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체 전 관월당. 국가유산청 제공

조선시대 왕실 사당 건축물로 추정되는 ‘관월당(観月堂)’이 일본으로 반출된 지 100여년 만에 국내로 돌아왔다. 해외에 있는 한국 건물 전체가 돌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일본 도쿄 오쿠라 호텔 내 정원 산책로에서 찾은 경복궁 자선당(資善堂)의 유구 110톤이 1995년 국내로 반환된 바 있지만 대부분은 기단과 주춧돌 등 석재였다.

일본 고덕원, 건축 부재 국내 기증 성사
한일 국교정상화 60년 상징적 성과 기대
국가유산청, 연구조사 뒤 활용방안 모색
고덕원, 별도 기금 마련해 후속연구 지원

◆민관 협업의 성과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지난 23일 관월당 소장자인 일본 고덕원(高德院, 주지 사토 다카오)과 약정을 체결, 고덕원이 한국에 이송한 관월당 부재를 정식으로 양도받았다.

‘관월당’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조선 후기 왕실 사당 양식을 지닌 목조 건축물로 맞배지붕 단층 구조를 갖추고 있다. 왕실 관련 건물이라는 점에서 서울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높다. 1924년 조선식산은행이 야마이치증권 초대 사장인 스기노 기세이(1870~1939)에게 증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관월당은 이후 일본 도쿄로 옮겨졌고 1930년대엔 스기노 기세이가 가마쿠라시의 고덕원이라는 사찰에 기증하면서 고덕원 경내로 이전돼 해체 전까지 관음보살상을 봉안한 기도처로 활용돼 왔다.

(왼쪽부터) 사토 다카오 일본 고덕원 주지와 최응천 국가유산청장,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이 지난 23일 한국 문화유산 기증과 보존 활용에 관한 약정을 체결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왼쪽부터) 사토 다카오 일본 고덕원 주지와 최응천 국가유산청장,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이 지난 23일 한국 문화유산 기증과 보존 활용에 관한 약정을 체결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이번 관월당 국내 귀환은 소장자인 사토 다카오 고덕원 주지가 관월당이 유래한 한국에서의 보존이 적절하다고 판단함에 따라 이루어졌다. 사토 다카오 주지는 사찰 경내에 소재한 한국 문화유산에 큰 관심을 두고 한국 측에 연락을 전해왔으며 이후 국가유산청과 국외재단은 관월당 보존을 위해 다년간 신뢰를 축적하면서 연구·조사, 단청 기록화 및 보존처리, 정밀실측 등의 사업을 진행했다. 각 사업은 한국 전통 건축에 대한 이해가 깊은 한국 전문가가 현장에서 직접 참여하는 등 한일 공동 협업 프로젝트의 형태로 이뤄졌다. 고덕원 측은 건물 해체와 부재 운송 등 일본 내에서의 제반 비용을 자비로 부담하는 등 협업 프로젝트 전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국가유산청은 설명했다.

사토 다카오 주지는 “한국과의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보다 분명히 규명했고 국가유산청의 요청을 받아 앞으로 최적의 보존을 위해서는 관월당을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는 점에 깊이 공감해 기증을 선뜻 결정하게 됐다”며 “지난 100년간 고덕원에서의 관월당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도 기억하면서 앞으로 한국 내 적절한 장소에서 그 본래의 가치를 온전히 회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덕원은 관월당 보존은 물론 한일 양국 간 문화유산에 대한 학술교류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별도 기금을 마련해 국외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관월당의 귀환은 소장자의 진정성 있는 기증과 한일 양국 전문가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는 문화유산을 매개로 상호 존중과 공감의 가치를 실현한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될 것”이라며 “광복 80주년과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은 해에 이뤄진 이번 귀환이 양국 간 문화적 연대와 미래지향적 협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관월당 3D 스캔 이미지. 국가유산청 제공
관월당 3D 스캔 이미지. 국가유산청 제공

◆연구 뒤 보존·활용 방안 마련

그간 국내에서 이뤄진 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건축학적으로 관월당은 대군(大君)급 왕실 사당 규모에 해당하며 파련대공(최상부 구조재인 종도리를 받치는 대공에 덩굴나무가 연속되는 문양을 조각한 부재), 안초공(공포 부재의 일종으로 평방·주두·도리를 감싸 일체화한 부재), 초엽(규모가 큰 건물의 지붕 측면에 설치한 까치발), 초각(지붕 하부에 설치한 부재에 새긴 당초문(덩굴무늬) 조각장식) 등 궁궐 및 궁가 건축에서 나타나는 의장 요소를 지니고 있다. 기와의 경우 용문(龍文), 거미문(蜘蛛文), 귀면문(鬼面文), 박쥐문(蝙蝠文) 등 다양한 형태의 암막새가 사용됐는데 특히 용문의 경우 궁궐 또는 왕실과 관련된 건축적 요소를 보여준다.

단청에는 여러 층위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사용된 문양과 안료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 사이 다시 채색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각 층위의 단청들 모두 구름 모양의 운보문(雲寶紋)이나 ‘卍’자와 같은 형상의 만자문(卍字文) 등 다채로운 무늬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어 건물의 높은 위계를 보여주며 문양과 색채에서도 궁궐 단청의 특징이 확인된다. 다만, 2024년 해체 시 상량문 등 당시 건립 관련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아직 건물의 원래 명칭과 조선에서의 위치, 배향인물 등에 관한 내용은 향후 지속적으로 연구해 나갈 과제로 남아있다.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에 보관 중인 관월당 부재. 국가유산청 제공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에 보관 중인 관월당 부재. 국가유산청 제공

일본 현지에서의 정밀실측 및 해체 과정에서 관월당은 일본으로 이건된 뒤 양식과 구조 측면에서 일부 변형된 것으로 밝혀졌다. 기단의 경우 일본 가나가와현과 도쿄 북부에 있는 도치기현에서 채석되는 안산암과 응회암이 사용됐고 기단 내부는 뒤채움 없이 비어있는 상태였다.도쿄와 가마쿠라로 이건되는 과정에서 새롭게 조성된 것으로 국가유산청은 추정했다. 또 이건 과정에서 건물 뒷면 벽체 외부면에는 잔자갈과 몰탈 등을 섞은 혼합물로 화방벽이 세워졌고 지붕에는 적심(지붕 내부에 채우는 잡목)이나 보토(지붕곡을 고르게 하고 단열효과를 얻기 위해 적심 위에 까는 흙)를 사용하지 않은 덧지붕이 올려졌다. 이 외에도 정면에 설치한 난간, 일본 목재상의 정보가 적힌 판벽 재료 등 변형된 흔적이 일부 발견됐다.

관월당 부재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재단은 향후 관월당의 원래 명칭, 원 위치, 배향 인물 등을 밝히기 위한 학술 연구를 지속하고 국민 누구나 그 가치를 공유할 수 있도록 보존·활용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현재 우리나라로 이송된 부재는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장고(경기 파주)에 보관돼 있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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