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 덮친 기후변화
장마 끝나기도 전에 기록적 폭염
5~7월 온열질환자 1228명 발생
기상이변에 예보 불확실성 커져
국지적 강수 등 ‘물폭탄’ 주의

▲ 사진=챗GPT 제작

예고 없는 폭염과 소나기, 장마의 순서가 뒤섞이며 올 여름이 예년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덥고 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이 더욱 크게 확장하면서 올 여름 장마는 예년만 못하고 중부지방의 경우 장마가 끝나기도 전에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계절의 질서가 흐트러진 가운데 건강 피해도 본격화되고 있다.

10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5월 15일부터 이달 8일까지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1228명으로 이 가운데 8명이 숨졌다. 2011년 감시체계가 시작된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누적 환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환자 수와 사망자 수는 지난해보다 각각 2.5배, 2.7배 늘었다. 특히 지난 8일 하루 동안 온열질환자 238명이 병원으로 이송돼 하루 기준 발생자 수로는 2018년 8월 이후 7년 만에 가장 많았다. 전체 환자의 81%는 실외에서 발생했고 장소는 작업장(28.7%), 논밭(14.4%), 길가(13.9%) 순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50대 이상이 61%를 차지했고 65세 이상 고령층 비율도 33%를 넘겼다. 같은 기간 충청권에서도 대전 15명, 세종 7명, 충남 51명, 충북 59명 등 132명이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을 찾았고 충남에서는 1명(9일 기준 2명)이 숨졌다.

이 같은 온열질환 급증의 배경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빠른 확장과 맑은 날씨, 구름 없는 지면 가열이 맞물리며 발생한 이례적 폭염이 자리하고 있다. 대전지방기상청 관계자는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7월 상순 기준으로 역대 일 최고기온이 가장 높았던 곳이 많았다. 이번 주까지는 더위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예년처럼 장마가 끝난 뒤 본격적인 폭염이 찾아오는 순차적 흐름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 올해는 6월 하순부터 장마가 시작됐고 이달 초 남부지방에서는 종료가 선언됐다. 반면 중부지방은 아직 종료 시점을 확정짓지 못한 상황인데 기압계의 변동성 탓에 강수 예측도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전문가들은 올 여름 기상 현상의 핵심에 북태평양고기압의 구조적 확장이 있다고 분석한다. 통상 장마전선은 6월 말에서 7월 중순 사이에 형성되지만 올해는 일주일가량 앞당겨 시작됐고 종료 시점 또한 예년보다 이르게 찾아올 전망이다. 장은철 공주대학교 대기과학과 교수는 “폭염과 소나기는 원래 8월쯤에 나타나는 기상 구조인데 올해는 이 시기가 크게 앞당겨진 상황이지만 소나기성 강수나 폭염 자체가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다만 예년보다 더위가 더 일찍 시작됐고 그 시점이 이례적이라는 점이 올해 날씨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예보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기술로는 열흘 이내 예측만 유의미한 것으로 평가되는데 이후 흐름은 매일 갱신되는 대기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폭염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지만 남쪽 저기압과 북쪽 기압골의 상호작용에 따라 국지적 강수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기상청의 예상이다.

물론 유사한 흐름의 기압계 구조는 2014년에도 관측된 바 있다. 당시 ‘마른 장마’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했지만 8월 하순 남부 지역에 폭우가 집중되며 연간 강수량은 결국 기후를 예년 수준으로 회복시킨 적이 있어서다. 장 교수는 “집중호우나 강한 비는 8월 초·중순에도 올 수 있다. 올해도 2014년처럼 강수량이 후반부에 몰릴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둬야 한다”라고 진단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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