시 '에페소'

세계는 정치적 이념이 같아서 동맹하고 우방으로 지내는 국가가 많지만, 세계에서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나라가 둘 있다. 하나는 튀르키예이고, 하나는 헝가리(Hungary)다. 흔히 터키가 6·25· 때 한국을 도와준 것에 대한 표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튀르키예는 역사적으로 돌궐족(突厥族)을 포함한 다민족국가였던 대제국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게 망한 뒤 돌궐족이 멀리 서쪽으로 달아나 서돌궐을 세운 것이 오스만튀르크로서 돌궐은 터키의 다른 이름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또, 인류학적으로도 튀르크인들은 우리와 비슷한 몽골리안의 특징인 몽골반점이 있고, 언어학적으로도 우랄 알타이계에 속한다. 한편, 헝가리는 1241년 몽골인들이 판노니아라고 불렀던 도나우강 동쪽에 살고 있던 켈트족을 몰아내고 흉노족(匈奴族)의 후예라 하여 국호를 헝가리로 삼았다고 한다. 구소련의 지배를 받던 헝가리는 구소련 해체 후 1989년 2월 동유럽국가 최초로 한국과 수교했다.

에페소 켈수스 도서관
에페소 켈수스 도서관
하얀 석회암 계단 지형과 온천수로 유명한 '파묵칼레'
하얀 석회암 계단 지형과 온천수로 유명한 '파묵칼레'
한국-튀르키예 우호의 상징 '앙카라 한국공원'
한국-튀르키예 우호의 상징 '앙카라 한국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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