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민 대전우리병원 척추센터 신경외과전문의 진료원장
연일 계속되는 고온다습한 날씨에 몸이 무겁고 지친다는 사람들이 많다. 기운이 처지고 근육이 뻐근해지며, 특히 허리나 무릎 같은 관절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는 중장년층 환자들이 병원을 많이 찾는다. 이런 현상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실제 통계로도 확인되는 경향인데, 같은 시기에 병원 진료를 받는 허리 환자 수가 일정하게 늘어나는 패턴을 보이기도 한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데이비드 슐츠 교수 연구팀은 만성 통증을 앓고 있는 환자 1만 3천여 명을 대상으로 기상 조건과 통증의 관계를 연구한 바 있다. 그 결과, 통증이 심해졌다고 보고한 날은 평소보다 기압이 낮고 습도와 강수량은 높은 날이 많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 역시 계절과 날씨가 건강에 영향을 준다고 했던 것처럼, 많은 환자들이 실제로 날씨에 따라 자신의 증상이 달라진다고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호주 시드니의 다니엘 스테펜스 박사 연구팀은 2014년과 2016년에 두 차례에 걸쳐 기온, 기압, 습도, 강수량 등의 변화와 급성 요통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이 없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흥미롭게도 이 연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연구 이후 일반인과 의료계 모두에서 반발이 있었다.
재연구에서도 통증과 날씨 변화 사이의 유의미한 인과관계는 크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유일하게 ‘기온 상승’이 허리 통증과 약간의 관련이 있다는 점은 언급되었다. 연구진은 이 결과가 큰 의미는 없다고 했지만, 무더위가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여름철 허리 건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름철에는 허리 통증을 악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장마철의 낮은 기압은 허리를 지탱하는 후관절 주변에 압력을 가해 통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허리 마디마디를 연결하는 구조물들이 이러한 기압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또한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면서 등산, 수영, 여행 등 평소 사용하지 않던 허리 근육을 갑자기 사용하는 일이 많아지는데, 준비운동 없이 무리한 활동을 하거나, 정리운동 없이 활동을 마무리할 경우 허리 염좌 같은 손상이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 여기에 여름철 간혹 찾아오는 태풍과 강풍도 문제다. 강한 바람 속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허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통증이 심해질 수 있고, 실제로 강풍이 부는 날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열대야 역시 허리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더위로 인한 불면증이 통증을 더 예민하게 만들고, 수면 부족 자체가 허리 통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 반대로 허리 통증으로 인해 밤에 자주 깨는 경우도 많아 수면 장애와 통증이 서로 악순환을 일으키게 된다. 결국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좋은 수면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한 여름을 보내기 위해서는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평소부터 신경 써야 한다. 날씨 변화로 인해 허리 주변 관절이 굳어질 수 있으므로 부드럽게 뒤로 젖히는 신전 운동과 앞으로 숙이는 굴곡 운동을 반복해 관절의 유연성을 유지해야 한다.
평소 하지 않던 레저 활동을 할 때는 활동 전 준비 운동으로 허리 근육을 충분히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활동 후에는 근육 이완 운동과 마사지 등을 통해 긴장된 근육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야 통증을 예방할 수 있다. 강풍이 부는 날에는 가능하면 외출을 삼가고, 부득이하게 외출해야 하는 경우 허리 통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시적으로 허리보조대를 착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면이다. 자기 전 스마트폰 사용이나 커피 등 자극적인 요소를 피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만드는 수면 위생을 실천해야 한다. 허리 통증 때문에 잠을 자주 깨는 경우라면 빠른 시일 내에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무더위 속에서도 허리를 지키기 위한 생활 속 실천이야말로 여름철 건강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대비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