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영아·임산부에 따뜻한 관심을
출산 이후 양육 막막하지만
정부 지원정책 있는지 몰라
사회적 보살핌 못 받고 고립
초록우산, 연중캠페인 전개
제도권 밖 엄마들 적극 지원
인식 개선·권익실현에 앞장

▲ 사진=챗GPT 제작

한국 사회는 매년 빠지는 출산율과 인구 감소를 걱정한다. 하지만 그 숫자 속 생명들이 어떤 조건에서 태어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누가 울고 있었는지, 누가 혼자였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지난해 여름 대전에서 두 아이가 태어났다. 두 엄마는 모두 혼자였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유학생 알리야(가명) 씨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남자친구가 떠난 뒤 혼자가 됐다. 엄마가 집을 팔아 돕겠다고 했지만 감당할 수 없어 혼자 출산했다. 대전시가족센터와 초록우산의 도움으로 겨우 의료비와 육아용품을 마련했지만 출산은 끝이 아니었다. 프리랜서 일을 병행하며 아이를 돌보는 삶은 고립 그 자체였다. 성나리(가명·31) 씨는 국내 미혼모다. 임신 사실을 5개월이 지나서 알았고 남자친구와는 이미 헤어진 상태였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했다. 출산 직전까지 입양을 결심하고 단유약을 먹었지만, 아이를 안고 생각이 바뀌었다. “엄마만큼 아이를 사랑해 줄 사람이 있을까.” 그는 양육을 결심했고, 지금은 대전자모원에 머물며 육아를 배우고 있다. 혼자 낳는다는 것은 단지 신체적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고립이고 단절이며 종종 절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 있었지만 닿지 않았던 제도
알리야 씨는 말했다. “제도가 없었던 게 아니에요. 근데 저한테 닿지 않았어요. 알려주는 사람도, 물어볼 사람도 없었어요.” 성나리 씨도 인터넷 검색으로 자모원을 처음 알게 됐다. 산부인과 의사가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출산장려금, 육아바우처, 미혼모 시설, 양육지원금 등 국가는 많은 제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위기 여성에게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법적 자격은 있었지만, 접촉면이 없었다.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고 스스로 구조 요청도 하지 못했다. 고립은 정보의 단절로 이어졌고, 그렇게 출산은 이뤄졌다. 제도가 있어도 도달하지 못하면 그것은 개인의 무지가 아니라 공공의 책임이다.

◆ 보호에 충분하지 않았던 제도
지난해 대전시는 ‘위기 임산부와 위기 영아의 보호 및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그러나 법이 곧 현실의 보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돌봄 인프라, 경제 지원, 주거 대책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조례는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모든 아동은 차별 없이 존엄하게 태어나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지금 위기 영아는 가정의 조건에 따라 생존권조차 위협받는다. 물론 진전은 있었다. 지난해 시행된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는 큰 걸음이지만, 출산의 책임을 다시 개인에게 환원시켰다는 점에서 비판도 나온다.

특히 보호출산은 친모의 신원 보호를 전제로 한다. 이는 친가족과의 단절을 전제로 해 아동의 원가정 보호권을 침해할 수 있다. 초록우산 대전지역본부는 ‘영아의 권리관점으로 본 대전광역시 임신·출산·육아 정책에 관한 연구’에서 외국인 부모가 양육하는 영아의 권리 침해가 가장 심각하다고 지적하며, 생후 1세 미만 영아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제도가 실제로 아이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설계되고 작동하느냐다. 국가는 책임의 주체라기보다 관리의 중간자로 머무르고 있으며, 구조할 책임도, 양육 기반도 여전히 개인에게만 남아 있다.

◆ 우리가 외면한 가장 취약한 시간
2013년부터 2021년까지 9년간 발생한 영아살해 사건의 77%는 20대 이하 여성이었다. 절반 이상은 출산 직후 24시간 이내에 일어났다. 출산은 누군가에겐 시작이지만 누군가에겐 끝이었다. 산부인과도 찾지 못하고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한 임신,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아이들. 지금도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아이’로 분류된다. 출산을 ‘권리’라고 말하지만, 그 권리를 행사하는 순간 법 밖, 공동체 밖으로 밀려나는 이들이 있다. 초록우산의 연구는 생후 1세 미만의 영아가 유해하거나 위험한 환경에 그대로 노출돼 있으며, 이들을 보호할 현실적인 장치가 부족하다고 경고한다.

◆ “혼자 있지 마요”
알리야 씨는 말했다. “혼자 있지 마요. 프로그램이 있으면 꼭 참여하고, 누가 얘기 들어주면 그냥 말해요. 말하면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요. 진짜로.” 성나리 씨도 같은 생각이다. “제도가 있다지만 몰랐어요. 누군가 알려줬다면 덜 힘들었을 거예요. 아이를 낳고 나면 생각이 정말 달라져요.”

이제 그들은 말하고 싶다. 아무도 말 걸지 않았던 그 시간과 고통의 공간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 말 하나로 살아남을 수 있다. 그 울음을 우리는 들을 준비가 돼 있는가.

금강일보는 초록우산 대전지역본부와 함께 ‘처음을 함께, 희망을 함께’라는 이름으로 연중 캠페인을 시작한다. 아이는 태어났고, 엄마는 여전히 혼자 있다. 이제 그들 앞에 우리가 함께 서야 할 시간이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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