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 입구

지금의 튀르키예 땅인 아나톨리아 반도에는 BC 8000년경부터 수많은 나라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앙카라(Ankara)는 일찍부터 대상(隊商)과 실크로드의 길목에 있는 상업 도시로 발달했는데,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가 앙카라 일대의 옛 지명인 아나톨리아의 유물을 수집 전시하는 박물관을 세우도록 하여 1921년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을 개관했다. 박물관은 기원전 1750년경부터 500여 년간 세계 최초로 철제 무기로 강력한 국가를 유지했던 히타이트(Hittite)의 유물을 가장 많이 전시하고 있어서 ‘히타이트 박물관’이라고도 한다. 구석기 시대인 기원전 8000년경부터 오스만 제국 시대까지 세계적으로 귀중한 유물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은 1997년 스위스에서 ‘유럽 최고의 박물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야외 전시물
야외 전시물

앙카라의 구도심인 울루스(Ulus)에 있는 박물관은 앙카라 성(Ankara Kalesi)의 남쪽에 있어서 앙카라 성과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다. 앙카라에 도읍을 삼았던 수많은 왕조가 요새로 삼았던 앙카라의 상징과 같은 앙카라 성은 입장료가 없다. 가파른 해발 110m의 언덕에 세워진 성은 이중으로 쌓은 성벽에 올라가면 사방으로 앙카라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해준다.

차탈회위크 유구
차탈회위크 유구

박물관의 입장료는 340터키 리라(한화 약 1만 3600원)이며, 한국어 오디오도 제공한다. 박물관은 1층에 전시실이 28개, 2층에 30개가 사각형인 복도를 따라 시계와 반대 방향으로 관람하도록 꾸며졌다. 로비에 소머리로 장식된 유적 터는 기원전 6500년~6000년경 인류 최초의 농촌 집단 촌락으로 알려진 ‘차탈회위크(Çatalhöyük)의 신전’을 재현한 것인데, 차탈회위크는 셀주크 제국의 수도였던 콘야(Konya)에서 동남쪽으로 50㎞ 떨어진 지역이다. 또, 이곳에서 발견된 기원전 5700년경 테라코타 지모신상(地母神像)은 이집트의 이시스(Isis) 여신, 그리스의 아르테미스(Artemis) 여신, 로마 다이애나(Diana) 여신의 원형이 됐다.

차탈회위크의 앉아있는 여인상
차탈회위크의 앉아있는 여인상

그런데, 1958년 이 유적을 처음 발견했을 때는 튀르키예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의 유적으로 알려졌으나, 1963년 히브리인과 이슬람의 공통 조상으로 알려진 아브라함의 탄생지이자 구약성서의 욥(Job)과 엘리야(Elijah) 등의 선지자가 살았다고 하는 샨르우르파(ṢanliUrfa)에서 더 오래된 기원전 9675년경의 석기 시대 유적이 발견되어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또,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는 ‘배불뚝이 언덕’이라는 지명인데, 이곳에서 발견된 ‘T자형 돌기둥’도 기원전 9675년경에 만들었다고 하여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또, 2019년 이곳에서 약 38㎞ 떨어진 카라한 테페(Karahan Tepe)에서 T자형 기둥이 250개나 발견되고, 또 괴베클리 테페보다 거대한 신전과 T자형 기둥 신전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이 일대에 거대한 집단이 존재했었음을 알게 됐다. 신전 주변에서 곡식을 빻는 맷돌과 탄화된 곡물이 대량 발굴되고, 주거지 흔적도 확인됐다. 만일 이것이 공인된다면 기원전 27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보다도 훨씬 앞선 가장 오래된 유물이 될 것이다.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여신상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여신상

기원전 2100년경 지금의 시리아 지방에서 일어나 대상(隊商) 무역을 하며, 아나톨리아 지방은 물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까지 지배했던 아시리아의 전시실에는 처음으로 문자를 쓰기 시작한 2만 점 이상의 점토판 상형문자가 있다. 그 내용은 대부분 무역, 경제, 법률 등이다. 아나톨리아 지방에서는 기원전 3000년대부터 청동기를 사용했는데, 청동 주전자와 찻잔 및 장식품 등이 상당히 정교하다. 기원전 1750년경 히타이트는 세계 최초로 철제 무기와 말이 끄는 전차로 아나톨리아에 첫 통일국가를 세우고, 지금의 시리아 북쪽 카데시(Kadesh)에서 이집트의 람세스 2세와 전쟁에서 승리하여 이집트를 100년간 지배하는 등 아나톨리아 지방에서 가장 오랜 기간인 400여 년 동안 강성했다. 하지만, 기원전 1200년경 유럽에서 건너온 철제 무기를 사용하는 그리스 계통인 프리기아(Phrygia)에 멸망했다. 전시실의 스핑크스 등 석조물은 도읍이던 앙카라 동쪽 하투샤(Hattusha)에 있던 것인데,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아 적을 거꾸러트리는 석조물, 병사와 악사들의 모습에서 당시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다. 양각한 황소 그림 용기, 각종 과일 그릇, 사슴 청동상 등이 있는데, 특히 ‘스탄다르(standardi)’라고 하는 사슴 모양 조형물은 히타이트 시대 걸작이라고 한다.

T자형 돌기둥
T자형 돌기둥

프리기아는 그리스인인 고르디우스 왕이 앙카라 부근의 고르디온(Gordon)에 세운 나라인데, 그리스 신화에서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더 대왕이 신전에 묶인 매듭을 푸는 자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전해오는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을 단칼로 끊고, 또 손을 대는 것마다 모두 황금으로 변한다는 미다스 왕(Midas)의 ‘미다스의 손’ 전설도 있는 나라다. 프리기아 전시실에는 기원전 740년경 고르디온의 분묘를 그대로 재현했는데, 무덤 주인은 미다스 왕으로 추정하고 있다. 침대에는 분묘에서 발굴된 유골에 살을 붙인 인물과 청동 가마솥도 있다. 프리기아는 기원전 700년경 세계 최초로 금속 화폐를 만들었지만, 전시된 유물 대부분은 기원전 6세기의 것이다. 리디아(Lydia)는 기원전 8세기에 프리기아를 무너뜨렸지만, 기원전 546년 페르시아 키루스 2세에 패망했다. 또, 기원전 860년경 아나톨리아 지역에 우라르투(Urartu)가 존재하다가 기원전 700년 메디아(Media)에 멸망했는데, 우라르투는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아서 화려한 금제 보석 장식물 등이 많다.

히타이트 암석 부조
히타이트 암석 부조

대제국 페르시아는 세 차례에 걸친 아테네와 벌인 페르시아 전쟁에서 패한 뒤 아나톨리아 지방은 그리스의 차지가 되었지만,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내분으로 BC 313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 반도를 차지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후계자 없이 죽은 뒤, 소아시아 지방은 페르가몬·카파도키아·셀레우코스 등으로 갈라졌고, BC 2세기 후기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이렇게 소아시아 지방은 기원전 8000년경부터 문명이 꽃피었지만, 서양문명의 원류라고 하는 그리스는 겨우 기원전 1200년경 아나톨리아의 한 지역인 트로이(Troy)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 왕의 왕비 헬레네를 납치하여 10년간 트로이 전쟁이 벌어진 것에서 시작하니, 얼마나 뒤늦은 것인지 잘 알게 해준다.

미다스왕의 무덤이라고 추정되는 투물루스 고분에서 출토된 자기
미다스왕의 무덤이라고 추정되는 투물루스 고분에서 출토된 자기
프리기아 금속화폐
프리기아 금속화폐
돌에 새긴 성경
돌에 새긴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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