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위기 임산부·영아 비극
산모는 출산 이후 양육부담 막막
미등록 아이는 제도 밖으로 밀려
지자체 차원 지원 대상서 배제돼
실효성 있는 조례 재정비 급선무

#1. 우즈베키스탄 출신 유학생 알리야(가명)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뒤 남자친구가 떠났고 결국 혼자 출산했다. 의료비와 육아용품은 대전시가족센터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도움으로 간신히 마련했지만 이후 삶은 철저한 고립이었다. “제도가 없었던 게 아니에요. 근데 저한테 닿지 않았어요.”
#2. 국내 미혼모 성나리(가명·31)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입양을 결심하고 단유약까지 복용했지만 아이를 안고 생각이 바뀌었다. “엄마만큼 아이를 사랑해 줄 사람이 있을까.” 그는 현재 대전자모원에서 아이와 함께 지낸다.
금강일보와 초록우산 대전지역본부는 올해부터 위기영아 지원 캠페인을 공동으로 시작했다. 출산과 동시에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 임신 사실조차 알리지 못한 여성들, 기록되지 않은 생명과 구조되지 않은 울음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캠페인은 위기 영아와 위기 임산부의 실태를 다시 들여다보고 제도가 닿지 못했던 자리에 어떤 공백이 있었는지를 짚으려는 시도다.
알리야와 성나리 씨의 사례는 결코 예외가 아니다. 초록우산이 발표한 ‘위기 영아와 위기 임산부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산전관리 부족, 응급출산, 정보 단절, 심리적 고립, 생계난 등으로 인해 위기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외국인, 느린 학습자, 미등록자, 청소년, 다자녀 가정 등은 제도의 문턱에조차 닿지 못하고 있고 이들의 출산은 기록되지 않은 생명으로 사라질 위험이 크다.
출산 이후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분유와 기저귀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육아는 곧 생존의 과제가 된다. 방임, 고립, 정신적 소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구조는 대전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시는 지난해 위기 임산부·영아 보호조례를 제정했지만 효과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초록우산 대전지역본부가 펴낸 ‘영아 권리관점 정책분석’ 보고서는 외국인 부모가 양육하는 영아의 권리 침해가 특히 심각하고 생후 1세 미만 아이들이 가장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이 말하는 차별 없이 존엄하게 태어날 권리는 지역 사회 안에서 아직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시는 또 저출산 대응을 위해 대전형 양육수당과 자치구별 출산장려금 등 자체 현금지원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출생신고가 완료되고 주민등록상 가족 구성으로 명확히 확인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정부가 시행 중인 부모급여, 한부모가족 양육비, 청소년 부모 지원금 등도 마찬가지다. 위기 상황에 놓인 여성이나 보호체계 밖의 영아는 애초에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다. 기록된 가정을 전제로 한 현행 복지 시스템은 정작 가장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외면하는 구조를 안고 있는 것이다.
최근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시행으로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병원 출산이 가능해졌지만 가족 단절을 전제로 한 친모 신원 보호는 아동의 원가정 보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제도가 존재하는 것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제로 누구에게 어떻게 도달하느냐인데 이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아이들은 오늘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발생한 영아살해 사건 가운데 77%는 20대 이하 여성이 가해자였고 절반 이상이 출산 직후 24시간 이내에 일어났다. 그 시간 그 장소에 병원도, 가족도, 행정도, 공동체도 없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2019년 대전에서는 미혼모가 출산한 지 한 달 만에 아이를 유기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재판부는 “출산이 임박할 때까지 피고인이 임신 사실을 몰랐고 불안을 홀로 감당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위기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제도는 있었지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고 누구도 구조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렇다.
위기는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다. 느린학습자, 외국인, 미등록자, 경계선 지능 부모, 노숙인 등 다양한 상황에 놓인 이들의 임신과 출산은 제도의 그물망 바깥에 있다. 일부는 출생신고도 하지 못하고 돌봄 지원에서도 배제된다. 이들에게 출산은 위험 그 자체다.
출산 이후의 기반도 여전히 취약하다. 전국 위기임산부 전용 주거시설은 250호에 불과하고 산후조리 서비스는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면 부모급여가 중단되는 제도는 자립의 기회마저 막는다. 행정복지센터는 대부분의 위기 여성이 처음으로 접촉하는 공공 창구지만 정보 제공과 민간 연계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