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성 전 둔산여고 교장
지금으로부터 약 오십 년 전인 1970년대에는 우리가 사는 동네 사람들 대부분을 서로 알고 지냈다. 각 가정에 사정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살았으며 어려운 사정을 서로 이해하고 돕고 살았다. 먹을 양식이 부족하면 서로 빌려주고 받으며 정답게 살아갔었다. 그때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대부분 윗사람으로 대우를 해드렸고 또 그분들은 동생처럼 우리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던 시절이었다. 동네 어른들 모두를 우리 부모님과 같이 예우하는 분위기였다. 집에서 새로운 음식을 하면 서로 나누어 먹기도 했다. 여름이면 동네 어귀에 너른 마당에 멍석을 깔고 모깃불 피워놓고 노변정담을 하다 밤이 이슥하면 각자 집으로 자러 가곤 했었다. 그리고 동네마다 그 동네만의 지켜지는 고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서로 만나면 자기가 사는 동네의 전통을 은근히 자랑도 했다. 이 시대에는 ‘우리’가 있었다. 2025년인 지금의 모습은 어떤가? 대부분 아파트에 살면서 옆집 그리고 아래층, 위층 사는 사람들과 마주치면 대부분 눈인사하는 정도로 끝난다. 서로에게 관심 갖는 것을 모두가 꺼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스스로 외톨이가 되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단절된 사회로 가는 모습 같아 씁쓸하다. 나는 옛사람의 정서를 아직도 갖고 있어서인지 친한 사람들과 자주 만나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봄이 되면 모든 생물은 잠에서 깨어나듯 체내 순환이 빨라지며 새로운 활력을 얻기 시작한다. 특히 나무는 새싹을 틔운다. 그중에서 두릅나무, 엄나무, 참죽나무, 오갈피나무, 옻나무, 화살나무 등의 순을 우리는 식용으로 하고 몸에도 좋은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 사람이 이런 나무순을 좋아한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겠지만 나는 향으로는 참죽나무 순, 맛으로는 옻 순을 가장 좋아한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봄이 되면 마음씨 좋은 처남이 충청남도 유구 산골짜기에서 나는 좋은 옻 순을 한 상자씩 보내준다. 처음에는 양이 너무 많아 주변에 옻 순을 먹을 줄 아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사람들과 어울리는 매개체로 옻 순을 이용할 생각을 했다. 먼저 옻닭, 옻오리 요리를 하는 식당을 시내에서 찾지 않고 시내 주변 외곽에 너른 터에서 하는 집을 찾았다. 마침 안성맞춤인 집이 있어서 옻 순이 오면 그 식당에 부탁해서 준비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동창, 직장에서 근무할 때, 친하게 지낸 사람들, 부부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 동아리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로 부류를 나누어 서너 번에 걸쳐서 옻 순 잔치를 한다. 해마다 하면서 즐거움도 배가되고 있다.
처음에는 초대받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들을 했다. 마침 좋은 옻 순이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얘기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아무 조건 없이 이런 모임을 자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은 내 순수한 마음을 이해하면서 아주 즐거워했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가 만나서 정을 나누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모두가 외롭게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 정호승 님은 ‘수선화에게’라는 시에서 처음 시작을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라고 시작을 해서 마지막 부분에서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라고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집에서 말하고 있다.
많은 현인과 시인은 인간이 태생적으로 외롭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문명의 발달로 이루어진 기기들은 대부분 현대인을 개별화시키고 고립화시키면서 외로움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사회의 많은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특별한 이해 관계없이 만나서 서로의 훈훈한 정을 나누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럴 때 인간의 정이 흐르고 그리움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서로를 만나고 싶어 하게 된다. 내가 옻 순 잔치를 하는 것은, 서로 덕담을 나누면서 ‘우리’를 찾는 계기가 되고 싶어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