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해석따라 보수·진보 나뉘고
정의와 화해 실현 계기될 수 있어
정권 지향 가치 드러내는 역사관
대선 가까워지면서 다시 중심에

사진=챗GPT 제작
사진=챗GPT 제작

제21대 대통령선거는 단순한 정권의 교체가 아니다. 어떤 기억을 계승하고 어떤 과거를 새롭게 정의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순간이다. 각 후보의 역사관은 시각 차이에 그치지 않고 국정 운영의 방향과 사회 통합 방식, 그리고 국가가 기억해야 할 공동의 서사를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지표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주요 후보들이 어떤 역사 인식을 갖고 있고 그 시선이 대통령이 됐을 때 어떤 현실로 이어질지를 전망해본다.

◆윤석열 정부 3년…역사 갈등의 정치화
윤석열정부가 출범 3년여 만에 막을 내렸다. 우리는 그동안 역사관이 과거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한 정권의 철학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핵심임을 실감해왔다.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이 공공기관에 대거 기용됐고 이들의 시각이 반영된 검정 역사교과서 채택 논란, 일본군 위안부·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후퇴한 입장,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시도 등이 이어지며 논란은 확산됐다. 역사 해석의 충돌은 교육·외교·기념사업 전반으로 퍼졌고 윤석열정부가 어떤 기억을 선택하고 어떤 서사를 지우려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줬다. 이제 역사는 더 이상 전문가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에 따라 국가가 어떤 과거를 보존하고, 어떤 사건을 외면할지가 달라진다. 과거는 그저 사실의 나열이 아니다. 선택과 배제의 결과로 구성된 기억의 구조다. 역사관을 검증한다는 건 미래를 어떤 방식으로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어떤 관점을 선택하느냐는 한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와 기억의 균형을 어디에 둘지를 드러내는 나침반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 해석이 나누는 진영의 경계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역사를 둘러싼 인식의 균열을 안고 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 ‘경제 성장의 주역’으로 평가하면 보수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나 제주 4·3, 여수·순천 10·19 사건과 같은 국가폭력의 역사에 주목하면 진보로 분류되는 구도는 지금까지 정치 담론의 뿌리로 남아 있다. 어떤 과거를 강조하느냐는 곧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의 표현이기도 한데 우리 사회는 국민 사이의 해석 격차를 심화시켜 왔다.

그래서 대통령 후보의 역사 인식은 과거 해석에 그치지 않고 그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신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념사업의 주제와 형식이 바뀌고 교과서 서술 방향이 달라진다. 외교적 발언의 수위와 어조가 조정되기도 한다. 결국 이 모든 건 이념보다 깊은 기억의 정치에서 비롯된다. 역사는 박물관이나 교과서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의 조문 속에, 외교 문서의 문장 속에, 국립묘지의 배치와 대통령의 연설 속에 살아 숨쉰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역사는 피해와 책임, 정의와 화해 같은 민감한 키워드와 얽혀 있는 탓에 이를 어떤 언어와 시선으로 재구성하느냐는 국가의 철학을 결정짓는 일과 같다. 기념해야 할 것과 반성해야 할 것을 어떻게 구분하느냐는 어떤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떤 가치에 응답할 것인지에 대한 선언이기도 하다. 이번 대선에서 각 후보의 역사 인식이 국가 정체성과 공동체 기억을 어떤 균형 위에 세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이유다.

◆역사관, 그 시선이 만드는 공동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대한민국이 출발부터 제대로 과거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왜곡된 권력 구조가 이어졌다고 본다. 친일세력과 군부독재가 정리되지 않았고 시민이 스스로 민주주의를 쟁취해온 역사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그는 촛불혁명과 5·18 정신을 헌법에 명시하고 민주주의를 쌓아온 과정을 국가의 핵심 이야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합보다는 과거의 왜곡된 서사를 바로잡는 것이 우선이며 이를 통해 미래를 설계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한 이승만·박정희 시대를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으로 본다. 그가 집권하면 건국절 제정, 자유시장경제 교육 확대 등을 공약하며 보수 세력의 정체성과 기여를 재정립하려 할 공산이 크다. 5·18 민주화운동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되 이를 체제 비판이나 급진적 운동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데는 선을 긋는 김문수 후보는 윤석열 정부보다 더 선명한 보수적 역사관을 국정 전반에 정책화할 가능성이 높다. 그의 시선이 산업화와 국가 안보의 연속성 위에 서 있어서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5·18, 4·3, 여순사건처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역사적 상처를 기억해야 한다는 입장과 산업화의 성과도 함께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와 진보의 역사 서사를 균형 있게 담아내는 공존의 관점을 취하는 그는 헌법과 교과서에도 이중 시각을 반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좌우 진영의 대표적 사건들을 하나의 국가 서사로 엮어내는 시도를 할 여지도 있다. 이념의 틀을 넘은 기억의 조율이 그의 정치적 지향점이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국가가 오랜 시간 시민들에게 폭력을 가했던 존재였다고 본다. 5·18, 4·3, 세월호, 쌍용차 해고 등에서 드러난 국가폭력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 중심의 서사를 복원하는 것이 그가 가진 역사관의 핵심이다. 권영국 후보가 당선되면 기억의 민주화를 앞세워 지금까지 배제돼 온 목소리들을 공적 역사로 되살리려는 행동을 실행에 옮기려 할 수 있다. 과거사 재조사, 진상 규명, 공식 사과 등 과거 바로잡기 정책을 주요 국정 의제로 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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